brunch

매거진 GETTING MOR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gi Seo Oct 27. 2018

세상을 깨우는 힘

데이터로 돌아가는 세상의 맹점 1

엊그제 전 직장에서 함께 동고동락하였던 부장님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4년 전에 그만둔 직장인지라 휴대폰의 연락처에 있지도 않은 누군가로부터 부고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아는 그 부장님이 맞냐며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갈까 말까 망설여졌다. 다행히 그때 함께 근무했던 다른 부장님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어서 카톡 메시지를 통해 내가 아는 그 부장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년 전이고, 부고 메시지를 통해서는 장례식장의 병원 위치도 없었다. '혜원 101호'라는 명칭만을 가지고 병원을 찾아갔다. 차의 내비게이션에서 검색된 병원을 찾아갔는데, 하필 찾아간 곳은 분원이었고 시신은 며칠 전에 본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다시 삼십여 분을 넘겨서 내가 아는 부장님의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대구에서 칠곡 그리고 구미까지 거진 두 시간 가까이 헤맨 뒤 그분의 영전을 찾았다.


이전의 그리고 이전 직장에서 인연이 있었던 분이고 부고 메시지에서도 장례식 장소는 빠진 채 보낸 것으로 보아서는 굳이 찾아올 필요까지는 없었을 싶었다. 찾아가려고 마음먹은 후 수중에 현금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머니에게 5만 원만 보내달라고 문자 메시지를 넣은 이후로는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기어이 그 분과 함께 일할 당시에 무엇이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었는지 발걸음은 계속 '이게 도리이다' 싶게 떨어졌다.



2017 대선 레이스가 별 흥미를 끌지 못하자 '빅데이터'를 근거기반으로 삼아 낚시성 정보도 언론에서는 뿌린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사회는 딱 정량적인 수치에 맞춰서 1부터 맨 끝까지 나열하는 것이 객관적이라고 여긴다. 앞으로 데이터 과학으로 인해 아무런 쓸모가 없는 자료에서 유의미한 정보로의 추출이 가치를 높게 매겨주는 시대에서는 수치 하나하나의 나열과 그러한 수치들의 비교가 더욱 신뢰성을 심어줄 수 있는 메시지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맹점은 사람이 쏟은 정성적인 노력이나 혹은 가치의 정도를 통계를 내어 수치로 나타낸 것의 차이는 숫자놀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내 새끼가 학교에서 수학 점수를 받아 왔는 데, 다른 자식이 받은 수학 점수와 점수는 똑같더라도 그 점수로 환산되기 위해 쏟아부은 노력의 정도는 자식들이 얼마만큼 시험에만 필요한 공부를 했는지 혹은 수학을 위한 공부를 했는지의 이전 과정을 돌려보지 않고서는 비교 불가하다. 하지만 학교에서 고놈들을 줄 세우기에는 단지 해당 시험에만 필요한 공부를 위한 점수의 수치로만 평가한다.


그 부장님과 한솥밥을 먹었던 직장은 연초가 되면 사내 직원 역량 평가 시기가 있었다. 성과제를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업이라서 직원 역량평가를 본인이 지금까지 작성해서 제출했던 자료들의 개수, 이를테면 자신이 올해 받은 교육 시간은 직급마다 부여받은 요구시간을 충족했는지, 보고서 및 기타 기안은 요구 수량 이상을 제출했는지를 기반으로 점수로 환산하는 시스템이었다. 물론 성과제의 평가 등급은 소속 팀장이 확인하고 부서장의 최종 결재로 인해 정해 지므로 팀장이 올해 팀원들 중 고생한 팀원에게 점수를 몰아주기 위해 짜깁기는 자행되고 최종 결과는 어쨌든 본인이 스스로 집계 냈었던 데이터의 수치와는 상관없이 'C' 혹은 괜찮으면 'B' 정도의 역량 평가가 떨어진다.


https://brunch.co.kr/@hpc/115 직원의 성과, 결과로만 평가하세요?


신입부터 사회생활 3년 차까지는 역량평가에 얽매일 처지는 아니었고, 그 역량평가를 하기 전 연말이면 부서 워크샵을 근처 지방으로 떠난다. 그때의 기억이 오늘 내가 다시 장례식장의 사진으로 만난 부장님 때문에 더욱 선명해지는데, 이 부장님은 동년배의 같은 직급이셨던 부장님들보다 성과등급이 낮으신 분이었다. 현장 직원이 아니라면 이 성과등급이 호봉보다 연봉액의 환산에 바로미터가 되었었기때문에 이 등급의 상향조정이 가장 필요하신 분 중에 한 분이셨다.


이 날 이 자리에서 팀장이 각 팀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한 마디씩 해보라며 일반적인 회식 자리처럼 발언의 기회를 주었다. 순서는 내가 기억하는 그 부장님의 차례였다. 부장님이 일어서기 전에는 모두들 회사의 불만이나 자신의 성과 등에 대해 운운하는 그저 입에 발린 말들만 나열하였다. 하지만 이 부장님은 의외의 목소리를 내셨다. "자, 올해도 모두 수고했고 고생 많았습니다. 내년에도 힘들 내서..." 으레 하는 워크숍 자리에서의 허심탐회한 소리들과는 달리 신입사원이 할만한 멘트다. 하지만 그 부장님의 입장에서는 그저 심심하지만은 않은, 나의 속을 착잡하게 만든 말씀이었다.


그 해의 직원 역량평가에서 그분의 성과등급은 한 단계 상승했고 나는 그 해를 한 기점 넘기고 회사를 나왔었다. 사회생활은 뭐 있으랴, 데이터로 따지면 누가 더 고생했는지 알 수 없다. 팀장이 고생한 사람을 정성적으로 파악하고 그 사람에게 점수 주면 그게 수치로 환산된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에서 돌아가는 모든 시스템이 데이터로만 따져서 유의미한 결과로 도출한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빅데이터'도 '스몰데이터'도 사실은 시스템에서 찍히는 수치는 사람의 감정에서 벗어나면 그것은 의미를 떠나서 단지 센서에 감지된 온 스위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간과한 자료들의 집합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지고 놀겠다는 구글이나 빅데이터 기업들이 사실 그러한 인간의 정성적인 행태나 직관에 반하는 결과를 기반으로 수치로 찍힌(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 등) 데이터를 깡그리 잡아서 미래에 인공지능에 필요한 자료로 삼겠다는 것은 정말 똑똑한 사람들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빅 데이터는 ‘기존의 데이터 관리·저장·분석의 역량을 훨씬 뛰어넘는 대량의 정형 또는 비정형의 데이터로부터 가치를 추출해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 현상’을 일컫는다(네이버 지식사전).


칠곡 분원에서 차를 돌리고 목적지로 향할 때, 회사 체육대회 때가 기억났다. 풋살 경기에서 부서팀 대표로 나가 공을 찰 때 그 부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기장을 둘러싸고 있는 철조망 너머로 나직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영기야, 힘내.." 그 전날에 지금 붙는 팀과 연습경기로 자정까지 공을 찼던 지라 두 다리는 이미 젖산이 가득 차서 나의 다리가 아니었다. 후반으로 갈수록 몸이 생각과 달리 0.5배속으로 움직이는데, 그 나지막한 목소리가 오늘 영전의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함께 일할 때, 사고도 많이 치고 아는 게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닌데 아는 척하며 부장님에게 되려 선을 넘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 와서 그때의 나를 돌이켜 보니,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다. 세상도 그렇다. 데이터 같고 떠들면 과거에 대한 근거가 있으니 반박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데이터들도 결국은 인간이 조잡하게 만든 수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데이터 과학자들이 일단 주지하고 본업에 임했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각의 속도 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