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아닌 글을 가르치는데 말 못 하는 영어는 당연한 거 아님?
언어를 가르치는데 말부터
하게 하려면, 말로써만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한다. 그런데 조기 영어를
가르친다며 영어 알파벳부터 쓰고 낱말부터 주입시키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한국은 세계 문맹률에서 거의 95% 이상이 글을 읽고 쓸 줄 아나, 미국은 10% 이상이 글은 못 읽더라도 말은 할렘가의 흑인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말부터 떼는 언어를 가르치려면 처음부터 문자에 의한 간섭효과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오로지 소리에만 의존해서 외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시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유아기때 말을 배운다고 치면, 옹알이를 하는 시기이며 어느 정도 말소리에 익숙해지면 조금 더 정확한 말을 구사할 수 있도록 다듬어야 한다. 단, 역시 학교에서 언어를 배우기 이전처럼 낱말에 의존하지 않고 단지 들어서 이것이 잘 쓰이는 말인지 어색한 말인지 체감할 수 있게 말이다.
이 과정을 누락하고 문자 교육을 들어가면 백에 백은 리스닝의 이해를 완전히 할 수 있는 언어에 대한 감각을 터득할 수 없다. 왜냐하면 리스닝에 앞서 히어링에 대한 기본적인 어감과 어순이 몸에 배어있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글(서술적 지식)로 배운 단기적 기억에 의해 형성된 문법에 의존하여 말을 들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면 들리는 영어를 있는 그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조금만 다른 소리와 악센트가 귀에 꽂히면 해석부터 안된다고 생각한다. 해석이 아니라 해당 발화에 대한 익숙함이 몸(절차적 지식)에 배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그러한 뉘앙스에 대한 이해가 뒤따르지 않는다.
한국인이 자신의 국어를 알아듣는 것은 문법적 지식의 우열에 따라서 수준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얼마나 많은 대화와 우리말 소리에 노출되었느냐는 범주와 익숙도에 달려있다. 영어가 모국어인 원어민도 마찬가지이다. 게네들이 반드시 모든 영어를 다 막힘없이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게네들 땅덩어리가 하도 크거나와(한국이 게네들 한 주만도 못한 크기이기에) 게네들도 타 지역에서 온 네이티브의 말귀를 못 알아들을 수 있고 심지어 영국의 악센트는 영화에서 자막이 있어야 이해가 가능할 수도 있다. 마치 영화 ‘친구’가 서울에서 상영할 때는 자막이 필요했듯이 말이다.
당신이 영어로 몇 자 끄적거릴 줄 안다고 또 그 영어를 네이티브가 들려주었을 때도 막힘없이 들리리라는 착각은 그만하자. 당신의 영어가 특히나 한국 영어교육의 산물이라면, 애당초 들리는 것은 미드나 영드로 반복해서 익혀서 뇌리에 새겨진 정도의 영어다. 그것이 소리 영어를 익혀서이고, 그 정도의 반복 훈련이 당신이 쓰고 읽을 줄 아는 영어에도 적용되면 비로소 당신의 영어 실력은 몸에 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해설(타 브런치 수기 참조)
1) https://story.kakao.com/_59RYj6/iOnHwAwDQQA
2) https://story.kakao.com/_59RYj6/hGtXKMjIYQ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