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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gi Seo Apr 27. 2020

문해력과 기반지식의 중요성

나의 인생 곡선과의 상관관계

필자는 중학교 시절까지는 나름 공부를 열심히 했다. 특히 초등학생 6학년 때 상식과 교과서에 대해 폭발적으로 흥미가 붙어서 그 당시 컴퓨터 학원을 통해 취득한 워드프로세서 2급(당시에 1급은 없었다.)부터 국가 컴퓨터 자격증 중인 하나인 베이직(GW-BASIC) 언어를 기반으로 한 필기/실기 자격증을 5급부터 1급까지 꾸준히 취득하였다. 6학년 때 학교 대표로 프로그래밍 경진 대회도 다녀왔고 당시 수학 빼고는 유년기의 지적 성장이 꽤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2 때 새로 장만한 6x86(인텔 펜티엄급) 컬러 그래픽 컴퓨터를 통해 빠진 게임으로 책과는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 이후로 문해력(나열된 문자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글 맥락에 대한 이해력)에 있어서는 중학생 2학년 수준에서 멈추었고, 성적이 초반에 꽤 나와준 덕택에 고등학교는 특목고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하였다. 하지만 그건 내 인생의 변곡점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 계기가 되었다. 책은 여전히 멀리했었고, 컴퓨터의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에만 너무 정신을 쏟아서인지 문해력의 수준은 여전히 중학교 수준이었다. 아무리 신생 특목고라고 해도 경쟁 수준은 일반 인문계고보다는 셌을 거라 중3부터 떨어지던 성적은 고등학교 때 나락으로 치닫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3년 전액 장학생으로 들어왔는데, 조금 노력하면 다시 공부에 흥미를 붙이지 않을까 했지만 중학교 때까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기반(schema)을 닦아놓은 다양한 지식의 독서 체력이 있었기 때문에 집중할 수 있는 호흡이 꽤 길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아직도 기억하는데, 5학년 때 담임의 수업시간 50분을 그 선생님의 형체를 단 한 번의 주위 의식 없이 바라보면서 말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매일 단시간에 상대를 제압하는 슈팅이나 스포츠 게임의 유형에 두뇌가 습관화되고 하필 갓 늦게 사춘기가 오는 바람에 글을 이해하기 위해 읽는 시간은 더욱 소외되었다. 그렇다고 공부에 대한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거는 아니어서 간간이 혼자서 들락거린 공공도서관에서 좋다고 하는(당시엔 학벌이 뭐가 좋은지도 몰랐지만) 대학에 들어간 수험생들의 수기 책을 들춰보면서 공부계획을 다잡기도 하였다.



당시에 다이어리를 일부러 사서 기록하기도 했는데, ‘프랭클린 다이어리’라고 꽤 비싼 양장본의 수첩이었다(그때도 2만 원은 호가했을 거다.). 그 수첩을 하릴없이(어쩔 수 없이 계획이라도 세워 보자며) 보면 어느 공란의 페이지에 ‘스키마’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 단어의 의미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단어의 중요성에 대해 제법 이해할 수 있는 지금까지 본인의 문해력(맥락에 대한 이해력)도 스키마와 함께 성장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스키마(schema)



또 필자는 고등학교 입학 전 방학 때 ‘케이스’라는 학습지를 신청했다. 독서와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이것저것 부모 등골 빼먹는 거는 많이 했었다. 그 학습지를 처음 펼쳤을 때 몇 개 안 되는 유형의 수학 문제를 접했다. 물론 지금 학생들도 어련하겠냐만은 겨울방학 동안 한 입시학원에서 ‘수학의 정석’, 공통수학의 공식들을 죽어라 외워라는 학원 선생들의 진저리를 겪은 뒤였다(그때 수학공식이 아닌 외국 문학을 번역해주면서 이 영문을 죽어라 외워라는 영어 선생은 없어서 참 다행이다.). 그런데 학습지의 몇 개 안되는 문제에 대해 중학교 때와는 달리 어찌나 크게 괴리감이 느껴지던지 곧바로 의자를 컴퓨터 데스크로 옮겼다. 그 당시 필자의 머리에 그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한 공식은 몇 개 암기되어 있었을지는 몰라도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공식의 유도과정’이나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는 ‘비슷한 문제 풀이의 경험’이 아예 없었다. 이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 수준의 문제조차도 중2의 이해력 수준에서 발전이 멈춰있었던 필자로서는 손쓸 겨를이 없었던 거다. 이후 학습지는 쌓아놓기 위한 폐품으로 전락하였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재수도 실패하고 우연찮게 장학생으로 입학한 한 게임제작학과 대학 시절부터는 그래도 독서에 대한 흥미는 되찾고 싶었다. 그래서 한 대형서점에서 ‘포토 리딩’이라는 그 당시 본인의 이해력 수준에서는 집지 말아야 할(No picking must-have item) 책을 접했다. 미국의 아마존 사이트에서 본인과 비슷한 문해력 수준을 가졌을 거라 추측이 되는 독자의 서평만을 보더라도 이 책은 속독을 위한 책인지, 숙면을 위한 책인지 모르겠다고 긁적인 후기가 있다. 필자는 명색에 그래도 고등학교에서 유일무이한 ‘영어과’를 나왔다고 아예 이때 영어 원서를 필사하기까지 했다. 이해도 정확히 하지 못했던 문학류의 원서 탐독(?)을 했었던 거다. 그때 오른손잡이임에도 불구하고 왼손으로, 거기다 필기체로 필사를 한 책이 펄 벅의 ‘Good earth, 대지’였다. 또한 토익 시험도 고등학교 졸업 전에 모의시험으로 봤다고 아예 시험대비용 원서를 사서 이해가 정확히 됐는지 모르겠지만 영어로만 해설된 문제를 풀고 시험을 봤다. (오, 그래도 내 발 사이즈만큼의 점수가 나오긴 나왔다;)



너무 인생을 바텀업(Bottom-up)식으로 산 게 아니냐고요? 주변에 친구 없냐고요? 아니다. 주변에 친구들은 이른바 학벌 괜찮은 대학에 가기도 하고 군대에서는 서울 최상위권 3개의 대학을 통칭해서 부르는 스카이대를 나온 동기와 선배들도 많이 보고 했지만, 토익이든 독서방법이든 이것은 개인의 스키마(schema)에 달려 있지 그들이 조언해준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어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본인은 대한민국이 고질적으로 겪고 있는 영어 콤플렉스의 노선과는 달리 처음부터 너-무 탑다운(Top-down)식으로 접근했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영어에서 원어민이 말하는 설명만으로 그리고 원어민이 쓴 글만을 따라 쓰고 읽고 말하고 듣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가장 원어민적인 톤(tone, 어조)을 몸에 체화시킨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뭘 말하려고 하는 거냐고-요? 본론은 다음 편부터 전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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