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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gi Seo May 16. 2020

천천히 읽기의 중요성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여섯 시간 안에 나무 한 그루를 베어야 한다면, 처음 네 시간은 도끼날을 갈리라.

                                                     — 출처 분명


아이엘츠(IELTS)라는 영국 문화원에서 주최하는 영어 시험의 한 과목인 독해(Reading)에서는 다음의 읽기 기술을 요구한다. 크게 스키밍(Skimming)과 스캐닝(Scanning)이라는 읽는 목적에 따른 속독이다. 독서 역시 스키밍에 해당하는 책 저자의 생각 과정(프로세스)을 뽑아내는 독서와 스캐닝에 해당하는 발췌독이 독서 목적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앞으로 ‘What it is information.’ 보다 ‘Where it is information!’ 이 더욱 요구되는 현재의 지식사회에서도 그리고 앞으로도 쓸모 있는 역량이 될 것이고 대한민국 입시나 공무원 수험도 이것을 통한 문해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머릿속에는 지식의 내용을 담는 게 아니라, 그 지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고 무엇을 보면 알 수 있는지에 대한 기반 지식이 바로 스키마이다. 학습인지 능력에서 근래 많이 들어봤을 법한 ‘메타 인지’ 능력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을 가리킨다. IT 분야의 데이터베이스(관계형 DB)에서 ‘메타 데이터’라는 용어도 저장하는 정보가 어떤 갈래에 해당하는지 분류하기 위한 네임태그에 해당한다. 전체적인 뼈대인 스키마와 동일하다. 즉 자신의 뇌에 지식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찾아가기 위한 길목(레코드)을 많이 구축(이것이 뇌의 ‘시냅스’라고 하고 자극되는 부위를 ‘해마’라고 한다.) 하는 것이 처음 접하는 지식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개인차가 발생한다.


가령 인사 데이터에서 당신의 연봉이 7,700만 원일 경우, 7,700만 원이라는 데이터에 해당하는 메타 데이터는 ‘연봉’이다. 이런 정보를 체계적으로 분류 및 저장하기 위한 레이블(이름표 혹은 꼬리표)만을 머릿속에 잘 정리해놓고(일종의 ‘마인드 맵’핑), 거기에 해당하는 저장 내용을 알고 싶을 경우에는 그것의 기원에 해당하는 큰 카테고리(분류 기준)만을 따라가서 실제 정보의 저장소를 뒤져보면 된다. 영단어 학습법에서 꽤 오랫동안 유행하고 있는 ‘어원 학습법’도 이러한 접근 원리를 통해 영어의 모든 세세한 단어까지는 암기할 필요가 없다는 실속으로 유인한다(하지만 어원으로만 단어를 외우는 것이나 문맥으로 단어를 저절로 암기가 되게 한다는 것이나 둘 다 한계가 있는 방법이다. 맥락으로 어휘를 추론할 때도 간혹 잘못된 단어로 이해하거나 말할 수도 있고 영어의 어원도 반드시 해당 철자대로의 접미사나 접두어와 같은 의미가 아닌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모국어처럼 생소한 단어라도 유추가 가능한 경지가 영어에서의 최고의 경지라고 생각한다. 네이티브와 외국인에게도 이 정도의 지식의 스키마를 갖추는 게 최고의 경지이기는 하나 한국어에서도 그렇게 유추한 단어가 실제 사전을 찾아보면 틀린 경우도 있다.).



서론이 제법 길었는데 필자의 두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토종 한국인이 특정분야의 영어를 모국어의 이해 수준만큼 독서, 나아가 속독이 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의 모국어를 통한 이해(기반 지식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 시절에 학교 영어 말하기 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정찬용의 일명 ‘소리 영어’에 대한 실천가였던 터라, 준비한 영어 스크립트를 일절 번역하지 않고 영어 문장 그대로 외웠다. 그렇게 한 문장씩 40번 넘게 암송을 하여 몸에 체화되었다 싶은 뒤에 리허설 한 번 없이 단상에 나가서 발표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inevitably) 서론을 지나 본문 어딘가에서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 당시에 영어회화 전문학원(WSE)을 계속 다니고 있었고, 방학 때도 꾸준히 학교에서 영어회화 수업을 받고 있었는지라, 스크립트의 내용과는 달리 그 맥락을 회화하듯이 이어나갈 수 있었다.


언젠가 기회만 된다면 필자도 미국의 ‘Toast Master’라는 모임에서 주최하는 연설대회에 나가고 싶다. 대학 영어스피치의 악몽이후 간간이 국내에서 가지는 모임에 참여하곤한다


즉흥적으로 애드리브를 칠 그때, 같은 대학의 회화수업을 듣던 한국인 친구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보고 있는 청중은 한국인이 아니라 원어민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이었다. 어떤 책에서 수많은 사람을 앞에 두고 하는 발표에서 단 한 사람과의 아이 콘택트(eyes contact)라도 가능하면 시도해라고 한다. 그러면 일대일로 대화하는 기분이 들어 이야기의 맥락을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어로 말을 하고 있어서였는지 그 외국인과의 눈 맞춤에서 직관적으로 그가 나의 말을 이해하고 있다는 눈빛이 느껴졌다. 보통은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번역본을 통해 100% 암기하여 전달하는 방식이 아닌, 정말 내가 영어식 사고 자체로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는 것이 느껴졌다는 것이다(그러나 이후 한 모임의 발표를 통해 모국어를 베이스로 완전히 암기하여 발표해도 영어로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청중은 그것을 의식하겠지만 어쨌든 이해가 완벽하면 중간에 스크립트와 약간씩 다르게 말해도 자연스러운 전달은 가능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발표하는 메시지의 본질에 해당하는 내용이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영어로만 생각하고 말하는 영어식 사고)을 받아들이기에는 본인이 발표했던 것과 같은 수준의 에피소드류의 이야기나 회화 시에 남발하는 구문에서나 가능하다는 거지, 전문분야로 들어서서는 한국인이 해당 분야의 모국어를 통한 이해(기반 지식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머리글에서와 같이 이 글의 요점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필자가 이십 대 초반에 친척으로부터 물려받은 전축에서 시작한다. 이 오디오에서 AFKN 라디오 주파수가 잡혀서(그것도 하릴없이 미국 팝, 주로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 힘내라고 트는 락과 힙합류만 들여야 하는 FM이 아니라, AM 라디오 방송이 잡힘.) 미 NBA 생중계나 미국의 역사나 위인 이야기, 이를테면 존 F. 케네디의 달착륙 우주비행계획과 같은 미국 본토의 학생들이 들을만한 이슈들에 대한 영어 소리를 꽤 접했다.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해외의 단파 라디오를 구입해 국내에서 잘 잡히지 않는 방송까지 들으려고 시도했는데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 껍데기만 까고 자꾸 깠었던 기간이 어연 15년은 되리라.


음, ‘297시간’... 미끼좋다. ‘귀를 뚫다’라는 모든 영어가 한국어처럼 들린다는 망상을 심어준 할아버지께 심심한 안부를 전해드린다. ‘저도 할아버지의 이 책 샀어요!’

그런데 요즘도 본인의 이해 수준(스키마)은 고려하지 않고(독자가 영미권 국가의 초등교육부터 밟지 않았다면), 영어 라디오를 계속 듣다 보면 귀가 뚫린다는 상관관계가 아닌 인과관계로 유인하는 글들을 보면 나와 같은 15년을 잃어버리고 싶은지 되묻고 싶다(영어든 한국어든 알아듣기 위해 해당 분야의 이론을 공부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것을 말하는 속도보다 빨리 읽어서 이해하지 못하면 평생을 미국 본토에서 살아도 그 귀는 한국어 일상용에 불과하다).


본인은 그때 주야장천 미 AFKN 영어 소리만을 듣다가 어느 날 깜빡 선잠이 들었다. 그 와중에 귀에 들리는 AFKN 뉴스에서 어느 기자가 미국에서 터진 헬리콥터의 추락 사고를 보도하는 내용이 TV 화면처럼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는 꿈을 꿨다. 그 당시 그것이 진짜 맞는 사건 보도였는지는 확인까지 안했지만 영어를 한국어만큼 쉽게 들리기를 얼마만큼 소망했으면 영어가 꿈으로 시각화까지 되었는지 자체 두뇌 가소성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영어든 한국어든 글이나 말로 나타내어진 그것은 언어의 표상이지,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본질은 아니다.




언어 학습에 있어서 키워드는 어조(말투, tone) 혹은 어감(뉘앙스, nuance)이다. 잘 구사하려는 언어의 원어민 목소리(영어는 존댓말이 없으므로 격식체와 비격식체를 이 어조를 통해서 느낄 수 있다.)를 자신의 의식구조에 탑재(체화)할 수 있느냐 못하냐에 따라 그 외국어를 자신의 모국어에 대한 이해 수준만큼 의사소통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결정된다. 자신이 영미권 국가의 본토에서 태어나서 문화적 경험을 쌓고 교육받지(<-이렇게 자라난 재미교포 2세들은 보통 한국말을 어려워한다.) 않은 경우를 제외하곤, 한국어로도 상응이 가능한 영어의 의미 맥락(어조, 말투, 어감, 뉘앙스를 망라한 화자가 말하려는 바)을 정확하게 분간하지 못하면 영어도 두말할 것 없이 우리말 지식에 대한 배경을 넘어서는 이해력은 기대할 수 없다(그래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교수는 구어체의 영어일지라도, 반면 속사포처럼 랩을 구사하는 재미교포는 문어체의 영어일지라도 머릿속에 그 같은 쓰임새가 탑재되어 있지 않으면 리스닝이 될 까닭이 없다. 같은 영어라고 다 알아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는 말이다.).



전문분야의 글도 모국어처럼 이해하는 방법은, 배우려는 분야의 한국어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먼저 쌓는 게 선결 조건이다. 그리고 원어민이 자주 쓰는 (관용)구문과 (동사)용법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면 해당 분야의 지식을 영어(껍데기)로 인지하더라도 기존의 스키마(한국어 기반 지식)와 상응하는 언어 패턴(격식체에서 쓰이는 문어체 어법인지, 비격식체에서 쓰이는 구어체 어법인지)의 조합으로 한국어(본래 쓰던 껍데기)로 이해했던 프로세스(인지 및 이해의 과정)에서 조금의 추론(기반 지식이 얼마나 촘촘히 구축되어 있느냐에 따라 가능한 추측 능력)으로 한국어로 이해할 때와 같은 문맥을 짚을 수 있다. 즉 한국말로 했을 때 느껴지는 어조(Korean tone)와 원어민이 말할 때 이런 의도로 말했다는 어조(English tone)의 간극을 영어 단어(내용어에 해당하는 어휘)들의 일대일 대응으로 직역을 할 게 아니라, 원어민이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구문과 용법으로 일치시키는 훈련을 많이 해서 영어의 본래 어감(뉘앙스)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마치 자신이 쓴 글을 교정하기를 문법만을 따져서 고치는 게 아니라 입으로 되뇌면서 문장의 구조나 논리적인 전개를 순화하듯이 말이다).



그러면 영어 속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속독은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거다. 자신의 모국어 수준이 어떠한 글을 이해하는 데 기존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그 기반 지식이 촘촘하면 촘촘할수록 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천천히 읽어서 저자의 의도를 곱씹어보는 것보다는 더 빠르게 독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여기서 이른바 스키밍(skimming, 빠르게 훑어보면서 중심 내용 잡기)이나 스캐닝(scanning, 필요한 내용만을 찾아서 빠르게 검색하기)와 같은 목적이 아니라면, 속독은 글의 의미(문맥)를 따라가면서 빨리 읽어야지 그렇지 않고 아는 영어 어휘만으로 글을 훑어보는 것은 속독이 아니라, 앞서 말한 스키밍에 해당한다.



, 영어를 속독하더라도 해당 글의 저자의 목소리(문체) 느낄  없을뿐더러  글에 대한 기반 지식도 없다면 애초에 모국어로도 어림짐작(ballpark figure)하여 글의 내용을 추정해야 한다( 정도 이해 수준의 독해는 토익 7 초중반 수준만 되어도 어떠한 원서를 마치 이해가 되는  읽을  있다. 하지만 그건 독서의 목적이 단지 편안한 정도의 취미생활이지, 책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해력을 테스트한다면 역시  기반 지식과 해당 내용을 공부해야 한다. 본인이  지식을 자신의 스키마에 거를  있는지 없는지부터 테스트하고 틀리면 거기서 비롯한 모르는 영어 구문과 필요한 문법 지식을 체크해서 공부하는 것이다. 이것이 스스로 피드백하면서 바텀업(bottom-up)으로 영어 문해 실력을  단계 올리는 방법이다.). 애초에 이해도  되는데 무작정 페이지만 넘기는 독서는 마치 처음 보는 외국어를 보듯이 문자의 표상(껍데기) 어떤 모양인지 확인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본인의 기반 지식에 연결될 실마리도 없는 책을 붙잡고 시간 낭비할  아니라 본인 스키마의 수준으로 추론이 가능한(보통  페이지에 모르는 내용어가   개를 초과하면  보기를 접으라고 말한다.) 데이터(어휘 수준이 이해 가능한 책이나 관련 문헌정보)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이해가  되는 내용의 맥락을 짚기 위해서 부족한 기반 지식을 쌓는 것이(관련된 단어만을 암기하기 위한 어휘 학습이 아닌  쉬운 수준의 문해력을 요구하는 관련 지식의 저장소가 어딘지, 메타데이터를 데이트해야 한다.) 이것이 모든 학습에서  번째에 해당한다. 두뇌에 이미 있는 지식과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다(필자는  쉬운 수준의 문해력을 요구하는 관련 지식의 저장소가 어딘지 찾는 과정의 알고리즘을 담은 앱을 2021년에 ‘블루박스라는 애플리케이션으로 블록체인과 연계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



다시 말해 속독의 목적이 생각하면서 책을 읽기 위한(저자의 의도를 알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스키밍(skimming)과 스캐닝(scanning)과 같이 시험 문제를 풀기 위한 접근법과 같은 개념의 읽기이다. 독자의 스키마(schema)와 일치하는 연결고리가 많으면 속독이 되는 거고 없으면 안 되는 거다. 그리고 맥락을 짚지 못하는 읽기는 아무리 날고 기게 독서를 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기반 지식(속독을 해서 문제만 맞히면 목표 달성이라는 결과 지상주의 시험 풍토로 인해 한 분야에서 특출한 재능을 가진 인재 발굴이 요원한 한국을 말한 IQ 210의 김웅용 씨의 말과 같이 외국어의 이해를 위해서는 비슷한 어원이나 맥락으로 연결이 가능한 다른 언어의 기초체력을 미리 닦아놓아야 한다. 그래서 사실 기억력이라는 것도 기존에 자기가 알고 있는 스키마가 얼마나 폭넓고 깊게 구축되어 있느냐를 나타내기 위한 지표일 뿐이다)으로 정착될 리가 없다. 이것이 어릴 때부터 속독을 지양해야 할 까닭이다.



그러면 이전 편의 글에서 언급한 ‘포토 리딩’이라는 독서법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 독서의 목적이 주제별, 혹은 한 작가에 대한 여러 저서를 읽고 공통된 주제나 키워드를 통해 어떠한 문제의 해결점이나 패턴 (이것의 집적을 인공지능이라고 한다.)을 찾고자 한다면 포토리딩은 유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처럼 ‘일만 권의 독서로 이전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라는 대한민국 속성주의 문화를 되새기는 다독을 위한 독서가 아닌, 같은 갈래의 여러 책을 통해서 자신이 궁금해하는 질문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면 일단 글의 소재나 작가가 동일한 수십 권의 책의 심상(언어의 표상과 달리 책 전체의 행간에서 하나의 키워드로 일반화한 추상적인 의미로 앞서 말한 ‘Skimming’의 목적이기도 하다.)을 두뇌에 던져 놓고(?) 수일이 지난 뒤에 그동안 자신의 이해 수준에서 무의식적으로 필요한 자료를 탐색하여 어느 정도 기반 지식이 쌓인 후 다시 그 책들을 찬찬히 보면서 자신이 일반화했던 메시지가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구체화시키는 과정으로 포토 리딩이라는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 그 책을 직접 보면 알겠지만 두뇌의 잠재능력을 믿으라는 역설과 오히려 독서는 자신이 이해 가능한 속도로 문장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넘어가라는 독서에 대한 통념(이 글의 주제)을 깨라고 한다. 하지만 빠른 리듬감으로 속독을 하는 게 이해가 잘된다는 것은 최소한의 기반 지식이 형성된 이후에야 가능하다고 본다. 그렇게 머리에 사진 찍듯이 페이지를 넘기면 최적의 숙면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또한 필자가 말하려는 바와 같이 한국인들은 이미 학교에서 매맞으며 배운 12년 이상 동안의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두뇌에 던져놓았던 영어 수업의 알파벳 나부랭탱이들은 그 오랜 부화의 기간을 거치고도 말 한마디 제대로 끄집어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일반적인 속독과는 또 다른 개념의 포토리딩은 먼저 두뇌에 책의 심상(추상화된 모형이나 이미지)을 던져놓고, 일정 간격의 시기를 두고 반복해서 보면 어쨌든 처음부터 책을 곱씹어보면서 읽는 것보다야 간격 학습(장기 기억으로 넘어가기 위한) 효과를 살린, 그러나 시간(=돈)은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특수한 목적(논문 쓰기)의 독서법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자신의 이해 수준을 벗어나는 책들의 독서를 어느 일정 수준에 이르면 읽겠다며, 읽기 시도를 미루지 말고 일단 페이지마다의 문자 껍데기라도 환기시키고, (잔망스럽게 페이지를 훽훽 넘기고) 향후에 기반 지식이 쌓이면 제대로 일독해보라는 방식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연예인 중 타블로가 실제로 속독을 해서 미국의 대학에서 문예창작과 학사와 영문학 석사과정까지 조기 수료했다는데, 그는 독서 시에 한 페이지 전체를 머릿속에서 절반으로 나눠서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빠르게 읽었다고 한다. 그렇게 읽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용이 이해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였다고 한다(홍진표, 2019). 포토리딩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속독법을 즉석으로 해서 이해까지 가능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재능을 캐냈음에도 불구하고 석사 논문 심사를 통과해서 졸업까지는 왜 안 했는지 모르겠다. (힙합 뮤지션이 되는 것을 더욱 갈망했으면, 십 대 때 데뷔한 말레이시아의 래퍼 리치 브라이언과 같이 ‘메인’ 빌보드 차트에 수성할 수 있는 곡 정도는 왜 내놓지 못할까? 리치 가가라는 이 힙합퍼는 영어를 유튜브를 통해 4년 간 독학하고 힙합을 안 지 2년 만에 미국의 본토 래퍼들조차 미국인이 부른다고 착각하게 만든 곡으로 빌보드 차트를 히트 쳤다. 리치는 본토 힙합을 따라 부르거나 루빅스 큐브와 같은 특정 분야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관련 지식을 찾아보면서 쌓인 영어를 사용했단다. 정규 교육 과정도 받지 않았고 집에서 부모가 낸 숙제가 전부인 홈스쿨링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확신컨대, 영어로 말하는 화자의 목소리를 되뇌고 이것을 반복해서 사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일단 영어가 틀리든 맞든 간에 가능한 한 많이 말해서 영어로 말할 때의 감각(어감, 뉘앙스)을 빨리 터득하는 것만큼 가장 효과적인 실전용 영어 학습법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음악 분야에서 두드러진 재능은 타고난 거겠지만 (이것이 재능이다!) 힙합 재능의 성장 기폭제가 되어준 영어에 대한 감각은 본토 힙합퍼와의 대화하는 영상을 보면 완전 미국인이다(단 4년 만에;).



어쨌든 타블로의 사례를 통해 독서의 목적이 더 많은 정보만을 얻기 위해서는 포토리딩과 비슷한 속독법을 습관화하여 내용의 이해를 도모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전문 분야의 영어를 능통하게 하기 위해서 그 지식과 상응하는 한국어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정확하게 해석한 의미(어조)를 바탕으로 다시 그 문장을 원어민이 많이 쓰는 문장 구조와 어감으로 쉽게 풀어내면 해당 지식이 자신의 기반 지식으로 쌓일 것이고 그렇게 누적된 스키마(일종의 세련된 표현 구문—교양 있는 원어민이 많이 쓰는—과 정제된 어휘력의 카테고리)가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관련 지식의 영문서적을 쉽게 이해하면서 독서할 수 있을 테고, 그렇게 독서한 횟수가 많으면 많아서(단 한 권의 책이라도) 아예 머릿속에 외워져 버리면, 일본의 노벨 문학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와 같이 다른 영미 문학들을 이해하고 자국의 독자들에게 적확한 의미로 전달할 수 있는 번역능력의 기폭제로도 작용할 수 있다.



‘초서 독서법’의 저자 김병완 씨가 쓴 최근 저서 ‘스케일의 법칙’. 필자 왈, “저도 엔지니어 출신이예요, 혹시 노벨문학상은 도전할 생각 없으세요?!”


앞서 인용한 ‘일만 권 독서법’, ‘초서 독서법’ 등으로 자신의 이름을 아니다 다를까(inextricably) 다독 일화를 통해 속독 학원의 마케팅 브랜드로 만든 작가가 말한 평이한 종류의 책을 다량으로 (저자는 삼 년 만에 일만 권을 읽었다고 한다. 이거 실화임?) 읽는 다독과 비교해서 저자의 어조가 나의 목소리와 일치시킬 정도로 단 한 권만을 반복해서 읽는 독서와의 양질의 문제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겠다. 다만 후자가 하나의 외국어를 완전히 통달하는 데까지는 이미 입증된 바와 같이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노벨문학상까지 탔지 않았는가?



영어 학습의 급속한 성과주의에 대한 환상 혹은 속독 등 빠르게 배우기에 대한 어떠한 요령만을 지향하는 세태가 하루빨리 걷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치 유튜브에서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과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는 원어민의 영상을 시청하려는 데도 수많은 영어학습 콘텐츠의 결과주의론적인 사실만을 미끼로 삼는 광고가 난무하는 작금의 시대가 개탄스러운 것처럼.







참조|

홍진표. (2019). 생각 코딩, 머리를 잘 쓰는 사람들의 비밀 : 머리를 잘 쓰며 살고 있다는 착각하는 당신에게. 서울: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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