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글쓰기 정교화 수업 - 2
이전 문장과 관련 있는 내용으로 시작해야 글의 결속력이 강해진다.
- 응집성(cohesion)
영문법 교육의 한계를 말한다면, 왜 이 문법 규칙을 외어야 하는지를 처음부터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완성된 그림(교양 있는 원어민이 쓴 기삿글이나 표본이 될만한 글)을 먼저 보여주지 않고, 흐트러진 퍼즐(문장과 구, 단어)들을 짜 맞추는 방법(문법)부터 알려주는 것과 같다. 또한 국내에 출간된 영작문 책을 보더라도, 글을 쓰는 원리보다는 교정한 글을 바탕으로 이래서 이렇다는 귀납론적인 이론이 주를 이룬다.
아무래도 영문법 자체는 영작을 하기 위해서 알려주는 규칙이라기보다는 영문 텍스트(용례)를 이해하기 위한 규칙으로 형성되었다고 보지만, 주입식 교육 잔재(일제식)가 영어나 수학이나 한국 교육의 밑바탕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수학도 주입식인 줄 알고 수많은 문제만 풀다 보니 한계가 드러나고, 영어는 주입식이 맞긴 맞는데 순서가 틀리니깐 평생 해도 한 거 같지 않은 기분이 드는 심오한 학문(?)으로 발전했다.
영문법에서 하나의 일례를 들면 수동태는 기존 문장에서 주어와 목적어를 바꾸고, 동사 형태를 기존의 본동사에서 be동사 + 과거형으로 바꾼 뒤 목적어 자리의 명사 앞에 by를 붙인다는 규칙만 알려줬지, 왜 이 수동태가 필요한 지는 원어민이 직접 쓴 영작 레슨에서나 알 수 있다. 오히려 영작에서 고득점을 받기 위해 수동태를 써야 한다니, 영어는 동사를 수동태보다 능동태를 써야 문장에 힘이 생기고 간결하다는 어이없는 결론만 내세운다.
하지만 수동태를 써야 하는 진짜 이유는 한 문단 내에서 주요 행위의 주체(행위자)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다음 예문 중 어느 글이 일관성이 있게 느껴지는가?
1) 어제 외계인이 침공했다. 외계인은 인간이 다가오기도 전에 공격했다. 외계인의 모습은 사람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상상을 초월한 외계인의 파상 공격은 실로 히로시마 핵폭탄 수준을 뛰어넘었다.
2) 어제 외계인이 침공했다. 외계인은 인간이 다가오기도 전에 공격했다. 외계인의 모습은 사람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불쌍한 그 사람들은 외계인의 공격에 의해 전원 살해되었다.
두 번째가 행위자인 외계인이 마지막 수동태 문장에서도 행위자로 등장한다. 또 다음의 블랙홀에 대한 긴 영문 텍스트를 보고 어느 글이 더 자연스럽게 읽히는지 살펴보자.
1) Some astonishing questions about the nature of the universe have been raised by scientists studying black holes in space. The collapse of a dead star into a point perhaps no larger than a marble creates a black hole. So much matter compressed into so little volume changes the fabric of space around it in puzzling ways.
[해석] 우주의 본질에 관한 몇몇 놀라운 의문이 우주의 블랙홀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서 제기되었다. 죽은 별이 붕괴하여 구슬보다 작은 점으로 수축되어 블랙홀을 생성한다. 상당한 부피의 물질이 그토록 작은 부피로 수축하면 그 주변의 우주공간의 구조는 혼란 속에 빠진다.
2) Some astonishing questions about the nature of the universe have been raised by scientists studying black holes in space. A black hole is created by the collapse of a dead star into a point perhaps no larger than a marble. So much matter compressed into so little volume changes the fabric of space around it in puzzling ways.
[해석] 우주의 본질에 관한 몇몇 놀라운 의문이 우주의 블랙홀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서 제기되었다. 블랙홀은 죽은 별이 붕괴하여 구슬보다 작은 점으로 수축되어 생성된다. 상당한 부피의 물질이 그토록 작은 부피로 수축하면 그 주변의 우주공간의 구조는 혼란 속에 빠진다.
영어는 작문하려는 글 전체 맥락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중요한 정보(무거운 정보), 복잡하고 긴 정보(특히 수식어구)를 한 문장 내에서 뒤에 둔다(End Focus)고 했다. 결국 문장 말미에 위치시켜야 하는 새로운 정보가 문장의 첫머리에 불쑥 튀어나오면, 독자로 하여금 글을 단 번에 이해하기 힘들게 만든다. 왜냐하면, 독자는 화제(‘몇몇 놀라운 의문‘)보다는 술부에 담겨있는 내용(‘블랙홀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째 예문의 하이라이트 한 문장처럼 'black holes in space 우주의 블랙홀(행위자)‘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맺는 게 자연스럽다.
'스타일'이라는 영작문 책(통번역 대학에서도 윌리엄 스트렁크 Jr. 의 '스타일의 요소' 다음으로 유명한 영작 바이블이다)을 쓴 조셉 윌리엄스가 말하기를, 여기서 문장들이 '뚝뚝 끊기지 않고', '어수선하지 않고', '긴밀하게 연결된 거 같은' 말은 종이에 새겨진 문장 자체의 특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들이 주는 느낌을 묘사한다고 한다. 그러한 인상은 어순의 아래 두 가지 측면에 나온다고 한다.
문장이 끝을 맺고 다음 문장이 시작되는 방식 : 표층결속성(-> Cohesion, 응집성)
단락을 구성하는 문장들의 첫머리에 나타나는 패턴 : 심층결속성(-> Coherence, 통일성)
Cohesion and Coherence
잘 읽히는 글이 가지고 있는 위의 두 가지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 영문법의 규칙 중 하나인 '수동태'이다. 즉, 문맥(Context) 상 대상(주체와 객체, 화제와 서술부)이 바뀌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영어를 가르치는 교단에서 이러한 큰 그림을 먼저 보여주고, 왜 수동태가 필요한지를 알려주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게 한국의 주입식 교육이 영어를 왜 지엽적인 면만을 바라보게 만들고,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에서 필요한 학문이 아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입시용 과목으로 전락시키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일뿐이다.
다음 편에서는 글의 응집성과 통일성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긴 문장을 쓰는 기술('스타일' 저서 제9장 참고)인 수식을 구문론(Syntax)이라는 부차적인 개념으로 전락시킨 다른 사례를 들어보겠다.
참고 서적(Reference books)
1. 스타일(2018; 조셉 윌리암스, 조셉 비접)
2. 완벽한 공부법(2017; 고영성, 신영준)
3. 영어를 네이티브처럼 말하고 쓰는 법(최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