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영학 Dec 19. 2016

조직문화 LEAN 하게 접근하기

사업뿐 아니라 문화도 LEAN 하게

올 가을에 머니투데이에서 주최했던 스타트업 컬처 콘퍼런스에 다녀왔다.




교수님들도 몇 분 나오시고, 네이버, 유한킴벌리, 우아한형제들에서도 오셔서 강의를 해주셨다. 내가 점점 배민빠가 되어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중에서도 우아한형제들 박일한 경영지원실 이사님의 강의 한 구절이 마음에 남는다. '직원은 관리가 아닌 관심의 대상'이라는 제목의 강의였다. 


사실 배달의민족 조직문화에 대해서는 저번 글에서도 살짝 언급한 적이 있다.


전설의 레전드가 된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방법 11가지'


저렇게 정리되어 있는 문구 외에도 배민 사무실에 보면 여기저기 여러 가지 포스터들이 붙어있다고 한다. 


요즘은 저 마크보면 자꾸 이상한 것들만 떠오르긴 하지만...


배민 개발자들이 모여있는 사무실이 있는데 사원증을 찍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인가 보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원증을 안 들고 화장실에 갔다가 사무실에 못 들어오니까 자동문을 똑똑하고 사람이 나와서 열어주길 기다리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문 가까이 앉아있는 사람들이 점점 그것 때문에 신경 쓰이고 귀찮아지니까 어느 날 문 앞에 이렇게 써붙였다. 


우리는 똑똑하지 않아요


아주 배민스러운 언어유희 문구다. 이건 아주 사소한 일에 대한 것이지만, 동시에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회사에서 일할 때의 규율이자 문화가 되기도 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과 같이 일하게 되면 며칠만 지나도 서로 간의 규칙, 규율이 생긴다. 그것을 공개적으로 논의해서 문구로 정리하지 않을 뿐이지, 암묵적인 규율이 정리되어야 서로 마음 편하게 같이 일할 수 있다. 즉, 넓은 의미에서의 조직문화는 누군가가 나서서 논의하고 정리해야지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같이 일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되어있다.



박일한 이사님 강의에서 감명 깊었던 것은, 조직문화 그 자체보다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어떤 이슈에 대해 규칙이나 규율이 필요하다고 직원들이 느끼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기간을 정해놓고 일단 한번 해본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실행해보고, 다시 직원들의 의견을 듣는다. 직원들이 이 규칙이 좋고 계속 필요하다고 느껴보면 남겨두고, 생각지 못한 부작용들이 생기면 아무 일 없었던 듯이 폐지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접근 아닌가? 린 스타트업은 사업만 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문화도 린하게 접근한다.


 




반면 인사제도는 린하게 접근할 수 없다. 적어도 기존 대기업들의 성과평가 제도 하에서는 그렇다. 기존 인사제도에서는 평가 기준 기간이 시작할 때 성과평가의 기준(KPI)을 입력하고 목표치나 가중치 등을 입력한다. 그리고 대충 6개월이 지나면 평가 시즌이 되어 그 목표를 달성했는지를 놓고 평가를 결정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중간에 인사제도가 바뀐다는 것은 마치 고3 여름방학에 대학입시 기준이 바뀌는 것과 같다. 엄청난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엄청난 혼란 때문에 한 달 후에 다시 입시 기준이 바뀌었다고 해보자. 아마 교육부 장관이 사퇴해야 할 것이다.


즉, 인사제도는 irreversible 하기 때문에 최대한 신중하게, 미리 장단점과 예상되는 사람들의 반응을 치밀하게 고려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반면 제도가 아닌 규율/규칙 단위에서의 조직문화는 좀 더 flexible 하게 천천히 다듬어 나가는 느낌으로 접근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많은 규모 있는 조직에서 이 둘을 같은 사람 - 인사담당 임원 - 이 관장한다.



대기업들이 왜 스타트업 조직문화를 도입하자고 외치면서 하나도 변화가 없는지 아는가? 그 회사에서 가장 보수적인 사람들이 모여서 그 일을 진행하고 결정하기 때문이다. 많은 회사에서 문화팀은 인사부 산하에 있다. 이런 조직구조 하에서 문화팀은 오직 회사의 각종 문화행사들을 준비하고 진행하며, 기껏해야 사내 소식지 예쁘게 편집해서 전체 메일 돌리는 정도밖에 하지 못한다. 직원들은 문화팀에 대해 아무 기대도 하지 않으며, 그냥 회사에 행사가 있을 때 우리를 귀찮게 하는 부서로 밖에 여기지 않는다. 직원을 위한 부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윗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부서다.


그렇다면 문화팀은 대체 어디에 붙어있어야 하는가? 사실 이 질문을 하려면 그전에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데 1) 대체 문화팀이 무슨 일을 하는 인가? 그리고 2) 문화팀이 꼭 필요한가?이다.



우선 문화팀이 대체 무슨 일을 하는 팀인가?


혹시 문화팀이 이미 존재한다면 이 팀은 회사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문화를 명시적으로 정리하면서, 바람직하지 않은 문화가 퍼져나가는 것을 막고, 회사 문화와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warning을 날리는 것이 주 미션이 되어야 한다. 회사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임무를 맡게 될 수도 있으나, 그것이 문화팀의 존재 목적이 되어버리면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직에 문화팀이 꼭 필요할까? 사실 스타트업에 있어서는 문화팀이 사치다. 그리고 조직이 좀 더 커지더라도 가급적이면 문화팀을 별도로 두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 위에 언급한 듯이 문화는 자연스럽게 사람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모두가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문화팀을 따로 두는 순간 문화가 다 같이 만들어가야 할 대상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문화를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관리받는 대상이 되어버린다.



그래도 규모가 좀 큰 조직은 문화팀이 없으면 사내 각종 이벤트들을 어떻게 진행할지 걱정될 수도 있다. 우아한 형제들은 이제 규모도 꽤 되었고 회사 문화상 이런저런 행사들을 자주 여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이벤트를 그때그때마다 직원들이 자원해서 참여하고 진행한다. 물론 별도로 문화팀이 있는 조직도 행사 때 문화팀 인력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는 어렵고 직원들의 신청을 받아 참여시킨다. (최악의 경우는 돈 주고 외주를 맡긴다) 그런데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문화 행사를 만들어 나가는 것과 문화팀이 있는 상태에서 행사 진행에 참여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우선 전자는 당연히 직원들이 행사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정말 직원들이 원하는 행사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후자는 문화팀에서 계획을 거의 마친 상태에서 직원들은 정말 머리가 아니라 손발이 필요해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전자는 직원들이 참여하면서 무언가를 같이 만들어 나가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고 그것으로 끝이지만, 후자는 직원들이 같이 참여해서 만든 무언가가 내가 아닌 어떤 문화팀 실무자 개인의, 혹은 팀의 성과로서 윗사람에게 평가받게 되는, 결국 내 노력으로 저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는 착취 같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이게 심하게 주객이 전도되면 윗사람이 원하는 행사니 무조건 각 팀에서 차출해서 인원을 채우라는, 문화팀이 갑질을 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회사 행사에 동원(?)된 적이 있는 대기업 직원들은 슬프게도 무슨 말인지 잘 알 것이다.






문화는 중요하다. 그렇지만 문화는 한번 정해버리면 고치기 힘든 법과 같은 제도는 아니다. 문화는 사람 사이에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정리되는 것이고, 조직이 함께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점점 진화하고 다듬어지는 것이다. 문화는 본질적으로 린 하다.


문화가 업무가 되고, 문화를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순간부터 문화는 그 팀만의 업무와 책임이 되고, 다른 사람들은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입장이 아니라 관리를 받는 입장이 된다. 바람직한 회사 문화에 대해 고민하는 것만큼, 특히 큰 조직일수록 문화를 누가 관리하고 유도해 나갈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가장 변하기 싫어하는 조직에 변화 선도 역할을 맡기는,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시추에이션은 이제 그만 보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文 + 武 = 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