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를 따지게 만드는 언어와 눈 맞춤
1997년 어느 여름날, 미국에서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었던 나는 처음으로 한국의 '중학교'라는 곳에 가게 되었다. 미국에 오래 산 것은 아니고 딱 2년 살았는데, 그동안 어머니께 '한국 아이들은 네가 미국에서 노는 동안 밤새 공부하고 있다'라는 협박을 하도 많이 들어서 나는 모범생 국민학생에서 바닥을 깔아주는 중학생이 될까 봐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중학교에 전학 오자마자 같은 반 친구들에게 괜찮은 학원을 소개받아 어머니 손을 끌고 등록했다. 원장님도 미국에서 굴러들어 와 한국 중학교 수업을 받은 적이 없는 녀석을 어느 수준의 반에 넣어야 하는지 고민됐던지 이것저것 문제를 풀라고 줘보고 갸우뚱거리다 그 날은 지나갔고, 그다음 날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는 처음으로 '학원버스'라는 것을 타고 평촌 학원가의 어느 학원 종합반에서 처음으로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처음 학원에 간 그 주에 문제의 사건이 발생한다.
나는 미국에 가기 전까지 오락실에서 가히 혁명에 가까웠던 '킹오파 94'를 하다가 미국에 갔었다. (킹오파 94가 왜 혁명인지는 30대 중후반 아재들에게 물어보면 안다...) 그런데 빌어먹을 미국 놈들은 오락실에 킹오파가 없고 기껏해야 '엑스맨'이나 '모탈컴뱃3' 따위나 하고 있었다.
그러다 미국 생활 1년 만에 새로 한국에서 온 형이 한국에서 플스와 '킹오파 95'를 가져와서 맨날 그 집에 죽치고 살았는데, 그 형이 가져온 '킹오파 96' 공략집이 충격과 공포였다. 쿄가 장풍을 안 쏘다니... 킹오파 96은 94, 95에 비해 시스템이 엄청 바뀌었는데, 당최 공략집만 읽고는 무슨 느낌인지 알 수가 없었다. 궁금증을 안고 한국에 귀국한 나는 학원에 처음 가자마자 결심한다.
이번 주에 오락실에 가야겠다
그렇게 나는 학원 친구들에게 평촌 학원가에 오락실이 네 군데 정도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학원에 간지 삼일 만에 집에 가는 학원버스를 타지 않고 혼자 길 건너 건물 지하 오락실에 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려고 했다'. 지하 오락실을 향해 봉황각으로 계단을 내려가려는 찰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웠다.
...: "야, 너 일로와 봐."
나: "어? 나?"
...: "너 몇 학년이냐?"
나: "중2인데?"
...: "나 중3이야."
나: "어..."
...: "어디서 반말이냐? 눈 깔아."
나: "..."
이후는 상상에 맡긴다. 하여튼 난 그날 킹오파 96을 해보지 못했다.
그때는 내 지갑이 털렸다는 사실이 문제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더 큰 문제가 그 날의 대화에 내포되어 있었다. 바로 '존댓말'과 '눈 맞춤' 문제다. 난 한국에서는 중2가 중3한테 존댓말을 써야 하는지 상상도 못 하였고, 눈을 깔아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그리고 그 두 가지 문제가 지금 우리나라의 수직적 조직문화의 근본 원인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수직적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부분 동의한다. (물론 최근 많이 바뀌어가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이런 조직문화의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의 남자가 다녀와야 하는 군대를 꼽는다. 일부는 좀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장유유서를 내세우는 유교문화를 꼽기도 한다.
나도 군대를 현역으로 다녀왔고, 우리나라의 수직적 조직문화의 원인은 군대의 상명하복 문화라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아버지가 육사 나오신 군인 출신이다...) 그러다 어떤 뉴스를 보고 군대가 원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게 되었다.
군대가 수직적 조직문화의 원인이라면 아직 군대도 안 다녀온 저것들은 왜 저러는 걸까? (뭐 가끔은 복학생이 저 짓하긴 하더라) 생각해보니 나도 대학교 1학년 때 신입생 환영회 전초행사(?)로 고등학교 1년 선배들에게 집합당해서 열심히 캠퍼스를 뛰다가 술 마시러 갔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난 2학년 때 1년 후배들 굴리는 자리에 나가지 않았다. (아닌가? 기억이 가물가물...)
게다가 군대가 원인이라면 왜 여자끼리 모인 조직도 그렇게 위아래를 따지는가? 예전에 일하던 업종 때문에 디자이너 언니들을 좀 알게 되었는데, 그 동네야 말로 언니들에게 끽소리도 못한다. 또 희한한 건 우리나라 사람이지만 미국 시민권자인 사람들도 (그래서 군대 안감) 우리나라에서 일할 때는 수직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외국인을 대하며 영어로 말할 때랑,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어로 말할 때랑 태도가 다르다.
어떻게 보나 군대는 수직적 조직문화의 근본 원인이 아닌 것 같다. 다만 그런 문화를 강력하게 증폭(?) 시켜주는 최적(???)의 환경일 뿐이다.
내 생각에 수직적 조직문화의 근본 원인은 '존댓말'이다. 한국어만큼 언어 전반에 높임과 낮춤의 개념이 배어있는 언어도 없는 것 같다.
거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나와 비슷한 레벨의 사람'의 범위가 너무 좁다. 중학교 때부터 한 학년만 차이가 나도 존댓말을 쓰도록 강요당한다. 군대에서도 한 달 단위로 선임/후임이 나뉘며, 회사에 들어가도 동기는 정말 동시에 입사한 사람들만 동기일 뿐이다. 어떤 조직에 있든지 그 조직에서 나와 수평적 관계에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나머지는 전부 내 위거나 내 아래이다.
하도 어렸을 때부터 이런 관계 속에서 살다 보니, 일단 누군가를 만나면 그가 나보다 위인지, 아래인지 교통정리가 되어야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다. 나와 조금이라도 위/아래로 차이가 날 것 같은 사람과 갑자기 '수평적'으로 지내라고 하면 굉장히 어색해한다.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어떤 부장님이 계신데, 이분은 학부를 한국에서 졸업하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에 미국에서 십여 년을 더 일하시다가 2~3년 전 한국에 귀국하신 분이다. 이분과 조직문화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사람들은 윗사람에게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수평적으로 지내자고 하면 갑자기 '대든다'. 수평적으로 지내자고 한 것뿐인데 수평적인 것과 대드는 것의 차이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무언가 의견을 내보라고 해서 의견을 냈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기 의견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수직적' 문화라서 자기 의견이 무시되었다고 생각한다."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자고 하면 눈을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 '노려보는' 것 같다."
물론 이 분이 일부 케이스를 너무 일반화하셨을 수는 있지만, 그중에 일부는 나도 공감이 된다. 우리는 윗사람과 수평적으로 지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아직 내 딸은 유치원생이라, 요즘도 중학교에 들어가면 한 살 위에 선배들에게 존댓말을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마음 같아서는 무슨 캠페인을 벌여서라도 위아래 세 살 정도까지는 서로 반말을 쓰자고 하고 싶다. 어릴 때부터 한 살 차이도 위아래가 있다고 세뇌당하고 자란 사람들에게 다 커서 수평적으로 소통하자고 하는 것은 굉장히 어색한 일이다.
최근엔 여러 회사들에서 직급을 부르지 않고 서로를 '님'으로만, 혹은 영어 이름으로만 부르는 움직임이 있는데, 도움이야 되겠지만 여전히 부하는 상사에게 존댓말을 쓰고 상사는 부하에게 반말을 쓰는 상황이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요즘에도 부하에게 반말 쓰는 사람이 있나요?'라고 한다면 아직도 꽤 많다. 영어와 달리 한국어는 호칭뿐만 아니라 언어 전반에서 위아래가 드러나기 때문에 호칭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는 환경(아니면 정말 모두가 서로 반말하든지...)에서만 수평적인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
존댓말과는 또 다른 문제지만, 회사에서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소리 중 하나가 "아 됐고~", "내가 맞다니깐~" 하는 것이다.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제삼자에게 하는 것이어도 듣기가 싫다.
물론 어떤 일을 좀 더 오래 하다 보면 경험이 생기고, 경험이 쌓이면 직관이 된다. 상사는 정보가 충분히 모이지 않은 상태에서도 부하보다 직관적으로 더 맞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렇지만 부하직원이 하는 말이 혹시 직관과 어긋나더라도 말을 중간에 끊으면서 무안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당신 말이 정말 맞을 수도 있지만, 다음번 언젠가 당신이 틀렸을 때도 그 부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일단 말을 다 들어주고 이야기 하자.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고 한 데에는 다 조상의 지혜가 담겨있다.
그리고 대화할 때 부하 직원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늘 윗사람 앞에 '눈을 깔고' 살아와서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외국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면 뭔가 켕기는 것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서 신뢰에 영향을 미친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중국에서 근무할 때 인상 깊었던 점 중 하나는 신입사원들도 당당하게 윗사람의 눈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재밌게도 눈을 마주치는 것이 불편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윗사람이 딴 곳을 보며 눈을 피한다.
이렇게 쓰고 있는 나도 한국사람인지라 습관적으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그냥 노트북을 쳐다보면서 자기 할 일 하면서 옆사람과 대화를 한다거나,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이야기한다. Google의 Project Aristotle에서 팀원들이 얼마나 타인의 감정을 잘 캐치하는지 측정하기 위해서 눈만 보면서 감정 상태를 맞추는 테스트를 한 것을 기억하는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이야기하다 보면 미묘한 비언어적 신호들을 놓치게 되고 같은 말을 하더라도 서로 오해할 여지가 커진다. 아까 캠페인을 벌여서라도 어릴 적에 한 두 살 차이끼리는 존댓말을 쓰지 않게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캠페인에는 나이를 불문하고 '눈 깔아'를 없애는 것도 포함된다.
이것도 리액션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가끔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실무자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질 않는 상사가 있다. 자신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고, '네가 모른 무언가'가 있으니 그냥 시키는 대로 하자는 식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하면 좋은지 조언 해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조언은 '일단 시키는 대로 해서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다음에 원래 해야 하는 방법대로 해라'였다.
얼핏 들었을 때는 무슨 대단한 지혜가 담긴 말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은 짓이다. 일단 회사는 무슨 죄인가? 일단 시키는 대로 하는 동안 회사의 자원이 낭비되고 내 시간과 월급이 낭비되고 상사의 시간도 낭비된다. 그 모든 것이 '말해도 듣질 않는' 상사 때문에 일어난다. 그리고 시키는 대로 해서 그게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분이 순순히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군요' 할 것 같은가?
내가 기억하는 황당한 케이스가 있다. 어떤 프로젝트 팀이 실행 안을 만들어서 윗분께 보고하면서 프로젝트 전체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무엇이 결정되어야 하는지 주요 마일스톤을 보고했다. 그런데 이 분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디테일을 계속 지적하면서 결정을 미루고 마일스톤들을 다 무시했다. 결국 의사결정 지연 때문에 프로젝트 막판에 가서 아주 큰 문제가 생겼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었던 그분은 오히려 '그 시점까지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에 대해 자기에게 말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프로젝트 팀의 리더를 해고하고 자기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다.
그럼 그런 상사 밑에서 일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안타깝게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마음 같아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다른 부서로 이동하거나 이직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모두가 그럴 순 없는 노릇이다.
다만 내가 혹시 그런 사람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남들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는지 아니면 급한 마음에 남의 말을 끊는 사람은 아닌지. 부하 직원들이 나에게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이야기하는지 아니면 내가 묻는 말에 단답형으로만 대답하고 있는지. 만약 부하 직원이 '예전에 해본 적은 없지만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도 않은' 의견을 이야기한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지. 부하 직원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을 괘씸하게 여기진 않을지.
뭐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회사에서는 그래도 잘 들어주는 편인 것 같은데 아내 말은 지지리 안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