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vs 사명,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부류이다. 그래서 직원들을 평가할 때도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직원에게 좋은 평가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근거는 경영학 교과서들에 나오는 ‘회사는 주주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라는 명제이며, 인류의 역사를 돌아봐도 회사의 등장은 ‘돈 있는 귀족들이 그 돈으로 사람들을 고용해 더 큰돈을 버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회사가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우리 회사가 없어져도 슬퍼할 고객이 없을지라도, 회사가 지금 돈을 벌고 있으며 월급을 주고 있다면 괜찮다. 이들에게 회사는 돈을 버는 것, 그래서 고용을 창출하고 적당한 월급을 주는 것만으로 모든 사회적 책임을 완수한 것이다. 그 마저도 어떻게 하면 부담을 줄일 수 있을지 열심히 고민한다.
두 번째는 사명이나 가치를 중요시하는 부류이다. 회사는 돈이 아닌 존재의 목적이 있으며, 그 목적을 충족시키는 대가로 돈을 번다. 회사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는 고객을 만족시키는데 쓰기 위함이다. 만약 어느 날 우리 회사가 없어져도 슬퍼할 고객이 없다면, 그들에게 회사는 존재의 이유가 없는 곳이다. 회사가 고용을 창출하고 월급을 주는 것은 사회의 일원으로써 최소한의 의무이며, 더 큰 사회적 가치는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 즉 사명에 다가감으로써 창출된다. 이들에게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의 문제와도 같다.
사실 이 문제는 피터 드러커가 이미 답을 냈다. 피터 드러커는 기업의 존재 목적이 주주가치 증대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며, 기업의 존재 목적은 고객을 만족시키고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어쨌든 이 글은 둘 중에 어느 쪽이 맞는지 논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문제가 과학이나 학문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회사는 무조건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가치나 사명은 비영리조직 같은 곳에서나 고민할 문제일 뿐이다. 반면 왜 일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계속 이번 달에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물어봤자 그는 돈을 1원도 더 벌어오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세상에 중요한 가치를 주는 일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고 있다고 해보자. 같은 사람을 두고도 돈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저 사람은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자신의 일에 만족한다고 생각할 것이며, 가치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저 사람은 사명에 따라 살기 때문에 자신의 일에 만족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존재 목적과 수익창출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개인, 혹은 집단의 믿음의 문제다. 회사 차원에서도 분명 수익을 더 중시하는 성향의 회사와 가치를 더 중시하는 성향의 회사가 나뉜다. 우리가 종교를 바꾸기 쉽지 않은 것처럼, 한쪽 진영의 사람들이 다른 쪽 가치관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회사를 잘 선택해야 한다. 기독교인이 절에 들어가 스님들과 지내면 불편한 것,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이 교회의 초청 잔치에 붙들려와 예배당에 앉아 있으면 어색한 것과 똑같은 것이다.
문제는 교회와 절은 구분하기 쉽지만, 돈 중심의 회사와 사명 중심의 회사는 내부자가 아니면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웬만한 회사는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형식적이라도 사명과 핵심가치가 있다. 인터넷에서 기사를 검색하면 그 회사의 사회공헌 활동(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도 쉽게 찾을 수 있고, 좀 큰 기업들의 경우 아예 미디어에 기업 이미지 광고를 내보낸다. 우리 회사는 수익이 중심이며, 돈을 많이 벌어다 줄 인재를 구하고 있다고 말해줄 면접관은 아마 찾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익 중심의 회사와 가치 중심의 회사를 구분할 수 있을까?
말은 꾸며내기 쉽다. 또 요즘 웬만한 회사는 홍보팀이 있어서 기업 이미지를 꾸준히 관리한다. 사명 중심의 회사인지 돈 중심의 회사인지 구분하려면 말이 아니라 행동을 봐야 한다. 그것도 사명과 돈이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순간에 어떤 행동을 하는지 봐야 한다.
‘사람이 미래'라던 어떤 기업은 신입사원을 정리해고 대상에 넣는 센스를 보여줬는데, 홈페이지에 가보면 ‘사람' 중심의 ..만의 가치를 기반으로 고객, 주주 그리고 투자자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한 차원 높은 고객만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되어있다. 사람 중심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주와 투자자의 가치는 엄청 고민하나 보다. ‘Excellence in Flight’을 외치며 ‘최상의 운영체제', ‘변화지향적 기업문화', ‘고객 감동과 가치 창출'을 미션으로 삼은 곳에서는 너무나 탁월한 나머지 고객(?) 한마디에 활주로에서 회항도 할 수 있는 운영체제와 기업문화를 보여줬다.
구글이 대단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연결시킨다는 사명을 위해 정보의 흐름(특정 검색어의 검색 결과)을 검열하려 했던 중국 시장에서 아예 철수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분명히 창업자 세대가 처음 회사를 세워서 키워낸 과정에는 훌륭한 사명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경제적 희생의 스토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의식적으로 하는 사회공헌 활동을 제외하고는 사명에 걸맞은 의사결정을 보여준 곳을 찾기 어려워진 것 같아 아쉽다.
요즘 시대에 평가와 인센티브가 없는 곳은 별로 없다. 그리고 돈은 강력한 동기부여 수단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모든 것을 돈과 연결 지어 설명한다면 돈 중심의 회사일 가능성이 높다.
채용담당자가 회사의 장점으로 경쟁사보다 높은 급여/인센티브나 각종 복리후생만을 직접적으로 강조한다든지, 간접적으로 우리 회사가 얼마나 큰지, 대기업 순위 같은 브랜드 가치만을 이야기한다면 지원자는 그 회사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을까? 물론 다른 조건이 비슷한 두 회사를 놓고 저울질하는 지원자라면 이런 요소들이 마지막 변수가 될 수 있겠지만, 처음부터 회사에 대해 자랑할 것이 그것밖에 없다면 그 회사 사람들이 평소에 어떤 마인드로 회사를 다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회사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우리 매출이 얼마인지, 사업 영역이 얼마나 큰지, 세계에서 몇 등인지만을 말하는 회사는 돈을 버는 것에만 집중하는 곳일 것이다. 페이스북은 세상을 연결시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등수는 의미가 없고, 사업 영역이 얼마나 넓은 지도 의미가 없다. 가끔 페이스북으로 연결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정도만 자랑하는데, 그것은 그들의 사명과 직결된 지표이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는 사명을 위해 존재하며, 개인도 돈보다는 자신의 미션을 따라 일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돈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나 조직에게 당신들은 틀렸으니 생각을 고치라고 말할 마음도 없다. 그냥 서로 얽혀서 같은 조직에서 일하며 고통받지 않도록 피아식별을 확실히 하자는 것이다. 가장 흔한 이혼 사유가 서로 간의 성격차이인 것처럼, 이것은 믿음의 문제이며 믿음이 다른 사람이 같이 일하면 갈등을 피할 수 없다. 가치관을 바꿀 것이 아니라면, 조직이든 개인이든 서로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처음부터 좀 더 솔직해지는 것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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