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드백 스킬이 아니라 내용에 관한 이야기
성장을 위한 조직문화를 만드는데 피드백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정작 피드백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찾아보면, '서로 감정을 덜 상하면서 피드백 주는 법' 같이 스킬적인 측면만 강조된 경우가 많다. 스킬은 그렇다 치고 과연 어떤 내용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면 좋을까?
이화여대, 미국 코넬대 교수이자 대한리더십학회장인 윤정구 교수님이 쓰신 ‘진정성이란 무엇인가'란 책이 있다.
이 책에서는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론)의 집합을 ‘정신모형'이라 칭한다. 정신모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정신모형 I은 우리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론이지만 믿음이나 신념으로 변화해서 더 이상 판단의 대상이 아닌, 암묵적 지도의 형태로 변화한 이론들이다. 정신모형 I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검증된 이론들의 체계로 현재의 삶에 적합한 습관적 행동을 가이드해준다.
반면 정신모형 II는 사명에 따라 자신이 미래에 성장해 있는 모습을 상정하고 이에 대한 믿음을 발전시켜 만든 모형이다. 이러한 정신모형 II는 현재의 연장선상이 아니라 현재와 질적으로 다른 미래의 삶을 그리면서 생성된다. 정신모형 I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암묵적으로 사고방식을 지배하고 있다가, 정신모형 II가 생긴 후에야 그 존재를 드러낸다. 이것을 깨닫게 된 사람은 자신이 지금 세상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고(정신모형 I),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며(정신모형 II), 그렇기 때문에 그 두 가지 모형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의 정신모형 I과 II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사명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바로 진성리더(authentic leader)가 된다.
또한 이 책에 따르면, 학습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우선 일원학습(single-loop learning)은 남에게 배워서 아는 것이다. 우리가 어릴 적 학교에 다니며 배우는 지식과 사회규범, 어른이 되어서도 책이나 강의를 통해 배우는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이원학습(double-loop learning)은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만의 심성모형 I, 혹은 자기통제 정신을 가지고 세상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그에 따라 행동한다. 이러한 행동의 결과는 우리가 심성모형을 통해 예측한 결과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이렇게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은 부분'을 놓고 내 심성모형이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를 파악하는 것이 이원학습의 과정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심성모형에 문제가 있어서 실수나 실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피드백(이원학습) 하지 않고 지나간다. 실수나 실패의 원인을 주변 환경이나 운의 영향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렇게 잘못된 심성모형이 그대로 방치되면 다음번 유사한 상황에서도 똑같은 실수나 실패를 할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문제는 예상치 못하게(혹은 예상보다) 성공한 경우다. 성공이라는 결과만 놓고 보면 좋은 일이겠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성공했다면 문제가 된다. 그것 또한 내 심성모형에는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성공이야 말로 주변 환경이나 운의 영향일 수 있는데, 이를 내 심성모형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피드백이 일어나지 않는다. 심성모형이 그대로이니 이후에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게 되는데, 그때는 이전과 같은 결과(성공)가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 예상치 못한 실패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성공도 피드백해야 하는 이유다.
가장 높은 단계인 삼원학습(triple-loop learning)은 자신의 심성모형 II를 심성모형 I과 비교하여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를 피드백하는 것이다. 즉, 삼원학습의 전제조건은 자신이 추구하는 심성모형 II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단계의 피드백이 가능하다면 현재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심성모형 I)에 매몰되지 않고 잠시 그 안경을 벗어서 객관적으로 자신의 관점을 진단할 수 있는 단계이므로, 발달심리학 개념으로는 자기변혁적 정신단계(self-transforming mind), 정재승 교수님의 표현으로는 ‘자기 객관화'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씨네21) 가장 위대하고 고등한 사고는 '자기 객관화' -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이학박사 정재승
피드백을 주기 전에 위에서 언급한 학습의 단계를 떠올리면 내용 정리에 도움이 된다. 자기 자신을 피드백할 때도 마찬가지다.
일원학습에 대한 피드백
잘하고 있는 일, 전문성이 돋보이는 부분에 대해 칭찬한다
좀 더 지식 습득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격려한다
이원학습에 대한 피드백
팀에 대한 기여, 성과에 대해 칭찬한다
실수하거나 기대에 못 미쳤던 부분에 대해 솔직하게 언급한다
삼원학습에 대한 피드백
되고자 하는 모습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되고자 하는 모습과 현재의 모습의 차이를 알려준다
실제로 팀원에게 피드백했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당시 나는 컨설턴트로써 데이터 분석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미국인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우리 팀원 한 명이 분석해야 할 데이터를 미국에 요청하면서 의도치 않게 잘못된 수신자에게 살짝 무례 해 보이는 메일을 보내서 문제가 되었다.
사태를 수습하고 그 팀원에게 다음과 같이 피드백을 주었다.
“영어로 메일을 보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현지인이 보기에 좀 무뚝뚝하게 메일이 간 것 같다”
→ 영어에 대한 피드백이므로 일원학습에 대한 피드백으로 볼 수 있다.
“수신자여야 할 사람이 참조로 되어있고, 참조여야 할 사람이 수신자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불필요하게 참조 목록에 임원까지 들어가 있어 일이 더 커졌다”
→ 이 팀원은 “예전에도 비슷한 식으로 메일을 보냈었는데 그때는 문제가 없었다"라고 했다. 이 내용은 지식의 문제라기보다 경험(과거 프로젝트에서의 이메일 소통)에 의한 판단(누가 수신자이고 누가 참조여야 하는지)에 실수가 있었던 것이므로 이원학습에 대한 피드백이다.
“팀에서 분석 역할을 주로 맡고 있지만, 우리는 컨설턴트로써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본인이 5년 10년 후에 데이터 분석 전문가가 되고 싶은지 팀을 리드하는 컨설턴트가 되고 싶은지 고민했으면 한다. 컨설턴트가 되려면 이번 이메일 건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소통 능력에 더 신경 써야 한다.”
→ 이번 일에 대한 피드백이라기보다 본인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심성모형 II)를 언급하고, 그 심성모형II와 지금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삼원학습에 대한 피드백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원학습이나 이원학습에 대한 피드백에서 그친다. 나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삼원학습 관점에서 피드백해주는 상사를 몇 명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일원학습과 이원학습 관점의 피드백을 열 번 듣는 것보다 삼원학습 관점의 피드백 한마디가 듣는 사람의 인생에 훨씬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전자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기 때문에 ‘다음번에도 그렇게 해야지’ 혹은 ‘다음엔 더 잘해야지’하면 그만이지만, 후자는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 곱씹게 되기 때문이다.
브릿지워터 어소시에이츠(Bridgewater Associates)는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이자 극단의 투명성을 추구하는 독특한 조직문화로도 유명하다. CEO인 레이 달리오(Ray Dalio)는 사람들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하나의 기계에 비유한다. 기계가 만들어낸 산출물의 품질에 문제가 있다고 하자. 관련 없는 제삼자 입장이라면 그저 품질 문제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을 진정으로 위하는 입장, 그 사람의 성장을 바라는 입장이라면 산출물만 놓고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 산출물을 만들어낸 기계를 같이 들여다보고 고쳐야 한다. 산출물만 고치는 것은 지적질이다. 기계를 들여다봐야 진정한 피드백이 된다.
이 글을 보면서 누구에게 어떤 피드백을 줄지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피드백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팀원에게서도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피드백해야 한다. 특히 삼원학습은 스스로의 내면에 대한 고찰 없이는 학습할 수 없는 단계이다. 지금 내가 어떤 정신모형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사명을 바라보고 어떤 정신모형을 새로 그려나가야 할지 한번 고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