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환경, 전략, 그리고 조직문화의 관계
처음엔 그저 호기심에 브런치에 이런저런 글들을 끄적거렸을 뿐인데 역시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인지 얼떨결에 수평적 조직문화가 왜 좋은지 설파하러 다니는 사람처럼 포지셔닝되었다. 이점에 대해서는 구글의 프로젝트 아리스토텔레스를 들어 이전에도 한번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좀 더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수평적을 떠나서) 어떤 조직문화가 다른 조직문화보다 낫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수평적 조직문화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는 논리가 '우리나라는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가지고 빠르게 성장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왜 지금은 수평적 조직문화가 필요하다는 걸까? 그걸 떠나서, 조직문화 A가 조직문화 B보다 낫다고 주장하려면 어떤 전제나 근거가 필요할까?
저번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강연에서 잠깐 나눴던 주제인데, 그때도 말했다시피 나도 완전히 정리된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어차피 앞으로도 한동안은 정리가 안 되겠다 싶어 그동안의 고민을 끄적여본다.
조직문화는 상대적인 것이며, 절대적으로 더 나은 조직문화는 없다는 관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기업문화 오디세이를 쓰신 신상원 님처럼 기업 인류학적으로 접근하는 분들이다. 마치 MBTI에 나오는 16가지 성격 분류 중에 어느 쪽이 어느 쪽보다 더 낫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처럼, 기업문화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기업문화 오디세이에서는 사회적 응집력, 교류의 정도, 경영의 체계성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조직문화 유형을 8가지(2x2x2)로 구분한다.*
각각에 대해 여기서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제국주의 갱'이나 '사회적 분열' 같이 명백하게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유형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유형이 다른 유형보다 낫다고 이야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류학자들이 문화에 접근하는 원칙이다. 마치 태평양 어느 작은 섬에 사는 부족의 문화와 미국의 문화 중에 어떤 것이 더 낫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혹은 MBTI에서 어느 성격이 다른 성격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기업문화 또한 유형 자체만 놓고는 옳고 그름이나 우월을 판단할 수 없다는 관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단서가 붙는데, 조직문화만 놓고는 우월을 논할 수 없지만 조직이 추구하는 전략에 더 적합한 조직문화는 있다는 것이다. 소명 중심으로 뭉친 단일 브랜드 조직에 더 적합한 문화가 있는 반면, 여러 사업부를 가진 성장 위주의 조직에 더 적합한 문화가 있다. 이렇게 전략과의 정합성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어떤 조직문화가 '그 조직에게 더 나은' 조직문화인지 논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여전히 그 조직에만 해당되는 것이지 보편적으로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기업 인류학적인 관점인 것 같다.
마찬가지로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보리스 그로이스버그는 조직원들의 소통 방식과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을 기준으로 목표, 배려, 질서, 안전, 권위, 결과, 즐거움, 학습의 8가지 문화양식을 분류한다.** 구분하는 기준은 조금 차이가 있지만 역시 이들도 어떤 조직문화가 좋고 나쁘다기보다 전략과의 합치 여부, 그리고 조직원 개개인이 생각하는 조직문화가 얼마나 수렴하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반면에 더 나은 조직문화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예를 들어 '숨겨진 힘, 사람'을 쓴 제프리 페퍼 교수는 일의 의미와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조직문화가 더 나은 조직문화라고 주장하고,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의 닐 도쉬와 린지 맥그리거 또한 직접적 동기(즐거움, 의미, 성장)를 극대화하고 간접적 동기(심리적/경제적 압박감, 타성)를 줄여주는 문화가 더 나은 문화라 이야기한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올린 회사들이 경쟁사 대비 어떤 점이 다른지를 연구하다 보니 그러한 결론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수많은 미국 경영서들의 접근방식이다) 즉, '어떤 문화가 더 나은 조직문화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어떤 문화의 조직이 더 장기적으로 높은 성과를 보였는가'를 제시하고 있다.
조금 다른 관점으로는 '경영의 미래'나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의 게리 하멜을 들 수 있다. 게리 하멜은 아주 대표적으로 관료제에 반대하며 관리가 아니라 자율에 근간한 경영혁신을 추구하는 사람인데, 그러한 경영을 도입한 조직이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관료제에 맞지 않기 때문에 자율적인 커뮤니티 형태의 조직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의 사이먼 사이넥은 인류가 처음 조직을 만들게 된 이유를 생존과 번영에서 찾으며, 상호간의 신뢰와 희생을 중시한다. 츠타야 서점으로 잘 알려진 마쓰다 무네아키도 '지적자본론'에서 자유와 사랑(혹은 신뢰)에 기반한 경영을 이야기한다. 효율이 아니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무조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휴먼 스케일'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이 모두가 어찌보면 특정 조직문화가 다른 조직문화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부류들이다.
처음에 언급했듯이 아직 머릿속이 완전히 정리되진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인류학자가 아닌 만큼 상대성을 얼마나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의 문제 같은데...
사람의 성격도 상대적이라지만 많은 조직에서 선호하는 인간상(?)에는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도 '더 나은' 성격이 없다는 것은 좀 naive하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요즘 같은 경영환경에선 대부분의 조직들이 계획을 효율적으로 추구하는 것보다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능력을 중요시해야 할 텐데 '보편적으로 더 나은' 조직문화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능력 있는 인재 상당수가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해도 '보편적으로 더 나은' 조직문화를 논할 수 없는 것일까?
여태까지의 중간 결론은 시대를 꿰뚫는 보편적으로 좋은 문화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현시점에서, 성과를 추구하는 일반적인 조직에게는 수평적 조직문화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여기서 '현시점'은 이미 언급한 대로 계획을 실행하는 것(전술적 성과) 보다 빠른 변화에 적응하는 것(적응적 성과)을 의미하며, '성과를 추구하는'은 그렇지 않은 조직(경영진의 안위나 조직 위계질서 유지만이 목적인)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굳이 강조한 것이다.
저번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강연에서는 적어도 스타트업들은 빠른 변화에 적응하여 성과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기에 어느 정도 자신 있게 '수평적 조직문화가 스타트업들에게 적합한 조직문화다'라고 주장했다. 공무원에게도 수평적 조직문화가 더 나을까? 잘 모르겠다.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로 변화에 적응하거나 성과를 내는 것보다 자기 자리 잘 챙기고 조직 내 권위를 지키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에게는 수평적 조직문화가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덧.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서 처음 뵙는 분이 다짜고짜 '수평적 조직문화가 왜 더 좋은가요?'라고 물어보시면 어떻게 대답해드릴 수가 없어요. 그 조직이 지금 어떤 상황이고, 어떤 전략을 추구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수평적 조직문화를 도입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 '제 성격이 어떤가요?'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ㅜㅠ
교과서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강연은 질문이 들어오면 적당한 답을 해주면 그만이지만 조직문화 강연은 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이 참 많습니다. 마치 '연애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같기도 하네요...
* 기업문화 오디세이 1권에 나온 분류이지만, 원 출처는 프랑스의 기업 인류학자 마크 르바이라고 합니다.
** 자세한 내용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 18년 1/2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