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와 팀원의 일은 다르다
처음 리더가 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있다. 리더가 되기 전까지 하던 일, 자신을 리더로 만들어준 그 일, 가장 익숙하고 잘할 수 있는 바로 그 일을 예전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이다. 심지어 자발적으로 두세 명 분의 일을 하기도 하고, 시원찮은 팀원들의 결과물을 보면서 그 사람의 일을 뺏어서 대신하기도 한다. 그렇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솔선수범해서 일하다가 어느 순간 팀의 성과가 엉망인 것을 깨닫는다.
그때부터는 화풀이가 시작된다. 자기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너희들은 뭐 하는 거냐, 오늘 하루 종일 대체 뭐했냐 하다가 나중엔 할 일을 ‘자발적’으로 찾아서 하라고 다그친다. 자발적. 알다시피 이 아름다운 단어는 보통 사람 갈굴 때 쓰인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며 지금 내 모습인데 싶은 리더가 있다면 부디 깨닫길 바란다. 우리 팀이 이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왜 성과가 안 날까? 바로 당신이다. 당신이 구조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직이란 결국 목표를 이루기 위한 팀이다.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 바로 구조다.
목표를 단순히 몇 개의 지표와 숫자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일이 제대로 되고 있을 때의 상태'라고 이해하는 것이 구조를 만들 때 도움이 된다. 이렇게 앞으로 일어날 일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을 심성 모형(mental model)이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편의점 사장의 월 매출 목표가 5,000만 원이라고 하자. 단순하게 목표를 5,000만 원이라고만 잡아 놓으면 월말에 가서 4,000만 원이라는 결과물을 얻었을 때 이를 고칠 방법이 없다. 장사가 순전히 운에 맡겨진다는 뜻이다. 여기서 심성 모형은 ‘우리 매장이 월 매출을 달성한 달에는 매장이 어떤 상태였는지’에 대한 뚜렷한 그림을 의미한다.
매장에는 주로 어떤 물건들이 어떻게 진열되어 있어야 하는지
어떤 요일, 어떤 시간대에 각각 어떤 부류의 손님들이 들어와서 무엇을 사는지
창고엔 어떤 물건들이 얼마큼 씩 있어야 하며, 어떤 속도로 줄어들고 다시 채워져야 하는지
요일/시간대 별로 어떤 태도의 아르바이트생이 몇 명 필요한지
경험이 많은 편의점 사장이라면 이러한 모습을 머릿속에 꿰고 있을 것이다. 스타트업 경영진으로 일하고 있는 한 친구는 심성 모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자기는 일이 제대로 되고 있을 때의 팀 분위기나 팀원들의 표정, 다른 부서와 정보가 교류되는 양상까지 떠올랐다고 한다. 꿈을 최대한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 봐야 이룰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조직의 꿈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이 바로 심성 모형이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많은 리더가 놓치는 것이 있다. 바로 목표와 심성 모형에 대해 자신의 상사와 상의하는 것이다. 당신이 사장이 아닌 이상 아무리 한 조직을 맡았다 해도 중간관리자이다. 조직을 관리할 권한과 책임을 위에서 위임받은 것이다. 당신의 상사가 팀에 기대하는 바가 있는데 당신이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리더로서의 커리어는 시작부터 어긋나게 될 것이다. 특히 팀원일 때부터 ‘내가 나중에 리더가 되면 이런 것을 꼭 고쳐야지’ 혹은 ‘이런 것을 꼭 시도해 봐야지' 같은 리스트를 가지고 있었을 때 상사의 기대와 다른 일을 하게 되기 쉽다. 물론 자기 현재 위치보다 한 단계 위의 고민을 미리 해보는 것은 커리어를 위한 좋은 습관이다. 다만 실제 그 자리에 가게 되면 그간 고민한 내용을 상사와 논의해보고 상사의 기대치를 이해한 상태에서 일을 시작해야 한다.
상사와 합의하여 심성 모형을 정리했다면 비로소 구조를 잡을 수 있다. 구조는 단순히 표현하자면 심성 모형으로 그려본 상태에 이르기 위해 뒷단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져야 하는지를 정리한 것이다.
만약 리더로서 자기 부서가 어떤 인풋을 가지고 어떤 단계를 거쳐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 머릿속에 그릴 수 없다면 그 부서의 구성원들은 단지 ‘이제껏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일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이렇게 구조를 그려봄으로써 결국 무엇을 파악해야 하는가?
심성 모형 : 조직의 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히 하고, 상사와 팀원들과 소통한다.
성과를 내는데 가장 핵심적인 단계 : 팀 성과에 가장 영향이 큰 과업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일을 하려면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파악한다.
성과의 병목 단계 : 팀이 더 큰 성과를 내는데 제약 조건이 되는 과업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파악한다.
포지션별 필요 강점과 역량 : 구조가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각 포지션에 어떤 스킬과 강점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한지 파악한다.
구조를 명확히 한 뒤에야 각 팀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탑다운(top-down)으로 정한 직무설계(job design)이다. 채용 공고에 보이는 직무 기술서(job description)가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온 것이다. 결국 구조를 파악하고 있어야 성과와 팀원을 관리할 수 있다.
구조에도 깊이가 있다. 예를 들어, 위 그림에서 Step 1, Step 2라고 표현된 각 단계들도 자신만의 인풋이 있고 중간 결과물이 있다. 또한 우리 팀의 기계는 회사 전체로 보면 완전한 기계가 아니라 하나의 부속품에 불과하다. 즉, 다른 기계(부서)의 결과물을 인풋으로 받아서 우리 부서의 일을 하면, 우리 부서의 아웃풋은 다시 다른 부서의 인풋이 된다.
이것을 위와 같은 프로세스 그림으로 표현하면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엄청나게 부서가 많은 삼성에서도 전사 레벨은 ‘개구제물마판서(개발, 구매, 제조, 물류, 마케팅, 판매, 서비스)’라 불리는 메가 프로세스(레벨 1)로 간단하게 표현될 수 있다. 각 단계를 다시 더 파고들어야 각 부서가 하는 일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 복잡한 회사조차 보통 레벨 6, 7 정도까지 내려가면 개인이 어떤 업무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까지 정리가 된다. 삼성이 그만한 성과를 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다들 ‘관리의 삼성'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관리는 구조를 알고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다.
리더는 자기 부서의 구조(가로축)를 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 회사의 구조 안에서 자기 부서가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부서 내 각 세부 업무는 또한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세로축) 자유자재로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한 리더는 회사 전체의 성과를 생각하며 우선순위를 세우고 팀을 리드한다. 일이 되게 하는 리더다. 반면에 자기 부서만 생각하는 리더는 회사가 성과를 내 든 말 든 주어진 일, 좀 더 대놓고 말하면 자기 평가표에 적혀있는 일만 한다.
회사 내에서 구조를 오르내릴 수 있는 것이 리더로서의 최소한의 기본 요건이다.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성과를 내려면 좀 더 나아가 우리 회사와 공급자 - 소비자까지 포함된 구조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그 안에서 재물, 돈, 정보가 흐르는 구조뿐 아니라 어느 한 단계에서 과부하가 걸리거나 오류가 생겼을 때, 일을 처리하던 주기가 달라졌을 때 전체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