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시키지 않은 일을 하는가?
일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해보자. 일을 하는 이유, 동기 문제다. 닐 도쉬(Neel Doshi)와 린지 맥그리거(Lindsay McGregor)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일하는 동기에는 크게 여섯 가지가 있다.
즐거움 : 일 자체가 즐겁다
의미 : 일의 결과가 가치 있다 여긴다
성장 : 일을 통해 자신의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낀다
정서적 압박감 : 타인의 시선(기대) 때문에 일한다
경제적 압박감 : 보상을 받거나(월급) 처벌을 피하기 위해(해고) 일한다
타성 : 어제도 일했으니 오늘 일한다
이 중 일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앞의 세 가지(즐거움, 의미, 성장)를 직접 동기(direct motive)라 하며, 일과는 연관이 없는 뒤의 세 가지(정서적 압박감, 경제적 압박감, 타성)를 간접적 동기(indirect motive)라 한다.
자, 그렇다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 여섯 가지 동기들을 골고루 활용하면 될까? 의외로 답은 ‘아니다’이다. 이들의 연구의 결론은 ‘직접 동기는 성과를 높이며, 간접 동기는 성과를 낮춘다’는 것이다. 즉, 어떤 동기는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중 하나가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이다.
이들은 조직원들이 느끼는 직접 동기 값에서 간접 동기 값을 뺀 것을 ‘총 동기 지수(total motivation factor)’라 정의했으며, 스타벅스, 홀푸드, 사우스웨스트 등 높은 성과를 내는 조직들은 경쟁업체보다 유의미하게 높은 총 동기 지수를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 일하는가’는 철학적인 질문이 아니라 경영에 핵심적인 질문이다. 그저 조직원들의 기분 좋은 출근을 위한 문제가 아니라 리더로서 성과를 내기 위해 고민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 자세한 내용은 닐 도쉬와 린지 맥그리거의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 참고
조직이 어떤 인사제도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총 동기는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같은 인사제도를 가진 같은 회사 안에서도 리더가 어떠한 마인드를 가지고 어떻게 직원들과 소통하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총 동기는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우선 리더 본인이 직접 동기 때문에 일하는지 간접 동기 때문에 일하는지가 중요하다.
총 동기에 대한 연구 중에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자신은 왜 일하는지 그리고 타인은 왜 일하는 것 같은지를 조사해보면 대부분 자신은 직접 동기 때문에 일하지만 타인은 간접 동기 때문에 일하는 것 같다고 답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해석해보면 자신은 뭔가 고귀한 목적을 가지고 일하지만 남들은 돈 때문에, 혹은 타성 때문에 일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리더가 이러한 마인드를 가지게 되면 부하직원들을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되며, 각종 보고와 상벌 제도에 집착하게 된다. 자신은 ‘성선설’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타인에게는 ‘성악설’을 적용하는 셈이다. 당신은 직원들이 왜 일한다고 생각하는가?
런던비즈니스스쿨의 게리 하멜 교수는 인간의 능력을 여섯 단계로 구분한다. 가장 낮은 단계는 복종으로, 지시에 따르고 규칙에 맞게 행동하는 능력이다. 다음은 근면함으로, 책임감을 갖고 양심적이며 체계적으로 일을 한다. 다음은 지식과 지성이고, 그 위에 추진력이 있다. 추진력을 지닌 사람은 남에게 요청을 받거나 명령을 받을 필요가 없다. 좀 더 높은 곳에 창의성이 있으며, 마지막 최정상에는 열정이 있다.
게리 하멜은 이중 ‘복종, 근면함, 전문적 기술은 거의 공짜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는 회사가 직원들에게 요구할 수 있으며, 관리/감독으로 쥐어짤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반면 추진력과 창의성, 열정은 그렇지 않다. 이 세 가지는 직원들이 매일 매 순간마다 회사에 ‘줄 것이냐' 또는 ‘말 것이냐'를 선택하는 선물과도 같다.
“창조경제의 시대에서 경제적 우위를 차지하고자 한다면 단순히 순종적이고 세심하며 눈치가 빠른 근로자보다는 상위 능력을 가진 근로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직원들에게서 이 선물을 이끌어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게리 하멜이 제시하는 비결은 우리 모두를 여기서 일하게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기꺼이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만한 고상한 이유가 사람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낸다.
구조에 대해 설명하면서 목표로부터 시작해서 탑다운(top-down)으로 팀원들의 과업을 정의하는 것이 직무 설계(job design)라 했다.
그런데 이렇게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주어진 일을 넘어서 스스로 자신의 업무 범위를 재정의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아래서부터(bottom-up) 자신의 직무 정의를 자발적으로 다듬는 것을 잡 크래프팅(job crafting)이라 한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왜 사람들은 굳이 시키지 않은 일을 할까? 바로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본능 때문이다.
예일대에서 조직행동을 연구하는 에이미 브제스니에프스키 교수는 대학병원의 청소부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매일 어떤 일을 하고, 일을 하면서 어떤 느낌을 받는지 물어보면서 청소부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첫 번째 그룹은 무엇을 하는지 물었을 때 병원 청소부가 할만한 일들을 그대로 읊었다. 이 일은 특별히 만족스럽지도 않고, 별다른 기술도 필요 없으며,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두 번째 그룹은 완전히 다른 답을 내놓았다. 이 일은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이며, 고도의 스킬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두 번째 그룹이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한 대답들이다.
* 참고로 이 두 그룹 간에 담당 구역이나 근무 시간, 누구와 소통하는지 등의 주변 환경은 차이가 없었다
“나는 나이 든 분들이 병문안을 오시면 복잡한 비잔틴 양식의 병원 건물에서 헤매지 않도록 병실에서 주차장까지 모셔다 드린답니다. 그분들이 돌아가다 길을 잃을까 환자분들이 걱정하시거든요.”
참고로 저렇게 하면 청소부로서는 규칙 위반이며, 잘못하면 해고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 혼수상태 환자들의 병실 층을 담당하는 또 다른 청소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정기적으로 병실에 걸린 액자들을 서로 바꿔줍니다. 어쩌면 주변 환경의 작은 변화에 자극을 받아서 환자들이 혼수상태에서 깨지 않을까 싶어서요.”
액자를 바꿔 다는 것이 당신이 해야 할 일 리스트에 있냐고 묻자 이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일로써 하는 건 아니에요. 나로서 하는 거예요. (that’s not part of my job, but that’s part of me)”
일에 더 몰입하고, 더 만족하고, 일 안에서 회복과 충만함을 느끼기 위해 자신의 직무를 다듬는 것이 바로 잡 크래프팅이다.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돈벌이로 바라보는 사람은 직무 설계에서 정해진 시킨 일만 한다. 일을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시킨 일을 넘어서 본인이 자발적으로 해야 할 일을 찾는다. 조직을 위해서, 상사를 위해서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더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일의 의미를 중시하는 사람은 단순히 같은 일을 다른 마음가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일 자체가 바뀐다. 만약 당신의 회사 규범에 ‘바닥에 쓰레기는 먼저 본 사람이 줍는다', ‘나다 싶으면 하자' 같은 것이 쓰여있다면 결국 직원들에게 잡 크래프팅 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잡 크래프팅에서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자기 일을 조정하는 것이다 (task crafting). 맡은 업무의 범위나 성격을 바꾸거나, 추가적인 업무를 맡는 것이다. 자료를 취합하기만 되는 사람이 내용을 요약하고 자기 의견까지 덧붙인다든지, 반복적인 업무를 하는 사람이 이를 자동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업무의 범위나 성격을 바꾸는 것에 포함된다. 자발적으로 회사에 새로 입사한 사람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코칭을 해주거나, 새로운 기술 트렌드에 대해 직원들에게 강의하는 자리를 만든다면 추가적인 업무를 맡았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조정하는 것이다 (relational crafting). 역시 관계의 범위나 성격을 바꾸거나, 조직 내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 수도 있다. 팀에 들어온 인턴과의 관계는 본래 업무적인 관계이지만 직업 선택의 기준이나 인생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인생선배-후배의 관계도 생기게 된다. 개발과 영업이 분리되어 있는 조직에서 개발자가 자발적으로 영업팀 사람들을 만나 고객의 불만과 요구사항을 듣는 것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드는 예이다.
세 번째는 본질을 재정의 하는 것이다 (cognitive crafting). 자기가 맡은 특정한 과업의 성격을 다르게 바라볼 수도 있고, 자신의 역할 자체를 재정의할 수도 있다. 도브(Dove)는 2000년대 중반부터 ‘진정한 미(Real Beauty)’ 캠페인을 벌여왔다. 정형화된 이미지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 국적, 인종별로 조금씩 다를 수 있는 미의 기준을 받아들이자는 캠페인이었다. 처음 기획 당시 진행했던 조사에서 단지 4%의 여성만이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도브의 마케터와 광고 에이전시는 광고 캠페인을 단지 판매를 늘리는 일이 아니라 여성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일로 만들었다. 앞서 언급했던 병원의 청소부들은 업무를 재정의 하는데서 더 나아가 자신의 역할 자체를 ‘치유자(healer)’나 ‘환자와 가족들을 돌보는(caring) 사람'으로 정의했다. 이들은 자신의 명함에 쓰여있는 공식적인 직함으로 자기 역할을 제한 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명에 따라 어떤 역할을 맡을지 정의한다.
잡 크래프팅은 누가,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을 하는지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 잡 크래프팅은 모든 곳에서 이루어지며, 어떤 사람들은 관리자들 몰래 규칙까지 어겨가면서 자신이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을 한다. 잡 크래프팅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연구에 의하면 잡 크래프팅은 직원들의 만족도와 헌신(commitment), 일에 대한 애착감(attachment), 행복감(happiness), 성과(performance), 그리고 새로운 직무를 맡을 의향(mobility to new role)을 모두 증가시킨다고 한다.
<기브 앤 테이크>, <오리지널스> 등으로 유명한 펜실베니아대 와튼 스쿨 교수 애덤 그랜트는 잡 크래프팅과 연관된 또 다른 연구를 진행했다. 대학의 기부금 모금가들과 하수 처리장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애덤 그랜트는, 자신의 일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직접 느끼거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잡 크래프팅 하는 것을 추천했다. 특히 자기가 맡은 업무가 보잘것없다고 느끼거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쉽게 감정적으로 소진(emotional exhaustion) 되는데, 본인이 하는 일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느끼는 것이 감정 소모에 대한 완충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하게 잡 크래프팅을 한 사람은 이전 직장의 채용팀장이었다. 이 사람은 우선 채용 업무를 조정했다. 단순히 지원 서류를 평가하고 면접을 보던 역할에서 지원자의 강점을 판별하고 적합한 직무와 매칭 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노하우가 쌓이자 이것을 채용에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교들을 돌며 아직 우리 회사에 지원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도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지원자들과 관계가 조정되었다. 지원자와 평가자의 관계가 아니라 학생들의 강점을 찾아주고 커리어를 조언해 줄 수 있는 멘토가 되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채용의 본질을 재정의 했다. 채용의 기준을 스펙 경쟁이 아닌 강점 기반으로 옮기는 것, 그래서 꼭 일류 대학을 나오지 않았더라도 비전과 자존감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도록 돕는 것으로. 지금 그분과 나는 강점 기반의 채용이 어느 한 회사만의 채용 도구가 아니라 좀 더 널리 사용될 수 있도록 태니지먼트(talent + management)라는 지적 콘텐츠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bottom-up으로 재정의, 즉 잡 크래프팅(job crafting) 한다. 잡 크래프팅은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내 일이 헛된 수고처럼 느껴지지 않기 위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행동이다. 내 삶의 의미를 부정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앞서 일의 구조를 잡는 것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top-down으로 정의, 즉 직무 설계(job design) 하는 것이라 했다. 조직이 제대로 운영되면서 성과를 내려면 직무 설계와 잡 크래프팅 양쪽이 모두 필요하며, 리더는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당신은 잡 크래프팅 하고 있는가? 그리고 팀원들이 잡 크래프팅 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