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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가 되지 그랬어!?!?

by 해피연두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함께 살면서 내가 부엌에 머무는 걸 싫어한다는 게 저절로 느껴진 걸까?

어쩌면 대화 중에 나도 모르게 "부엌은 정말 싫어!" 하면서 진심이 나왔던 걸까?

어느 순간부터 남편의 부엌 드나들기가 점점 늘어갔다.

남편이 부엌에 들어와 무언가를 도와주던 역할에서... 이제는 척척 레시피를 찾아가며 나보다 더 요리를 잘하고 있다.

가끔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부엌이 싫은 사람을,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만났다면...

우리.. 아마도 배달음식만 먹고사는 건 아니었을까? 건강에도 더 좋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들어갔테니..

그래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혼은 나와 반대인 사람을 선택하게 되는 걸까?




남편이 칠 남매의 여섯째로 자라면서 스스로 요리할 기회가 많았던 건 아니었다.

보통은 어머님께서 음식을 해주셨고, 남편은 그냥 해주는 음식을 군말 없이 먹는 편이었다.

가끔씩 해주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편의 어린 시절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강원도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많고, 형편은 여유롭지 않고, 그러니 뭔가 먹을 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던 것 같다. 뭘 해주든 싹싹 잘 먹어야 배부를 수 있던 시절.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혼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자취생활노하우를 쌓은 것도 아니었다. 혼자서 살았던 기간도 짧았고, 그다지 많이 해먹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남편은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즐긴다.(내 눈에만 그런 건가???)

가끔은 "요리사가 되지 그랬어!"라고 말한다.

돌아오는 답은 "전문적으로 하는 건 싫어"

그냥 우리 가족이 맛있게 먹기 위해 요리를 하는 것이지 많은 사람들에게 파는 요리는 자신 없다고...

하지만 나는 가끔 상상해 본다. 관심 있는 요리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했다면, 지금은 흑백요리사에 나갈만한 요리사가 되어있지 않을지.. 아니 티브이에 나오는 요리사가 아니어도, 작은 맛집을 운영하고 있는 요리사가 되어있지는 않을지... 어쩌면 제2의 백종원 선생님이 되어있지 않을까????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아쉽지만 이제야 그 길은 간다는 건 많이 늦었기에 내 생각은 다른 쪽으로 기울었다.

우리 나중에 "반찬가게를 차려보자"


주말 저녁이 되어갈 때쯤 어김없이 남편은 부엌으로 들어가 밑반찬을 만든다.

말 그대로 밑반찬이다.

*밑반찬: 만들어서 저장해 두고 언제나 손쉽게 내어 먹을 수 있는 기본적인 반찬을 뜻하는 말로 젓갈, 자반, 장아찌, 포, 마른반찬등을 포함하는 저장식품의 통칭(네이버)


종류는 장을 봐온 대로 그때그때 다르다. 기본적으로 멸치볶음이나 오징어포 볶음이 있다.

이건 정말 내가 손대지 않는 음식이다. 남편이 바쁠 때 내가 해본 적이 있었는데, 누가 만들었는지를 아이들이 금방 알아챘다. 그리고 말한다.

"이건 아빠가 한 게 더 맛있어!!"

아이고... 그걸 어찌 귀신같이 그리 잘 아는지!! 내가 했다고 하면 잘 먹지도 않아 결국은 나만 먹게 된다.

내 입엔 그 맛이 그 맛.. 비슷한데 그냥 좀 먹으란 말이야!!!!

그럴 때마다 섭섭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도 정성껏 만든 음식이라고!!!"


콩나물 무침이나 시래기 무침, 고구마줄기 같은 나물도 척척 잘해둔다.

나는 옆에서 필요 없는 것들을 치우고, 설거지를 돕고, 기미상궁이 되어서 간을 봐준다.

"여기 소금 쪼금만 더 넣어볼까?"

그렇게 완성된 맛있는 밑반찬들은 일요일저녁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 준다. 손이 많이 가는 깻잎도 양념장은 남편이 해주면 나는 척척 바르는 역할을 하고, 오이지의 물을 꽈악 짜주면 척척 양념을 넣어 무쳐주기도 한다.

이럴 땐 손발이 척척 맞는 환상의 호흡이다.

마치고 나서 산더미같이 나오는 설거지를 마무리하면 된다.

그리고 그 밑반찬을 두고 한 주 동안 맛있게 먹는다.



"그래 그냥 우리 가족이 먹는다고 생각하고 해 보는 거야.. 반찬가게 괜찮지 않아?"

요즘은 1인가구도 많고, 맞벌이도 많아서 반찬을 직접 해 먹기보다는 사 먹는 사람들도 많으니 나름 좋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해서 해본 말인데, 여전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내가 옆에서 환상의 짝꿍으로 보조도 잘해주고 설거지도 해주고 판매도 잘할 수 있는데...

"뭐 평양감사도 본인이 싫어하면 할 수 없지... 그럼 나에게만 앞으로도 맛있는 밑반찬 해줘!! 쭈~~ 욱 말이야! 이번 주말에는 뭐해줄 거야???"


반찬들.jpg 이번주 우리 집 밑반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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