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첫눈이 내린 것이다.
이제 진짜 겨울이 되었다.
겨울이 되기 전에 남편과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 집 연중행사 "김장 담그기"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닌데.. 한 달 전 아니 그전부터 수선스럽다.
"절임배추를 어디 걸로 사야 할까?"
"절임배추는 얼마나 예약해야 하지?"
"총각김치는 몇 단이나 담글까?"
무언가 하나씩 툭툭 떠오를 때마다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년에 어찌했는지, 재작년엔 어찌했는지... 그 기억들을 떠올려보면서 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김장의 양과 재료가 정해졌다.
어디서 사야 할지, 무엇을 사야 할지, 언제 사야 할지를 정하고 보니 결전의 날이 되었다.(무슨 판매하는 김치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가 먹을 김치인데도 나름 비장하게 각오를 다지고 시작했다.)
아침을 일찍 먹고는 절임배추를 찾아와 물을 빼두었다.
"어머나~ 이렇게 많았나? 이걸 언제 다하지?"
작은 채반에 산처럼 쌓여서인지 20kg 두 박스의 양이 꽤 많아 보였다.
하기 전에 한숨이 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배추도 사 왔고, 재료는 준비되었다.
그냥 해야 한다. 망하든 그렇지 않든 해야만 한다.
냉장고 안에는 이미 수육으로 먹을 삼겹살도 준비되어 있다.
"해보자!!!!!"
전날 미리준비해 둔 알타리를 절이고, 양파와 무를 갈고, 찹쌀풀을 만들고...
로봇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손발을 맞추었다.
그래도 전날 미리 몇 가지를 준비해 두어서인지 착착 잘 진행되고 있었다.
둘 다 성격이 급하기도 하지만 빨리 마치고 낮잠을 자고 싶어 하는 남편 때문에 무언가 더 부산스러운 느낌이었다.
"아! 쫌! 천천히 잘 생각해 보고 넣으라고!"
다행히도 마늘과 생강을 빠지지 않고 넣었지만 찹쌀풀은 냄비 안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에고!!!!!!!"
발견했을 땐 이미 늦었다.
이미 양념들은 배추와 한 몸이 되었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 들어가 버린 뒤였다.
"할 수 없지 뭐!!! 올해는 그냥 먹어야 해"
그래도 이번 김장엔 막내가 돕는다면서 나서서 그 작은 손으로 양념을 묻혀주었다.
바닥에 앉아 양념을 무치면서 "아이고 허리야~~~~~~"를 외치는 나와 남편과는 달리 묵묵히 끝까지 도와주는 모습이 기특했다. 덕분에 좀 더 빨리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년엔 절대 바닥에서 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꼭 서서 해야지! 앗 나의 소중한 허리!!)
김장을 마치고서는 신랑의 비장의 무기! 수육으로 맛있게 저녁을 마무리했다.
그 어떤 날보다 더 알차게 하루를 보낸 느낌이 들었다. 일 년까지는 아니어도 꽃피는 봄이 올 때까지 우리 집 식탁에 우리 손으로 만든 김치를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 침이 고인다.
물론 맛없는 김치 일수도 있다. 그래도 걱정은 없다. 팍팍 익혀서 볶아도 먹고, 밀가루 넣어 부침개도 해 먹고, 등갈비 넣고 김치찜도 해 먹고... 나름 이것저것 해 먹다 보면 어느새인가 사라져 버릴 테니까...!!!
역시나 남편은 김장을 마치고 깊은 숙면에 들어갔다. "애썼어!!!!"
그리고 막내는 다음날 장난감가게에서 갖고 싶던, 마음에 쏙드는 로봇을 하나 갖게 되었다.
"그래! 너도 애썼어!!!"
모든 재료의 양을 정하고 구매하고 준비한 나 자신도 "애썼어!!!"
이건 우리 집 올해의 김장이야기이다.
결혼하고 처음엔 엄마가 한두 번 도와주셨지만 이후 우리의 김치는 줄곧 우리가 해결해야 했다. 정말 하기 싫을 때는 사 먹기도 하고, 문뜩 도전정신이 생길 때는 직접 담가야 한다면서 이렇게 설치면서 겨울을 시작한다. 김치냉장고 속 든든히 들어있는 김치통들을 보니 "그래도 잘했네"라는 생각이 든다.
"맛있게 익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