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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레스토랑 가자

by 해피연두

며칠 전 가장 친한 친구와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했다.

중학교 때 만난 친구이니 벌써 30년이 넘게 알고 지낸 나의 가장 친한 친구.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그저 잘 지내고 있겠거니 하며, 안부전화를 한 것인데 친구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나 암 이래. 갑상선암"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뻔했다.

친구의 말로는 얼마 전에 갑상선 수술을 했고, 혹을 떼어냈는데 그중 하나가 암이었다고 한다. 크기가 자그마치 6cm가 넘는 혹이었다고. 다행히도 수술은 잘 되었고, 앞으로 방사선 치료가 한번 남아있다고 했다.


"나 지금 20일째 쉬고 있어. 지금 바람 쐬러 경동시장에 놀러 왔어~ 여기 좋다"


목소리는 변함없이 예전처럼 씩씩했다. 뭐라도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크게 도움이 될만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잘 쉬고 잘 먹고 너무 무리하지 말란 말밖에는.


친구는 중학교 때 같은 학교였지만 고등학교 때는 서로 다른 학교였다.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갈 때 즈음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 나는 대학교로, 친구는 취업의 길로. 그리고 친구는 내가 살던 곳과 거리가 먼 송파로 이사를 갔다.

나는 부모님에게 용돈을 타 쓰는 그저 그런 대학생이었지만, 일찍 취업에 길에 들어간 친구는 달랐다. 당시 잘 나가는 은행에 취업한 친구이기에 늘 경제적으로 넉넉했다.


그런 나를 잘 아는 친구는 만날 때마다 맛있는 음식들을 자주 사주었다. 강남 어딘가에 있다는 맛있는 김치찌개 집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패밀리 레스토랑까지.

시간이 지나서 나도 취업을 하고 직장인이 되었지만, 당시 유치원 교사의 박봉과 경력이 쌓인 은행원의 월급은 비교가 불가능했다.


나는 자주 친구가 있는 송파로 가서 그곳의 문화들을 누렸다.

내가 살고 있는 곳과는

왠지 숨 쉬는 공기도 다른 것 같은 그곳.

신나는 음악이 흐르고 화려한 조명이 있어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그곳.

무언가 들뜬 기분이 느껴지게 하는 놀이동산이 있는 그곳.

한 시간 이상의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도 내내 즐겁게 그곳으로 갔다.


지금은 없어진 잠실역의 분수대 앞.

그곳은 우리의 단골 만남장소였다. 이곳에서 만나 신나게 이곳저곳을 함께 다녔다.

당시 우리가 종종 가던 패밀리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마르쉐'라는 곳이었다.

이곳에 처음 갔을 때, 놀라움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마치 외국에 온 듯한, 그 분위기와 사람들.

마르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복장도, 음식을 주문하는 방법도 독특했다.


내가 아는 식당은 앉아있으면 음식을 가져다주는 곳인데 이곳은 돌아다니면서 먹고 싶은걸 도장을 찍어서 주문하고 주문이 나오면 가지러 가는 방식이었다. 음식도 주문을 하면 즉석에서 만들어주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인테리어도 마치 외국의 어느 시장에 온 것 같은 이국적인 분위기였다. 여기저기 쌓여있는 재료들이나 과일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그래서인지 음식도 더 신선하고 맛있게 느껴졌다. 근무하시는 분들의 복장도 새로워 보였다. 티브이에서 본 유럽에 사는 사람들의 복장과 분위기~

나중에 알았지만 '마르쉐'라는 이름이 프랑스어로 '시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내가 마르쉐를 좋아하는 걸 아는지 친구는 나를 여러 번 이곳에 데리고 가서 맛있는 음식들을 사주었다. 이곳뿐만 아니라 아웃백, t.g.i프라이데이, 빕스 등 다양한 패밀리 레스토랑도 친구와 함께였다. 엄마의 요리는 항상 훌륭했지만 주로 한식에 한정되어 있었다. 집에서 늘 한식으로 집밥을 먹던 나에게 이런 곳들은 신세계였다. 이곳에서 립, 스테이크, 피자, 스파게티를 먹어보고 에이드를 마시면서 다양한 양식들을 먹어볼 수 있었다. 이름도 잘 모르는 소스와 함께 바삭한 감자튀김을 찍어먹고, 삼겹살이 아닌 등갈비살을 결대로 하나씩 떼어내어 어색하게 포크로 발라내어 먹으려다가 결국엔 손으로 잡고 먹기도 했다. 밥이 아닌 빵으로, 국이 아닌 수프를 먹으면서 양식을 하나씩 알게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다를 떨면서 우리는 20대의 시간을 함께 공유했다. 서로 하는 일도, 주어진 환경도 달랐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그렇게 20대의 시간이 흘러가고 각자의 가정이 생긴 뒤에는 만남도 수다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30대를 지나 40대의 시간이 벌써 끝자락에 와 있을 때 즈음 친구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 것이다.



우리의 마지막 만남의 장소는 몇 년 전 강남이었다. 우린 여전히 맛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집밥과는 또 다른 양식을 우아하게 먹으면서 수다를 떨었다. 이제는 아이들도 제법 자랐고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동안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자주 보자면서 헤어졌는데, 그러고 나서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버렸는지 우리가 자주 가던 패밀리 레스토랑들도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아쉽다. 그리고 세월의 변화가 느껴졌다.


빠른 시간 내에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해야겠다. 그리고 얼른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만나야겠다.

이왕이면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으로.

그곳에서 우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옛이야기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끊임없는 수다로 풀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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