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아침, 작은 수첩하나와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로 향한다.
수첩에는 한주동안의 식단이 적혀있다. 식단에 맞추어 필요한 식재료를 골라 카트에 담는다.
소비기한은 얼마나 남았는지, 꼭 필요한 물건인지 살펴본 뒤에 계산대로 향한다.
계산대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작아지는 느낌이다.
자고 일어나면 쑥쑥 올라가는 물가 덕분에.
내색하지는 않으려 하지만, 카드를 내미는 손이 살짝 떨린다.
텅 비었던 냉장고를 채워주어야 다가오는 한 주를 보낼 수 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닌가!!!!!
여러 식재료 중에 나름 저렴한 식재료 중에 하나가 콩나물이다.
어릴 적 내 기억엔 예전의 시장에서는 지금처럼 봉지에 든 콩나물을 팔지 않았다.
콩나물이 필요할 땐 엄마가 내손에 동전을 쥐어주셨다. 100원 혹은 200원을.
한 손에 꼭 쥐고는 동네 구멍가게로 뛰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줌마! 콩나물 100원어치 주세요!"
안쪽 작은 방에 앉아있던 구멍가게 사장님은 느릿하게 가게 한쪽 구석에 있는 검은 천이 덮인 통으로 다가간다. 까만 비닐봉지를 한 손에 들고는 검은 천을 살짝 걷어내어 콩나물을 한주먹 담는다.
딱히 저울로 계량을 하지도 않는다. 얼마나 담는지는 순전히 사장님 마음대로였다.
그냥 그렇게 주는 대로 검은 봉지를 들고 와 엄마에게 자랑스레 내밀었다. 그렇게 엄마에게 전달된 콩나물은 맛있는 콩나물국으로, 콩나물 무침으로 변신했다.
지금도 시장에서 혹은 다른 곳에서 그런 방법으로 콩나물을 파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가는 곳에서는 예전처럼 콩나물을 파는 곳은 전혀 없다.
이제 콩나물은 나름의 비닐포장을 갖추고 그 종류도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다.
<<특등급 국산콩 사용을 강조한 콩나물, 3번 씻어 나와 안심할 수 있다는 콩나물, 무농약콩을 사용한 콩나물, 유기농 친환경 콩나물, 찜용 콩나물.... 등등>>
나름 종류도 담겨있는 양도 다양해서 고르는 재미까지 있다. 옛날 아줌마가 넉넉하게 비닐봉지에 한 주먹 더 담아주는 인심은 없지만 세월의 변화에 따라 유통업의 변화에 따라 콩나물도 따라 변화하고 있는가 보다.
얼마 전 막내아이가 학교에서 무언가를 잔뜩 가지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엄마! 이거 콩나물 만드는 거래!"
'아이고야! 학교에서 나에게 어려운 미션을 하나 주는구나!'
말로 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외쳤다.
아이는 호기심에 눈을 반짝였지만 나에겐 어려운 미션이 생긴 것이다. 일단 가져온 것들을 살펴보았다.
구성품은 간단했다. <플라스틱통과 뚜껑, 채반과 콩, 설명서>
설명서를 한참을 읽고 또 읽었다. 읽으면서도 정말 콩나물이 될까?라는 의심도 한가득이었다.
"재미있는 거 가져왔네! 근데 엄마가 바쁘니까 나중에 하자"
일단은 한쪽에 잘 놔두었다. 아니 그냥 방치해 두었다.
별로 하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나와 다르게 아이는 직접 키우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나 보다.
하루이틀 시간이 지나자 나를 졸라대기 시작했다.
"에고! 그래, 해보자"
노란 콩을 하룻밤 물에 불려두고 통통해진 콩을 채반 위에 골고루 펴두었다.
돔모양의 뚜껑을 잘 닫아 한쪽에 자리를 잡아두었다.
의심과 무관심으로 가득한 나와 달리 아이는 수시로 뚜껑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럴 때마다 콩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동그란 콩에서 작은 싹이 나오더니 금세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통 안에는 내가 사 먹는 콩나물과 비슷한 모양의 콩나물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콩나물로 통 안이 가득 차고 길이도 길어지자 뚜껑을 닫아도 뚜껑을 들릴 정도로 길어져 버렸다.
세상에나! 콩나물 키우기가 이렇게 쉬운 거였구나!
점점 길어지는 콩나물을 구경하느라 아이의 뚜껑여는 시간이 길어졌다.
빛을 받지 않아야 하는 콩나물은 노란 머리에서 점점 초록 머리로 바뀌어 가려고 하고 있었다.
"이제는 맛있게 먹어야겠네!"
깔끔히 정리해서 다듬어둔 콩나물은 쌀 위로 올라가 콩나물밥이 되었다.
가끔 해 먹는 콩나물 밥이었지만, 그날은 직접 기른 콩나물이라서인지 더 맛있게 느껴졌다. 콩나물 밥을 먹으면서 자신이 가져온 콩으로 만든 콩나물밥이라며 아이는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듬뿍 담긴 표정으로.
나 역시 나름 재미있었고 뿌듯했다.
식물을 키우는 것 역시 잘 못하기에 집에는 흔한 화분하나 없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작고 소소한 일이지만 나도 아이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