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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커피 한잔

by 해피연두

내가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오후 3시.

재택근무에 프리랜서라고 하지만 출퇴근 시간이 존재한다.

3시가 되기 전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를 켠다.

그날 그날 해야 할 일을 하기 전! 해야 하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

"커피 마시기"


그 시간에 마시는 커피는...

일을 시작하는 나에게 영양제이자 필수템.

단순한 커피가 아니다.

나에게 '이제는 일하는 시간이야, 집중해야 해!!'를 알려주는 타이머와 같다.


여름엔 얼음을 듬뿍 넣은 시원한 커피를, 겨울엔 따뜻한 커피를 호호~ 불면서 자리에 앉는다.

"오늘도 잘 버텨보자!"


커피를 언제부터 마시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스무 살 즈음. 그때쯤 인 것 같다.

갓 대학생이 되었을 때, 친구들과 커피숍에 갔다.

메뉴판의 다양한 메뉴들은 나에겐 낯설었고, 어떤 맛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맛을 알 수 없으니 그냥 이름만 보고 골라야 했다.

'이왕이면 고급스럽고 우아한 커피를 마셔야지!'

그렇게 나의 선택을 받은 커피는 바로.....

'비엔나커피'


하얀 찻잔에 나온 커피는 하얀 거품을 가득 안고 있었다.

'오!! 잘 골랐어!! 비주얼은 합격이야'

마시기 전에 일단은 숟가락으로 마구 휘저어 주었다.

'잘 섞어 먹어야 맛있지!!'

그렇게 섞은 커피를 한 모금 한 모금 홀짝홀짝 마셨다.

"아~~!"

비주얼은 꽤나 맛있어 보였지만...

아직은 어린이 입맛에 가까운 나에겐 딱 한마디로 표현될 뿐이었다.

"아흑~ 쓰다"

또 커피를 두고 친구들과 한참을 수다를 떨고 나면 커피는 다 식고, 작은 기름들까지 둥둥 떠있는 게 보였다.

'커피가 이런 거였어?'

그 후로 몇 번 더 비엔나커피를 마셔보았지만 마실 때마다 똑같은 느낌과 기분이 들었다.

가끔씩 친구들과 커피숍을 방문할 때면 어떤 메뉴를 선택해야 할지 다시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커피숍에서 커피가 아닌 다른 메뉴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왜인지 더 어른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나 보다. 그 뒤로 다른 종류의 커피를 몇 번 마셔보고는 포기했다.

"난 커피 말고 다른 거 마실래!"


그 쓰디쓰고 시커먼 물을 왜 마신단말인가?
뭐 어디서 보니 몸에도 그다지 좋지도 않다면서!
됐어!! 난 우유나 주스가 더 좋다고!
나름 합리화를 하면서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그렇게 쭈욱 잘 지내던 어느 날~!


속상한 일이 하나 생겼다.

나의 첫 직장인 유치원에서 생긴 일이다.

내가 근무하던 유치원에 원감선생님이 새로 오게 되었다.

새로 원감선생님이 오게 되면서 기존의 선생님들은 그만두고 새로운 선생님들이 원으로 오게 되었다.

나만 인수인계 및 학기를 마치기 위해 몇 달을 그들과 함께 일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원감선생님은 아무래도 기존 근무자인 내가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별다른 내색도 없었고, 그때만 해도 초보교사인 나도 그런 분위기들을 잘 읽지 못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사실!

그동안 나를 제외한 새로운 선생님들과만 티타임을 따로 가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커피 안 마시잖아! 그래서 우리끼리 마셨어."

그들만의 자리가 당연하다는 듯. 네가 낄 자리는 아니니 넘봐서는 안된다는 말투.

그렇게 나는 그 자리에 배제되었고, 그 이유는 '커피를 안 마신다는 것'이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황당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그들만의 친목단합을 위해서 여러 번 그런 자리를 가졌고, 내가 알게 된 건 벌써 여러 번의 티타임이 진행된 뛰었다.

'커피를 안 마시면 다른 걸 마시면 되죠'

지금도 후회하는 건 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다는 것이다.


사회생활 3년 차의 초보 교사와 원감이라는 위치의 차이.

그들의 이해가 가지 않는 핑계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몇 번 끄덕거리고는 조용히 남은 기간을 마무리하고 원생활을 정리했다.

이후 그들은 내가 알고 있든 그렇지 않든 별 신경도 쓰지 않고, 더 자유롭게 그들의 티타임을 즐겼다.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지 알 수도 없는, 나를 뺀 그들만의 시간.

어차피 나가는 교사와는 친해질 필요도, 챙겨줄 필요도, 함께 회의를 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마음한쪽으로는 알고 있지만 왠지 모를 허전함과 서운함도 존재했다.

'내 자리가 아니었어! 너무 마음 쓰지 말자!'

그렇게 나의 첫 직장이 마무리되었다.

'커피를 못 마시잖아!'라는 작은 상처와 함께.



그때부터 시작인 것 같다.

'남들도 다 마시는데 왜 못 마셔! 까짓 거 먹고 죽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커피에 대한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은은한 향의 헤이즐넛커피부터 달달한 캐러멜 마키아토, 진한 향의 모카라테, 뒷맛이 개운한 아메리카노까지 하나씩 나에게 맞는 커피를 찾으려 이것저것 많이 맛보았다.

지치고 힘들 때 당이 떨어졌다는 느낌이 들 때는 달달한 캐러멜 마키아토를 먹으면 힘이 나기 시작했고, 달콤한 디저트와 함께 일 때는 아메리카노가 딱 맞았다. 추운 겨울에는 바닐라 향이 나는 따뜻한 바닐라 라테를, 피곤할 때는 휘핑크림을 듬뿍 얹은 모카라테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커피를 대하는 나의 모습도 달라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카페인 때문에 하루 한잔이상은 마시지 못한다.

하루에 딱 한잔.


커피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많이 사라져 가고, 이제 나도 커피를 음미하며 마시고 있다.

그리고 출퇴근이 아닌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일을 시작할 때 1일 1 커피를 하게 되었다. 정신바짝 차리는 용도로 말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때의 어린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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