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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안 Sep 23. 2016

20 고개를 넘었다. 마르카밸리 트레킹 6th day

Ladakh - India 7월 한 달의 기록 2016

It's me on the horse's back, Kongmarula, Ladakh 2016





콜라 마실래요,
물 마실래요?



드디어 넘었다. (말타고...)



콩마루라 Kongmaru La 5,200m



나를 포함한 거북이 팀 세 명이 가이드 싯따르따와 함께 30분 먼저 출발했다. 안 그러면 한없이 쳐져서 오늘 저 산을 넘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에, 중간 즈음 다른 분들과 비슷해질 만한 시간차를 두고 일찍 걸었다.


겉보기엔 한없이 편안한 능선인데, 심장이 터질 것처럼 숨이 가빠와 다시 천천히 호흡을 고르고 후후-후후- 두 번에 나눠서 오직 한 발 한 발 걷는 일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올라 갈 수록 추웠다. 옷을 생각보다 얇게 챙겨 입은 게 화근이었다. 가방을 다른 분이 들고 계셨던가? 아무튼 나는 맨 몸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지나가는 구루지께 혹시 걸칠만한 뭔가가 있냐고 묻자 '없는데... 많이 춥니?'라는 대답만.


할 수 없지. 춥다,라는 생각도 내려놓고 가자!


저 고개만 넘으면 된다. 조금 더 빨리 걸어서 땀을 내려고 일정한 페이스 안에서 쉬지않고 꾸준히 걸었다. (그런데도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입술이 퍼렇게 계속 추워하자, 구루지께서 앞에 걷던 셰르파에게 뭐라뭐라 묻더니 그가 입고 입던 패딩조끼를 벗어 내게 주었다. 손사래치며 아니라고 그냥 가도 된다고 했지만, 어느새 나는 셰르파의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도톰한 패딩을 입고 있었을 뿐.



아, 살 것 같다.





정상을 백 여미터 남겨두고, 멀-리 사람들이 모여 쉬고 있는 장소가 보였다.


후후, 후후.


내 귀에는 오로지 바람소리와 숨소리밖에 안 들렸다. 가자 가자. 힘을 내어 가자.


뒤에 오시던 싸부가 콜라와 물을 건넨다.

어느 걸 마시려는지?! 


난 콜라를 거의 마시지 않는데, 왠일인지 본능적으로 빨갛고 검은 물에 손이 갔다. 벌컥 벌컥 두 어 모금 마셨더니 순간 세상이 밝다. 광명천지였다.


우와 눈이 번쩍 뜨여요!


너무 신기해서 몇 모금 더 마셨다. 힘이 불끈 난다. 약도 이런 약이 없었다. 이렇게 달고 맛있는 약이라면 두 박스는 더 먹어줄 수 있겠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다 왔어. 좀만 더 가면 돼.


뒤에서 추임새를 넣으며 같이 걸어주니 한결 수월했다. 그래 뭐 이 정도 쯤이야, 나도 할 수 있지.


손이 많이 저렸던 것 빼고는 당연히 숨 찬 거 외에 몸도 많이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 손발저림이 전날 밤 먹은 고산약의 부작용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으아, 어쩐지 정말 계속 미친듯이 저리더라니!)





털썩!


몸을 가방 던지 듯 던져 주저앉았다.


한템포 쉬는 곳에 도착하자 옹기종기 모여있던 일행분들이 따뜻한 물을 건네주었다. 호록호록, 두 손에 꼭 쥐고 천천히 마셨다. 스르르 온 몸의 긴장이 풀렸다. 눈으로 가늠해 보아 손을 뻗어보니 딱 한 뼘 분량이었다. 정상까지. 충분히 쉬고 걸으면 이번에는 되겠다, 싶었다.



말 안 타요?



트레킹할 때 한 번도 말을 타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두 발로 걸었던지라 당연히 농담하는 줄 알고 웃으며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엉덩이를 탁탁 털고 일어나 출발하려는데 싸부께서 다시 물었다.



진짜 안 타요?



진짜 안 탈 건데 왜 자꾸 물으시지?

얼른 또 출발해야 저길 넘지, 마음이 급한데.


그런데 이번에는 주위 분들이

힘들면 그냥 타라고 말씀하셨다.



아... 아녜요, 그냥 가도 돼요...



몇 번을 옥신각신, 제발 좀 그냥 타...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ㅎㅎ 문득 저번에도 요만큼 남겨두고 올라가다가 호흡곤란 왔던 게 생각났다. 무조건 사양한다고 될 일이 아닌갑다, 번쩍 스쳤다. 이번에는 타는 게 좋겠다.



그래서 말을 타게 된 거다.

타박타박,


말 등에서 흔들흔들 최대한 몸에 힘을 빼고 정상까지 갔다. 헉헉거리며 말도 힘들어했다. 초록이 가득해도 여기는 5,200m나 되었으니까.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을 바라보았다.  어쩜 이런 빛깔이... Kongmarula 5,200m / Ladakh 2016
길이 좁고 가팔라서 말들이 굴러떨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말도 사람도 조심조심.
시시각각 바뀌며 눈 앞에서 펼쳐지는 한 폭의 산수화가 사람들을 품고 있었다.
고개를 올려 바라보면 아득하기만 하다.
가도가도 안 나오는 우리의 숙소는 언제쯤 도착하게 될까



네팔리 쿡, 빠쌍은 사람 마음 읽을 줄을 알았다.


중간에 점심타이밍을 놓쳐 주전부리로만 배를 채우고 기진맥진 한참을 내려와 텐트에 도착한 늦은 오후, 그는 우리가 오자마자 뚝빠(우리식 수제비)를 끓여냈다. 어찌나 얼큰하고 시원한지 하루 동안의 피로가 싹 풀렸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니 잠이 쏟아져서 텐트에 가서 벌러덩 누웠다. 세상에 등따숩고 배부르니 이렇게 좋구나.



요리하는 네팔 남자, 빠상


해가 지자 금세 또 밥을 먹으라고 불렀다.


어쩌면 우리는 빠상에게 사육당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비탈에 자리잡은 텐트 안에서 문을 열고 저 산 멀리 해지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두둥실 구름처럼 떠올랐다.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다가 쌀쌀해진 날씨에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다이닝 텐트로 갔다.



다시, 저녁먹을 시간이다.





맑은 미역국과 흰 쌀밥.

고소한 채소볶음, 신선한 샐러드와 무침, 김치...


뭐 두 그릇씩은 기본아닌가.


끝도 없이 들어가는 미역국이 특히나 달았다.

빠상, 이런 센스쟁이같으니라구!

(내가 미역국을 제일 좋아하는 걸 어찌 알고 ㅎㅎ)





무사히 마지막 큰 산 하나를 넘고, 홀가분한 밤에 마신 보이차는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고 청량하고 시원했다.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시고... 조용조용 도란도란, 별 이야기없어도 행복했던 우리의 밤은 이렇게 깊어갔다.



자, 이제 트레킹도 하루 남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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