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y LADAK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안 Aug 17. 2016

05 나는 산과의 연애를 끝내기로 했다.

Ladakh - India 7월 한 달의 기록 2016

카르둥라  가는 길 on the way to Khardungla 5,603m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냐구요?

방법을 꼽아 볼게요.


내 영혼이 닿을 수 있는


깊이만큼,

넓이만큼,

그 높이만큼


당신을 사랑합니다.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 <우리들의 선물 증정식>





라다크 모든 일정을 끝내고 델리로 이동했을 때, 와이파이가 잡히길래 문자를 몇 개 보냈다.


"트레킹 잘 끝냈고, 지금 델리야."


늦은 시간이라 시차가 있어 나중에 확인하겠거니 했는데 바로 답장이 왔다.


"몸은?"

"괜찮지."

"진짜? 안 힘들었어?"

"조금 힘들었는데, 괜찮아졌어."

"수고했어."

"되게 좋았어. 근데 호흡곤란이 와서 산소호흡기 쓰고 넘었어."


"뭐어어어?????"


아뿔싸, 이 놈의 입이 방정이다.

산소통 썼다는 이야기는 남편에게 하지 않으려고 혼자 속으로 몇 번을 다짐했던가.

그런데도 막상 닥치니 제일 먼저 입에서 터져 나온다. 내심 어리광부리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만큼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받기 원했었나보다.


"아니 아니, 지금은 괜찮다니까. 그 때 잠깐 그랬다구. 이젠 완전 괜찮아"


그새 빛의 속도로 인터넷을 검색했는지, 걱정의 말들이 하늘에서 쏟아진다.


"그러다 죽어 !"

"아휴 진짜, 괜히 말했네. 괜찮다니까."

"이제 가지마."


(헉, 이건 또 뭔 말이래. 그건 아니잖아... 그래도 짐짓 아무렇지 않게 말을 받았다.)


"알았어."

"진짜야."

"그래... 근데 지금은 괜찮은데..."

"하아,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만."


산을 수태 다니며 그 동안 나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빼곡히 알고 있는 남편이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 했다.


"앞으로는 안 보낼거야. 알아서 해"

"그려그려. (...그래도 난 갈 텐데...)"


건성의 대답이라기보다는 남편의 마음도 알고, 나의 마음도 정확히 알고 있는 딱 그 중간 어느 지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결국엔 내가 간다면 보내 줄 사람인 것도 알기에.


나도 사실은 알 수 없는 이 감정이 궁금했다.

그래 그렇게 힘들다면서 산이라면 왜 또 가려는지, 몇 번의 망설임조차 없이 늘 당연함으로 받아들이는지.

도대체 뭘까, 이런 건.





* * *  Leh - Khardungla (5,603m) - Hunder / Nubra Valley - Turtuk - Leh  * * *



레 Leh 를 출발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도로 카르둥라 Khardungla(5,603m)를 넘어 누브라 밸리, 훈드르 Hunder에 가는 날이었다.


사진이 없다.

몸상태가 안 좋았다는 소리다.


대개 정상을 앞두고 몸을 가누기가 힘든 내게 사진은 언감생심, 사진이 왠말이냐.

정신도 붙들기 어려운 마당에 카메라 쥘 힘이 있으면, 네 마음이나 꼭 붙들고 있어라

뭐 이런 거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에 없이 제일 아쉬운 게 하나 생겼다.

나중에 일행분이 찍은 사진을 쭉 넘기다가, 꼭대기 어딘가에서 다함께 찍은 단체사진을 본 거다.

으아 울컥,

나만 없다.


한 번도 못 찍어봤다,

정상에서

다 같이.


얼굴들 하나하나에 가득찬 환호 속으로 나도 들어가고 싶었다.

오래된 졸업앨범처럼 단체사진 위쪽 모서리에 작은 타원형으로라도 내 얼굴을 넣고 싶었다.

그 때, 그 순간, 그 날, 거기에 나도 함께 있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훈드르에서는 2박을 할 예정이었다.

가는 길도 멀거니와 훈드르에서 더 멀리 떨어진, 인도 최북단 마을 뚜르뚝 Turtuk 에 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가볍게 짐을 싸서 개인 배낭을 메고, 트레킹용 큰 짐은 모아서 호텔에 맡겨두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얼마나 마음이 가볍던지, 조수석에 앉아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음악을 들으며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이 정도라면 거뜬하게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생전 처음 보는 풍경들이 절로 내 눈을 붙들어 매었다.


얘, 이래도 안 찍을거야? 이러면서 자꾸만 손짓하는데 도리가 없었다.

구비구비 절벽을 따라 돌아가며 나있는 길은 좁고 가팔랐다. 운전사들도 바짝 집중했다. 그들에게도 쉽지 않은 길이라 했다. 고도가 높아질 수록 풍경도 시시각각 옷을 바꿔 입었다.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넋을 놓고 봤다. 열심히 눈에 담았다. 역시나 카메라는 다 담지 못했다.


이 장엄함을, 이 자연 그대로를.



몸이 먼저 알았다. 3,500m가 넘으니 한 번씩 숨이 부족했다.

그건 뭐, 늘상 있는 일이니까 조용히 창문을 내리고 심호흡을 크게 했다. 이제 시작이구나.

훈드르 가는 길은 군사지역이라 중간 중간 체크포인트에서 퍼밋을 받아야 한다.

퍼밋도 받고 피곤한 운전사들도 쉬고, 우리도 기지개를 켜는 겸사겸사 시간이다.

출발하고 쉼없이 체크포인트까지 달렸으니, 그 곳이 4,800m였다.


머리가 띵하고 숨이 조금 차긴 한데, 아직까진 별 이상이 없었다.

고산에는 물이 약이라, 차에서 계속 마셨더니 화장실이 급했다. 창밖으로 보니 화장실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 멀었다. 이미 줄도 많이 서있었고! 참을까?


잠짠 고민하다가 또 언제 갈 수 있을지 몰라 차에서 내려 찬찬히 길을 따라 올라갔다.


뒤뚱뒤뚱, 이상하다. 나는 바로 걷는데, 자꾸 몸이 기울어졌다. 손끝이 살짝 저렸다. 손을 꽉꽉 쥐었다 폈다하면서 한참을 걸어서 화장실 앞까지 갔다. 몸에 힘을 주지 않으면, 그냥 서있지도 못 하겠다. 그래도 후-후-, 후-후-, 길게 호흡을 잘 조절하면 그나마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내 차례다.


산에서 인도 네팔 화장실은 대부분 시멘트바닥에 네모난 직사각형만 뚫린 푸세식이다. 문을 열고 한 발 내딛자마자 휘청! 어, 순간 잘못하면 빠질 것 같이 핑 돌았다. 한참을 그냥 서 있었다. 양손을 꼭 쥐고 눈에 힘을 주었다.  



차로 돌아오는데, 점점 더 숨이 차기 시작했다. 견디기 힘들다 싶을만큼씩 강도가 심해졌다. 마음이 급해져 발걸음이 빨라졌다. 더 천천히 왔어야했다. 발걸음이 빨라지고 싶었지만, 호흡만 더 거칠어져버렸다. 그래도 앉으면 괜찮아질 것 같아서, 저기 보이는 우리차까지만 언능 가자 마음을 다잡으며 걸었다.


그런데 몇 걸음 안 가서,

순간


턱-하고 숨이 막혔다.

어...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왜 이러지?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모르는 얼굴이다.


숨이 빠르게 턱턱- 막혔다. 도무지 조절이 안되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온 몸이 저리다못해 아프기 시작했다. 아 정말 어쩌지...

몇 번을 다시 다리를 움직여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안되겠어서 목소리를 짜내 겨우 앞에 선 아저씨에게 말했다.



"....H...H....He...Hel....p....me..."



잘 듣진 못한 것 같았는데, 내 얼굴을 본 아저씨가 놀라서 얼른 달려와 손을 꽉 잡고 몸을 부축해주었다.

걸을 수가 없었다. 질질 끌려가다시피했는데, 어느 지점에선가 다시 턱-하고 숨이 막히더니 그 이상 올라갈 수가 없었다. 한 걸음이라도 더 움직였다가는 그대로 정신을 잃을 것 같이 유리벽에 심하게 퉁-! 부딪힌 기분이었다. 통제가 안 될 정도로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나니 코가 막히고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더구나 숨조차 안 쉬어지니 심장이 조여들고, 심장이 조여드니 사지에 통증이 무시무시하게 들어왔다. 서서 힘들게 울기만하니, 난처한 아저씨가 큰소리로 사람들을 불렀다.


무슨 일이 있는지 몰랐던 일행분들이 달려나왔다. 내가 도무지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니까 기다리다 못한 우리 드라이버가 갑자기 나를 번쩍 들어올리더니 엄청난 속도로 차까지 달려 '철푸턱' 뒷자석에 앉혔다. 이 때부터 나의 기억은 뒤죽박죽이다. 이랬던 것 같기도 하고 저랬던 것 같기도 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건지, 진짜 생각이 안 나는 건지 모르겠다. 가이드나 드라이버도 이런 경우가 처음인지 우왕좌왕했다. 싸부가 바이크를 타고 먼저 출발한 터였다. 나는 차에서 계속 쉬어지지 않는 숨을 쉬느라 기력을 다 써버렸다. 더 이상은 못 견딜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 때 누군가 hospital 을 거듭 외치며 내려가자는 것 같았다.


순간 나는, 이제 1초도 못 견딜 것 같은데 언제 또 거길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오나... 망연자실했다.

입이 바짝바짝 말라 오로지 거칠고 짧디 짧은 숨만 쉬고 있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빛보다도 빨리 지나갔다. 반면 사람들은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게 보였다. 이상한 순간이었다. 머리가 붕 뜬 것 같았다. 시간의 갭이 점점 크게 느껴졌다. 이 순간 가장 원하는 게 있다면, 그냥 최대한 빨리 정상을 넘어서 내려가는 것이었다. 방법이 없었다.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를 꼭 깨물었다. 흐느끼면서 눈물이 날지언정 호흡은 더 엉망이 되지 않아야 했다.

정말 어떻게든 견뎌볼테니, 제발 좀 빨리 출발하자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을 하는 순간, 그나마 붙들고 있던 숨자락이 엉켜버릴 것 같았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로케트를 타고 무중력 상태의 공간을 끝없이 올라가는 느낌. 아득해졌다. 나는 어느 순간 절반 쯤 정신을 놓았다.


사람들이 빨리 올라가서 일단 넘자는 의견으로 모아지고, 차가 출발했다.

어쨌든 견뎌볼 생각이었다. 여태까지 그래왔으니까. 늘 이렇게 비슷한 증상들이 내게 왔고, 그래도 나는 결국엔 어떻게든 해냈으니까. 나를 믿는 마음이 있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을거야, 할 수 있을거라고.


그런데 그게 안 되었다. 이번에는 아니었다.

내 마음 어디에서 구멍이 났는지 몰랐다. 그래서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은 실현되지 않았다.


온 몸이 저리는 것을 넘어 양손이 완전히 안으로 말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거대한 통증이어서 몰핀이 있다면 맞고 싶을 정도였다. 정말이지 다음 순간은 없을 것 같았다. 힐끗보니 죽음이란 게 이렇게 바로 옆에 있을 줄이야,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출발하고 2,3분이 채 되지 않아 내가 먼저 제발 세워달라고 빌었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도로 멈추자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챈 일행분이 급하게 우리차로 달려오셨다. 차문이 열리는 순간, 겨우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버렸다.


"ㅅ...ㅅ..ㅗ..소...ㄴ...손...이 너무 아...파...요..."


그 높은 고산에서 마사지를 해주셨다. 피를 돌려야했다. 손끝 발끝까지 산소를 품은 피가 돌아야했다.

나를 살리려다가 당신이 고산에 걸릴 지경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멈출 줄 몰랐다.

정신없는 와중에 어떤 사람들이 나에게 병원에 가려느냐, 내려가겠느냐, 어쩌겠느냐고 계속 물어봤다.

나는 판단능력을 잃었다. 초점도 잃은 눈으로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자니 그들은 또 우왕좌왕했다.


그 때였다.

순간, 나에게 기적과도 같은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아아아 !!!


'산소호흡기'였다.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눈물난다.)


누군가, 싸부가 혹시나 필요할까 싶어 차에 실어둔 산소통을 생각해 낸 것이다.


"She needs OXYGEN right now!!!"


그보다 고마운 말이 없었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사람들이 좁고 긴 초록색 산소통에 튜브를 끼워 내 코에 급하게 연결해주었다. 칙, 칙, 치익...

맑은 산소가 급격하게 몸 안으로 들어왔다.


탁, 온 몸에 긴장이 풀렸다.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지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크게 호흡을 하자 몸이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했다. 산소 몇 모금에 방금 전 그토록 절박했던 순간들이 잦아들다니.


흐읍, 흐읍, 흐읍, 가늘고 길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숨을 쉬기 시작했다.


사실 산소호흡기를 하고도 정상을 넘어 한참을 내려올 때까지 쉽게 회복되지는 않았다.

초점없는 눈, 미동도 할 수 없는 몸의 상태 아니 마음의 상태 그대로, 나는 차창에 기대에 꼼짝도 않고 있었다.

힘들지만 통증없이 숨을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되었다. 달리 뭐가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높다더니, 이후로도 오래 걸리긴 했다. 정상이 나올 듯 나올 듯 하다가 안나오고 계속 오르기만 하길래, 기대하는 마음조차 사라졌을 때였다. 드디어 !


카르둥라였다.


참 어렵게도 왔다. 이게 뭐라고.

먼저 도착해있던 싸부가 보더니 빨리 내려가라고, 차를 세우지 않고 그대로 내려보냈다.

나는 거기가 어떻게 생긴 곳이었는지 나중에 사진을 보고 알았다.


꽤 내려왔다 싶은 중간에 체크포인트에서 한 번 더 쉬었는데, 그 때 4,800m까지 내려가면 좀 나아질거라고 했다. 사천팔백 사천팔백 사천팔백... 속으로 되뇌였다. 계속 내려와도 꿈꾸듯 몽롱한 상태가 지속되더라니 아직도 높은 곳이었던 거다. 몸이 먼저 안 것은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순간, 산소호흡기를 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을 정리하고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으니 한결 수월해졌다.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몸이 편안해졌다. 그러자 동시에 잠이 쏟아졌다. 그런데 아까 하나도 못보고 놓친 풍경들이 아까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반은 잠 들었고, 반은 뜬 눈으로 쉴 새없이 내려왔다. 그 풍경을 다 본 것 같은 기분은 나만의 착각이겠지.



 


"오빤, 진짜 하나도 몰라.  아무것도 모른다구."


남편과 싸우거나, 내둥 잘 지내다가도 결정적일 때 혼자 토라져서는 그예 내뱉고 마는 말이다.

그럼 말한다.


"내가 모르는 게 아니라, 니가 진짜 하나도 모르는 거라구. 나 참."


맞다. 대부분 그렇다.

내가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돌아와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산과 연애를 했던 것일까? 그래서 내맘대로 안 되면 울고불고 어떻게 좀 해보라고 징징댔던 것일까?

처음부터 산이라는 대상은 밀당이 필요없는 너른 품 자체인데, 그걸 수용하지 못한 건 나다.

그 자연스러움에 발맞추지 못한 건 나다. 내 맘대로만 하고 싶은데 그게 안되니, 아니 뭔가 잘 해보고는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되니 나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툭! 하니 마음 내려놓고 싶어서 가 놓고는, 다시 또 옹졸한 마음 쥔 손을 펴지 못하고 다른 손마저 주머니에 꽁꽁 숨겨놓고 말았다. 알알이 돌멩이가 박힌 마음으로 숨을 쉬니, 숨이 안 쉬어지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거다.


"오빠, 왜 나한테만 그래! 진짜... "


투정을 부릴 때도 있다. 똑같다. 산에서 힘들면, 왜 나만 힘들게 이럴까 한다.


아니다. 다 힘들다. 다 힘든데, 힘든 게 당연하니까 모두들 묵묵히 각자의 길을 가는거다.

그걸 힘듦으로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전적으로 내 몫일 뿐이다.


산에서 좋은 공기 마시면 좋았다. 참 좋았다.

단 향기가 났고 맛있게 신선했다. 햇빛은 따사로왔고 그늘이 있으면 시원했고, 초록잎을 보면 싱그러웠다.

그러고만 싶었다. 나의 욕심이었다.


밤에는 춥고, 높으면 공기 희박하고, 황량하고, 비바람치고, 날카롭고 매서웁다.


이것도 산이다. 좋은 것만 취할 수 없다. 그 모든 걸 경험하려고 부러 그렇게 멀리까지 간 것이지 않은가.

그래놓고는 나 편한 것만 내놓지 않는다고 뗑강도 그런 뗑강이 없게 진상을 부린 셈이다. 돌아와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때의 나는 딱 그만큼이었다. 어쩔 수 없다. 조금 더 나은 내모습이었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그 만큼이 나였다. 후회라는 감정은 맞지 않을 것이다. 그것마저도 받아들이고,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만 남아있다.


나는 이제 어린애 장난같은 연애는 끝내기로 했다. 대신 나를 통해 산이 흐를 수 있도록, 그 전부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나를 텅 비울거다. 전에도 지금도 나중에도 이미, 산은 한결같이 그의 전부를 내게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비우겠다고 쉽게 비워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서도, 적어도 그런 마음이라는 것을 적어두고 싶다.

훗날 내가 한 뼘쯤 자라있을 때 돌아보면, 지금의 나를 기특하게 여기며 머리를 쓰다듬고는 '여기까지 고군분투하면서 오느라 애썼다'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게는 그 한 마디가 전부다.






두렵지 않은 척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 강하게 느끼는 감정은 고마움이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남들에게 많은 것을 받았고, 나도 조금쯤은 돌려주었다. 나는 읽고, 여행하고, 생각하고, 썼다. 세상과의 교제를 즐겼다.


올리버색스, 나의 생애 <고맙습니다>








to be continued...




매거진의 이전글 04 Oh, my Ladakh 그림 노트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