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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기운들을 감지하는 촉

커피 한 잔의 여유로운 시간의 상념을 즐기다 귀가시간이 늦어졌다.

by 코코넛


따듯한 겨울,

이렇게 오늘의 느낌을 적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창밖으로 흐르는 강물과

바람 한 점 느껴지지 않는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이 순간의 느낌이 <모순>일까? <감지>일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두 단어 사이를 맴돌았다.

두 단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생각이 마치

바보처럼 바람 한 점 없는 날 휘파람으로 나뭇가지를 흔드는 모습처럼 여겨졌다.


그때, 새의 무리가 각 맞추어서 서쪽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포착되었으므로

생각은 즉시 방향의 경로를 새들의 세상으로 바꾸었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허공에도 촘촘한 곳과 성긴 곳이 있어서

아마도 새들은 바람에 풍화된 허공을 식별하고

성긴 허공만 골라서 날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

사람이 모르게 새들이 구축한 길이 있다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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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3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 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우리 남매들이 더 이상 울지 않는 세월에도 새로 들어온 무덤에서는 사람들이 울었다.

이제는 울지 않는 자들과 새로 울기 시작한 자들 사이에서

봄마다 풀들은 푸르게 빛냈다.


-김 훈 <자전거 여행>에서



위에 옮긴 문장에서처럼 변화는 내 안에서도 일어나고

대상 각각이 모두 여러 작용들에 의해 변하는데,

그 점을 매번 잊어버리고, 쉽게 <알고 있다>는 자만감으로 그냥 스친다.

아는 것도 다시 살펴보면,

혹은 무심히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사소한 풍경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형태와 색과 질감의 질서들이

기존에 내 미의식을 와르르 무너트릴 때가 있다.

그 순간이 성장의 시간이었다.


온통 새하얗게 눈이 나무를 뒤덮었을 때 보이지 않았던 봄이,

이틀이라는 시간 속에서

더러는 바람에 날아간 눈과 일부는 햇살에 녹아버린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매해 반복해서 보는 풍경인데 이상한 일은

매번 새로운 느낌이나 감동으로 다가오는 일이다.

내가 변했기 때문이고 대상도 그전과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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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녹아 사라지는 소리,

봄이 언 땅을 녹이는 소리,

새들의 날갯짓이 허공과 마주치는 소리,

내가 마시는 커피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소리,

소리를 이미지화하면서 놀다 보니

해가 등 뒤로 넘어가는 소리는 놓쳤다.


어둠이 시야를 좁히기 전에 서둘러 귀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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