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두 갈래의 출발지?
오솔길, 인적이 없는 오솔길에서
우연히 내 신발코와 닿았던 작은 돌멩이는
순간 이동을 했다. 좋았을까?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 미터 가량 날아갔는데,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돌에게 이주의 경험을 제공한 나에게 감사를 느꼈을까?
심심해서, 의도하지 않았으나 걸리적거렸으므로,
혹은, 어렸을 때 사방치기, 공깃돌 던지기, 자치기와 같은 놀이의 기억이
순간적으로 부추긴 행동일 수 있다.
무심히 행동하고 뒤늦게 행동을 인지한 나는
무생물이니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안도한다.
과연 그럴까?
저녁을 먹은 후 휴식을 즐기는 중에 산책길에서의 작은 해프닝이 떠올랐다.
신성희 / 회화의 본향
신발코에 닿은 돌을 발로 차는 행위는 심심 파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미술에서 고정관념을 해체해서 다시 조합하는 행위는 어떤 단어로 불릴까?
곰곰이 짚어봤는데 딱히 정의할 만한 단어가 없다.
그래서 물질의 해체, 이미지의 해체 등을 시도했던 <해체주의> 작가 중
고 신성희 작가의 작품을 감상했다.
신성희
예술에서 <해체주의>가 이룬 성과?
관념이 고정관념이 되어서 단단한 벽을 허물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스잔느 랭거(Susanne K, Langer)가 기술한
예술 작품에서의 환영적 인상을 보면,
이미지의 진정한 힘은 그것이 하나의 추상이며,
하나의 상징이며,
곧 하나의 관념을 전달한다는 데 있다.
<중략>
이런 의미에서 하나의 이미지는 오직 지각을 위해서지만,
지각에 대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이미지는 물리적이고 인과적인 질서에서 추상화된 것인 동시에 예술가의 상상과 관념이 발아한 창조이다.
캔버스의 표면 위에 색채들을 배열하는 과정에서부터 어떤 것이 나타난다.
즉 어떤 것이 강조된다.
이미지는 단순히 색들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색들이 새로운 질서 가운데 놓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미지다.
이미지는 물감의 배치와 함께 갑작스럽게 출현하며,
이미지의 출현과 함께 캔버스와 그 위에 배열한 물감의 존재는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2월은 금성(비너스)이 가장 밝게 빛나는 달이라고 한다.
지구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더 잘 보이는 이치로.
궁금하면 알아보려고 노력하고 그 결과로 궁금증과 가까워지듯이
출발이 궁금증일 수 있는 발견이 있기도 하지만
심심 파적처럼 무심히 한 행동에서 출발하는 발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