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에 눈이 찔리는 사고로 데 키리코의 그림 감상 및 신비를 고찰
햇빛이 실내 깊숙이 들어오는 시간이라,
그래서 햇살이 강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은 오판이었다.
강의 자료를 만들다가 일어나 창문을 열고
잠시 밖의 공기를 흡입하려다 햇살이 눈을 찔렀다.
헉, 사고다,
자동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부채가 펼쳐지듯이 찰나에 빛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빛,
무지개색과 흡사한 빛이 눈꺼풀 안에 갇혔다.
따갑다는 촉감이 무디어지면서
감은 눈동자에서 빛은 자지러지듯이 일렁였다.
몇 초 사이에 벌어진 현상이다.
찰나에 발생한 일로 신비라는 단어가
샘물의 기포처럼 퐁 올라와 터지자,
신비라는 단어와 신비를 표현한 사람들의 이름이
순차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집중해서 자료 만들기 어려운 상태임을 감지>
하던 일을 멈추고 작정하고 어렴풋한 이름들을 한 명씩 불러냈다.
과거의 존재가 내 기억을 장악하는 힘이 있다는 것부터가
어쩌면 신비의 시작일 수 있을까?
프리드리히 니체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와 같은 철학자와
먼저 인사한 후 그들과 쉽게 작별을 고했다.
<너무 골치 아프게 생각에 몰입되고 싶지는 않았다>
신비를 파헤치다가
화가들이 숨어 있는 진짜 현실과 같은 공간을 창조? 한 화가인
조르조 데 키리코는 내가 잡아당겼다.
책에서만 보았던 그의 작품을
런던에 소재한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처음 대면했을 때는
그가 나를 먼저 잡아당겼었는데,
오늘은 입장이 서로 바뀐 셈이다.
그 당시에 키리코에 대한 정보를 이곳저곳에서 찾아보곤 했었는데,
그가 1919년에
<꿈이 아주 기이한 현상이며 설명이, 불가능한 신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이 특정 사물들과 삶의 여러 측면에 부여한 신비는
훨씬 터 이루 헤아릴 수 없다.>라고
인터뷰했던 문장이 키리코의 그림만큼 인상적이었다.
<사랑의 노래>는 데 키리코의 다른 작품들보다
더 난해하고 강렬해서
정말 사랑의 신비로운 감정들이 톡톡 터지는 듯했다.
사랑에 빠져 본 사람들만 경험할 수 있는 여러 맛의 감정들이
그림 속 사물들이 서로 다른 질감과 용도와 형태로
오롯이 드러나서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재미가 있다.
내가 드러내놓고 경멸해 마지않는 것을 모두 대변하는 개츠비 말이다.
그러나 만약 인간의 개성이라는 게 일련의 성공적인 몸짓이라면
그에게는 뭔가 멋진 구석이 있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는 마치 1만 5,000 킬로미터 밖에서 일어나는 지진을 감지하는
복잡한 지진계와 연결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삶의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한 민감성은 <창조적 기질>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는
진부한 감수성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희망에서의 탁월한 재능이요,
다른 사람한테서도 일찍이 발견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다시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낭만적인 민감성이었다.
그래, 개츠비가 옳았다.
내가 잠시나마 인간의 속절없는 슬픔과 숨 가쁜 환희에 흥미를 잃어버린 것은
개츠비를 희생물로 삼은 것들,
개츠비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떠도는 더러운 먼지들 때문이었다. “
-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 발췌
문밖으로 나를 불러내는 약속이 없어서
개강 준비에 몰입이 잘 되다가 정말 찰나의 빛 하나로
이렇게 다른 길로 생각의 흐름이 바뀌니,
하루라는 시간이 길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욕구가 발동? 했다.
몸은 한가한데 정신만 바쁘다?
시시각각 나에게 불쑥 왔다가
인사도 남기지 않고 가는 단어들의 길이는
24시간보다 더 길까?
생산적이지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은 엉뚱한 생각 역시
키리코가 탐구하고자 했던 <신비>의 파편일 수 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캐릭터들을 통해 드러낸
도덕적 타락과 부패, 무책임성을
데 키리코가 주제로 삼고 그림을 그렸다면 어떤 이미지일까?
상상하다 피식 웃었다.
”인생이란 결국 단 하나의 창으로 바라볼 때 훨씬 더 잘 볼 수 있게 마련이다. “
-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 발췌
인생을 <신비>로 바라보면 사는 일이 훨씬 가벼울 수 있다.
알고 보면 모든 게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일어나거나 사라지거나 벌어지거나 파괴되는.
그런 것을 미리 짐작하거나 알아서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 다수가 긴장하고 불안해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가?
마치 시간과 시간 사이에 끼어서
점점 더 납작하고 창백한 모습으로 저무는?
눈을 찌르기도 하고, 간질이기도 하는 빛 덕분에
조르조 데 키리코의 <사랑의 노래>도 다시 감상하고
빛의 성질 중 <신비>에 가까운
감각적인 면을 갖고 놀이를 했다.
아직 급하지 않아서겠지?
발등에 불 떨어질 때까지 꾸물대는 느림보라
자투리시간까지도 아껴가면서 노는 데
열중하는 나를 응원해!!
”이 세상에는 쫓기는 자와 쫓는 자,
바쁘게 뛰는 자와 지쳐버린 자가 있을 따름이다. “
-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