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모래 요정이 돌아왔다.
지난여름,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간 딸이 온몸에 모래를 뒤집어쓴 채 집으로 돌아왔다. 유치원 다니던 때야 사리 분별 못 하는 나이라니까, 또 모래는 형태의 제약을 받지 않는 자연적 소재라 아이들 창의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기에 눈 딱 감고 그러려니 했다. 어쩌다 보면 모래 범벅이 된 모습이 귀엽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모래 요정’이라는 애칭도 붙여주었다. 그런데 2학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모래를 뒤집어쓴 아이를 보고 있자니 속상하기도 하고, 혹시 우악스러운 남자아이들이 모래를 뿌리면서 괴롭힌 건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목덜미와 등 안쪽까지 잔뜩 엉겨 붙은 모래는 털어도 털어도 계속 나왔다. 샤워기로 모래를 닦아주면서 딸의 상태를 살폈다.
“뭘 했길래 온몸이 모래투성이야?”
“놀았어.” 시크한 답이 돌아왔다.
“혹시 누가 너한테 모래를 뿌렸어?”
“아니.”
“무슨 놀이를 했길래 이 지경인 된거야?”
“친구랑 모래 위에서 뒹굴었어.”
“야! 너 2학년 올라가서 이제 '언니'라며? 아직도 모래 위에서 뒹굴고 싶냐?” 나의 목소리 톤이 살짝 올라갔다.
“응. 내가 하고 싶은 건 해도 돼.” 딸의 말투는 굉장히 단호했다. 처음에는 벌써 반항인가 싶었는데, 그다음 아무렇지 않게 콧노래를 부르는 딸의 표정에서 부정적인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본인의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심이 됐다. 다행히 괴롭힘을 당한 것 같지도 않았다.
작년 여름, 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안 그래도 걱정을 달고 사는 아내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우리 딸 잘할 수 있을까?"
"독일 아이들 사이에서 주눅 들어 있으면 어떡하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하는 말은 다 알아들을 수 있겠지?"
아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 역시 심란한 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예지몽이라도 꾼 것처럼 딸의 학교생활이 눈앞에 상상되었다. 딸은 풀이 죽은 채 교실에 앉아 있었다. 어릴 적 나의 모습이 재연되는 되는 것 같았다. 그다음부터 아내의 모든 말이 타박처럼 들렸다."애가 당신을 너무 닮아서 걱정이야!"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한숨이 새어 나왔다. 분명 아내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을 텐데... 제 발 저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부정할 수도 없고, 묵직한 근심에 짓눌려서는 "공부 머리만큼은 엄마를 닮아야 할 텐데..."라며 혼잣말만 중얼거렸다.
나는 작은 키, 항상 부어있는 눈두덩이, 새집을 지은 부스스한 머리, 상당히 게을러 보이는 외모였다. 새 학기, 새 교실에 들어서면, 항상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낯선 이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그랬다. 목소리는 기어들어 가고, 표정에 자신감이라고는 없었다. 당연히 주도적이지 못한 성격 탓에 힘 좀 있어 보이는 학생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그 때문에 나의 생활기록부 활동 사항에는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코멘트가 있었다.
"소심한 성격 때문에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며..."
학창 시절, 나는 이른바 쭈구리과에 속하는 초식성 인간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누군가를 공격할 용기도, 힘도 부족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키도 크고, 전교생이 모두 아는 학생이 되긴 하지만 그 이유가 좋지 않았던 탓에 금방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만약 지금 길에서 동창을 마주친다면 몇 명이나 나를 기억할 수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지긴 하지만 굳이 확인하고 싶진 않다. 아마 상처만 받고 후회할 게 뻔하다. 늘 남보다 많이 뒤처져서 꽁무니만 쫓아갔다. 나름대로 굴곡진 인생을 살았지만, 타인에게 모범이 되거나 훈훈한 감동을 주는 삶은 또 아니었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운 좋았던 것을 꼽으라면 서른다섯 살에 미모의 여인과 결혼하고, 그다음 해에 아주 예쁜 딸을 낳은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제대로 극복해본 적 없는 삶이 부끄럽고,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은 딸을 낳고부터였다. 새롭게 부여된 '아빠'라는 호칭은 이차 성징(二次性徵) 이후, 나에게 가장 큰 성장을 요구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굽은 어깨부터 펴라"는 내면의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미 구부정하게 굳어버린 자세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변화에 가장 큰 걸림돌은 나 자신이었다. 결국 생각해 낸 것이 유학이었다. 마침 다니던 회사에서도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덜컥 결심부터 해버렸다. 어디선가 독일 대학교는 학비가 없다는 말만 듣고 독일로 떠나기로 했다. (이때만 해도 언어를 배우기 위해 적지 않은 돈과 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게 될 줄은 몰랐다. 대학원에 입학도 하기 전에 이미 은행 잔액은 제로가 되었다) 다행히 아내도 나와 뜻이 같았다. 가족들의 응원 속에 우린 무모한 여행을 준비했다.
2013년 6월 13일, 우리는 서울을 떠나 베를린으로 향했다. 생후 120일 된 딸을 아기 띠로 들쳐 엎고 베를린 테겔공항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었다.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낯선 공간에서의 시간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채워져 갔다. 꽤 오래도록 문득문득 여기가 어디인지 아내와 나는 서로에게 묻곤 했다.
처음 기대와는 달리 힘든 상황들이 이어지자, 어김없이 내 안의 쭈구리가 고개를 들었다. 불편하고 난처한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자꾸만 뒷걸음질 쳤고, 무책임하게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불쑥불쑥 일어났다. 그 때문에 아내와 잦은 말다툼을 벌였다. 다행히 비자 만료를 며칠 앞두고 대학원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나의 유학은 실패다. 역시 이번에도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라며 자조하고 있을 때, 작은 기적이 나를 찾아왔다.
서른여덟 살. 베를린바이센제예술대학교(Kunsthochschule Weißensee Berlin)에서 '공간 전략'(Raumstrategien)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기적이 일어났다고 모든 게 바뀐 건 아니었다. 언어의 장벽에 부딪히고, 재정적 압박에 헐떡였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시작한 공부가 어디 쉽겠는가?" 남들에겐 고상한 척, 속으로는 부족함을 감출 핑계만 찾아댔다. 나는 3년 재학 기간 내내 졸업할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한 시나리오를 그리면서 살았다. 기적처럼 주어진 학업 연장의 기회를 저버리려고 했던 걸까?
딸이 소심한 모습을 볼일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어부가 바다 깊은 곳에 던져진 그물을 끌어당기듯이 나의 어린 시절, 부끄러웠던 기억들이 여기저기 흙탕물을 일으키며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인생의 모든 순간마다 나를 장악했던 열등감이 딸에게는 전달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이들 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돌아서면 걱정이 한 보따리였다. 특히, 코로나19 펜데믹(Pandemic)을 지내면서 걱정은 그 수가 불어나는 일은 있어도 줄어드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딸은 이런 우리의 마음을 위무해주듯 오늘도 해맑은 표정으로 학교에서 돌아왔다. 방바닥 위에 서걱거리는 모래를 쓰레받기에 쓸어 담아야 하는 잡무가 내 무릎과 허리에 고통을 전해주지만 그래도 아이 입에서 툭 튀어나온 “내가 하고 싶은 건 해도 돼!”라는 별거 아닌 것 같은 이 한마디가 오늘 하루 치 걱정을 사라지게 해주었다.
이 브런치북은 Side A와 Side B로 구성했다. Side A는 열등감과 수치심으로 가득했던 마음의 공간을 보여준다. 그곳에서 나는 극적인 변화를 원하지만 늘 동기 부여가 부족하다. 나른하고 게으른 육체 때문에 패배감에 젖어 밑바닥을 벗어나지 못한다. 고민이 또 다른 고민을 불러온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글을 쓰면서 그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야 했는데 사실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쾌하지 않은 작업이 막연하나마 대단히 필연적인 것이라고 느꼈던 이유는 스스로 가학(苛虐)함으로써 오는 내밀한 쾌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Side B, 다시 채워져 갈 마음의 공간에는 공간의 변화가 불러온 크고 작은 기적들을 기록했다. 나밖에 볼 수 없었던 공간에 네가 들어오면서 불러온 작은 변화. 녹록지 않았던 독일 유학기를 담았다.
소심한 성격 때문에 매사에 성취도가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이 글을 추천한다. 함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단편 소설 같은 에피소드가 많이 등장한다. 우리의 인생이 다 그렇지 않은가. 아마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교훈도, 가르침도 없다. 다만, 앞이 보이지 않아, 꽉 막힌 상황 속에서 헤매는 이들을 위해 돌파구(Breakthrough)를 찾을 수 있는 힌트 정도는 담아 두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란다.
산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다 보면 여러 개의 갈림길을 만난다. "어디로 갈까?”, “어느 길이 더 쉬울까?", “조금만 더 쉬었다 갈까?” 이렇게 고민만 하다 보면 정작 정상에는 해가 지기 전에 올라가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