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간 세상은 내편 May 20. 2020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1)

나깨순


'......'

무의식 세계의 어느 한 장면에 머물다가 눈이 떠지고 현실로 돌아왔다.

성인이 되기 전부터 반복해서 꾸는 꿈이 있었다.


함께 있는 사람, 장소는 바뀌지만 반복되는 상황이 있다.


바닷가에 있는 아름다운 집에 들어갔다.

내 집이었고 나는 흥분해서 둘러보고 있는데 내 집이 아니라고 한다.


멋진 내 집이 눈 앞에 있다.

불안한 느낌이 들고, 곧 낡고 좁은 집으로 변하고 만다.


내가 자주 꾼 꿈은 멋진 집이 나오는 꿈이었고 항상 마지막엔 내 것이 아니거나 사라진다.

꿈에서 깨면 꿈에서도 마음에 드는 집을 가지지 못하는 상황에 실망하며 이번 생은 가지는 것과는 거리가 먼 걸까 스스로에게 하소연한다.

더불어 꿈에서 봤던 마음을 뺏긴 그 집을 잊지 않으려 꿈 전체를 기억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어릴 때 단칸방에서 꽤 오랫동안 다섯 식구가 살았다.

<응답하라 1998> 덕선이네처럼 당시 한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도 많았고, 아파트촌이 아니어서 동네 친구들 상황도 비슷비슷했다.

국립초등학교를 다니게 됐는데 부유한 아이들이 많았고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친해진 친구를 집에 데리고 갔는데, 당황하는 친구의 표정을 기억한다.

단독주택에 사는 친구, 아파트에 사는 친구(아파트가 흔하지 않던 시절) 집에 가보고 그 친구의 표정이 왜 그랬는지 이해하게 됐다.


대문을 들어서면 너른 마당 중앙에 석류도 열리는 잘 가꾼 화단이 크게 자리하고 있고, 반들반들한 주인집을 지나 세 사는 이웃의 방문 몇 개를 지나 가장 안쪽까지 들어가면 우리 집이었다.

4학년 방학 때 반 친구가 숙제를 물으러 왔는데, 대문을 들어와 물어물어 찾아 우리 집 부엌 앞에 서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주인집에 산다고 당연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여기가 너희 집이야?' 하며 묻는데, 나는 당황해서 엉뚱한 대답을 했다.

'어, 원래 대문 옆 그 집 사는데 이사 가려고 잠시 여기 있어."

말도 안 되는 소리였기 때문에 친구는 거짓말인지 아는 눈치였고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그깟 집 때문에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또 들키기까지 했다.

그때부터 거짓말은 수치심이란 공식이 생겼고, 집은 나에게 콤플렉스가 되었다.


이후 방이 여러 개인 집으로 이사를 몇 번 하고 우리 집도 가지게 되었지만 집에 대한 콤플렉스는 없어지지 않았다. 집의 외형적인 부분에 만족하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집 안에 흐르는 기운도 전반적으로 어두웠던 것 같다.

넉넉하지 않았던 살림살이, 고부갈등,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어서인지 분위기는 무거웠고 편하지 않았다.

나에게 우리 집은 누군가를 데려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유아기부터 청소년기를 떠올리면 소소하고 행복한 장면도 떠오르지만 전반적인 느낌은 밝지 않은데 , 집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무겁고 어두웠던 느낌이 꺼림칙해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집에 대한 나의 콤플렉스는 단순히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가라앉은 분위기까지 포함한 것 같다.

그래서 신기루처럼 내 손에서 사라지는 집 꿈을 그렇게 오랫동안 꿨던 건 아닐까?


독립을 하고 결혼하고 내 집 장만을 하고도 여전히 그 꿈은 이어졌다.

"엄마, 나 요즘도 내가 너무 마음에 드는 집이 꿈에 나오는데 늘 잘 못 되거나 내 게 아닌 게 돼."

꿈을 꾼 날 엄마와 통화하다가 내 콤플렉스를 고백하듯 이야기했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덧+


이 글을 쓰다가 고등학교 때 자주 가 본 친구들 집이 떠올랐다.


가정형편 좋았고 공무원인 부모님은 조용하셨고 과묵한 오빠와 할머니와 같이 살던 친구네는 밝은 기운이 배어 있지는 않지만 조용하고 차분했다.


넉넉하지 않지만 부모님이 참 밝으셨고 명랑한 어린 남동생이 있던 친구 집에 가면 너무 편안했다. 어머니는 사춘기인 우리말에 귀 기울여 주셨고 가끔 언니 같기도 했다.


부자고 맞벌이하시는 인상이 차갑고 무서운 부모님과 아이답지 않은 어린 남동생이 있던 친구 집은 늘 부모님이 안 계실 때가 많았는데 집안 공기가 정체된 느낌이었다.


가정형 편도 좋고 아빠 엄마가 명랑하시고 언니 , 오빠, 동생이 있던 친구 집에 가면 언제나 즐거운 기운이 흘렀다. 오빠는 사진을 전공했는데 유머 있었고, 피아노 전공하는 언니는 털털했고 집에는 언제나 음악이 흘렀고 친구의 웃음소리는 쾌활했다.


가정형편 좋고 아빠와 대등한 관계에 있는 듯한 대장부 같은 엄마와 카리스마 있는 언니와 털털한 여동생을 둔 친구 집에 갔을 때 분위기는 여자가 목소리가 큰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잘 꾸며놓은 인테리어적인 요소가 아닌 그 집에 있는 사람과 분위기를 떠올리며 좋았거나 별로였다는 느낌을 기억해 냈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