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던 밤, 스마트폰 속 아이의 동영상을 보다가 6살, 5살.. 3살 모습까지 계속 이어서 보게 되었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몽글몽글해진 마음으로 미소 지으며 영상을 재생하다가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바로 몇 개월 전 모습도 지금과 다르고, 아기 때 얼굴은 내가 기억하는 모습보다 더 아기 같았다. 영상을 찍던 순간엔 현재였는데, 어느새 제대로 기억해내기 어려운 아득한 과거의 모습이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매 순간이 한 번 뿐이며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망각하며 살아간다. 지금을 잘 살아가고 가끔 멈추고 바라봐야 할 이유인 것 같다.
아이가 7살이 되었다.
아쉽게도 아이의 모습은 유아 티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미운 7살이라 불리는 유아 사춘기보다 내년이면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온다. 엄마의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하는 예비 학부모 타이틀을 달기 때문이다.
학생과 학부모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불안함에서 오는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 때를 기억하면 낯선 환경에 두려움은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달라진 선생님과의 관계, 친구 관계, 경쟁, 혼자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일들과 책임이 생기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내가 성인이 되어 돌아보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정서적 역할은 아이를 믿고 지지해 주며 잘 들어주는 게 제일 큰 것 같다. 알면서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그 시기에 좀 힘들었던 부분이 있어서 인 것 같다. 작은 시련을 견디고 나아가는 과정에서 성장한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에게는 꽃길만 걷게 하고픈 게 부모 마음이라 그럴까?
여행이라는 테마로 한 번 뿐인 아이의 7살, 엄마 7년 차를 보내고 싶다. 같이 낯선 길을 걸어가며 서로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고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성장하고 싶다.
꼭 멀리 가지 않아도 일상을 낯설게 본다면 그것 또한 여행이라 생각한다. 아이가 스스로 할 기회를 많이 주고 싶다. 낯선 경험 속에서 서로 의지하기도 하고 문제가 닥쳤을 때 용기를 내어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내가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걸 계획해도 아이는 내가 보길 원한 걸 안 볼 때가 더 많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아이에게 기억되는 소중한 부분이 분명히 있을 거라 믿는다.
어릴 때 기억을 떠올리면, 아빠와 남동생과 공원에 놀러 갔는데 아이스크림 사 먹고 걸었던 일이 자주 떠오른다. 특별한 재미있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 게 아니라 아빠와 같이 했다는 게 남았다. 아빠가 우리 남매를 찍어 준 사진이 있는데 그때의 내 기분과 분위기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 좋았던 한 장면이 커서도 부모님과 날 연결해 주는 것 같다. 함께했고 사랑받는 아이였음을.
일상은 무서운 엄마, 일로 바쁜 아빠지만 일상에서 나와서 아빠와 영화를 보거나 가족이 공원에 놀러 간 순간은 언제나 좋은 기억으로 자리했다. 엄마 아빠도 아이 셋을 데리고 김밥 도시락을 싸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나가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었겠지만 같이 일상에서 벗어나는 순간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이 기간이 지나면 일하는 엄마, 학원 가면 만날 수 있는 친구, 학교에 입학하면 어쩔 수 없이 학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바쁜 하루에도 작은 휴식을 누릴 줄 아는 나와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를 가까우면서도 좀 떨어져 바라보고 싶다.
내가 알지 못한 아이의 모습을 보고 싶다.
가족 문화를 만들고 싶다.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기고 다른 사람의 가치도 알아보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남편과 나, 부모와 아이 사이, 부모의 언행이 일치해서 아이의 본보기가 되고 가족과의 대화에도 집중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