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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퀸스드림 Dec 26. 2019

여행으로 준비하는 초등 입학

여행의 시작

일 년 동안 아이와 시간 날 때마다 여행을 가야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즐거움 반, 설렘 반, 그 외에 두려움이라는 감정도 있었다. 친구랑 가는 것도 아니고 아이와 함께 가는 여행이라고 하니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 배낭 한가득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  함께 어디를 가면 아이 짐이 너무 많아서 그것 때문에 외출하는 것을 꺼려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6세 아이이다. 먹을 것을 따로 챙겨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옷을 버릴까 많이 챙기지 않아도 되는 나이이다. 그런데 많은 짐을 지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내가 아이에게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짐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이가 아니라 친구였다면 이런 생각조차 없었을 것이다. 아이이기 때문에 내가 무언가 해줘야 하고, 결정해야 하고,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무겁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런 생각부터 벗어나기로 해 놓고선....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 보다.

            


그래서 우선 나부터 달라지려고 했다. 내가 뭐든 것을 다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결정권을 아이에게 맡겼다. 아이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고, 내가 서포트를 하는 형식으로 하면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묻기 시작했다.


"세인아~ 세인이는 어디 가고 싶어?" 

"아이는 한참 고민하더니 '호텔'!!!!이라고 대답했다.

"호텔???"


"응!!! 호텔 가고 싶어!!!"



솔직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답이었다. 혹시나 놀이동산에 가자고 하면 어떡하지?라며 은근 걱정했던 나였다. 왜냐하면 나이 든 엄마에게 놀이동산은 놀이동산이 아니라 노동 동산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오랫동안 줄을 서는 것도 그렇고, 아침 일찍 가서 문 닫을 때까지 놀다 와야 하는 곳. 많은 인파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육체노동이 필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 알았어! 엄마가 알아볼게!!!" 혹시나 아이의 마음이 변할까 빨리 답해버렸다. 호텔들을 검색하면서 서울 시내에 있는 호텔들은 상당히 비싸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에 사니 굳이 서울 시내의 호텔을 알아볼 일이 없었기 때문에 가격도 잘 몰랐다. 서울시내 호캉스로 검색하니 너무나도 비싼 호텔 패키지에 점점 서울을 벗어나 찾게 되었다. 


그러다 찾게 된 곳이 김포에 있는 호텔이다. 김포는 우선 서울에서 가깝다. 우리 집에서 검색해 보니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금요일 저녁이라 더 먼 곳은 갈 수도 없는데 거리상으로도 딱 좋은 곳이다. 

가면서 아이에게 물어봤다. "왜 호텔이 가고 싶었어?" 며칠 전 동생이 아이들과 함께 김포 마리나베이에 호캉스를 다녀왔다는 것을 아이가 옆에서 듣고 자기도 가고 싶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그랬구나." 진작 알았다면 나도 똑같은 호텔을 예약했을 텐데, 나는 김포 아셈 호텔로 예약을 했던 것이다. 

가깝고, 저렴하고, 아침 조식이 포함된 곳. 그리고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호텔이기 때문에 깨끗할 것이라는 예상과 후기들을 읽어보니 좋았다는 후기가 많아서 결정하게 된 것이다. 

나와 아이의 첫 여행은 이렇게 호캉스로 시작하게 되었다.퇴근하고 가는 시간이라 늦게 도착했지만, 아이와 근처 장기동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호텔로 들어와 우리 집 안방보다 넓은 욕실 욕조에 들어가 둘이서 몸을 담그며 반신욕을 즐겼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나는 아이에게 슬슬 하나씩 혼자 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욕조에 물을 받는 것부터! 그전 같으면 내가 했을 것인데, 아이에게 설명을 해 줬다. 

"욕조에 구멍이 있는데 그걸 막은 다음에 샤워기를 틀어 놓으면 돼"

처음에 아이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엄마! 잘 안돼. 엄마가 좀 해줘!!!"라며 벌써부터 SOS를 친다.

"아니야! 세인아 우선 네가 해 볼 수 있는 만큼 해 본 다음에 안되면 엄마한테 이야기해 줄래?"  결국 몇 번 도전해 보던 아이는 계속 엄마를 호출한다. '그냥 내가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아이가 호출할 때마다 들었다. 

결국에는 내가 했다. 하지만 아이는 계속 시도해 보았고, 어떻게 하는지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방법을 배웠다. 진짜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욕조에 구멍을 막고 샤워기를 틀어놓는 이런 간단한 것부터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샤워도 혼자 해 보기를 시켜봤다. 마지막 검사를 하면서 의외로 아이 혼자서 샤워를 해도 깨끗하게 잘하는구나를 알게 되었다.


아이랑 나랑 아주 오랜만에 늦은 시간까지 깨어있었고, 함께 텔레비전을 봤다. 평소 같으면 9시 반부터 잘 준비를 하는 나인데, 오늘은 그래도 여행이니까... 우리 둘 다 평소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는 것이다. 늦게까지 깨어서 텔레비전 보기!!! 어쩌면 집에서도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왜 굳이 돈 내고 나와서 남의 집?에서 자는 거야?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건 그냥 여행이다. 집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것들을 나와서 느끼는 것이다. 분명 아이도 다른 느낌을 들었을 것 같다. 빳빳한 이불. 그리고 엄청 넓은 욕실과 욕조. 여행 가방을 끌고 가는 느낌. 그리고 주변의 새로운 풍경. 익숙한 사람들이 아닌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그런 느낌. 낯선 장소 등등 이 모든 것이 아이에게 새로움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나는 호텔 조식을 꿈꿨다. 왠지 호텔 조식은 나에게 꼭 먹어야 하는 음식처럼 느껴지고, 새로운이라는 단어와 이국적인이라는 단어를 느끼게 해 주는 것 같다. 일부러 호텔 조식 패키지로 갔는데, 아쉽게도 우리 둘 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먹지 못하고 나왔다. 그것이 제일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포기해도 괜찮을 정도의 아쉬움이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었고, 아이의 선택에 보조하는 형식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가까운 김포라 여행 같지 않은 느낌도 들었지만, 그래도 여행이라는 그 단어가 주는 설렘 및 즐거움은 다 느끼고 온 것 같다. 아이에게 선택권을 준 것이 잘한 것 같긴 한데,  앞으로도 아이에게 선택권을 준다면 그 선택의 범위가 많이 넓지는 않을 것 같다는 쓸데없는 고민도 해본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아이가 "엄마! 오늘따라 나한테 왜 이렇게 많이 시켜?"라는 말을 할 정도로 나는 아이에게도 엄마와의 독립을 외쳤다. "스스로 한번 해봐. 이제 조금 있으면 세인이도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니까... 그때는 엄마가 따라갈 수도 없어. 선생님도 그렇고... 그래서 너도 조금씩 네가 할 줄 아는 것들을 늘려가야 해."라며 말해주었다. 아직 아이는 그런 면에 있어서 적응하지는 못한 것 같다.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니 나도 모르게 내가 다 해주면서 귀하게 키웠던 것 같다. 



우리는 일상을 즐겼다. 김포 아웃렛과 고양 스타필드에 가서 점심도 먹고 쇼핑도 했다. 언니들에게 매번 물려만 받아서 입는 딸아이에게 새 옷도 사주었다. 옷 선택도 아이가 하게 했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옷과 아이가 마음에 들었던 옷이 다르긴 했지만,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아이와 옷을 고르면서 어렸을 적 생각이 났다. 엄마와 나는 옷 가게에서 매번 싸웠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나에게 여성스러운 옷들. 리본과 레이스가 잔뜩 달린 옷들을 입히려고 했고, 나는 심플한 중성적인 느낌의 옷을 좋아해서 매번 싸우기만 하고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나왔던 적이 많았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더더욱 아이의 선택에 이의를 달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것부터가 시작인 것 같다. 아이는 자신의 것을 스스로 선택할 줄 아는 것이고, 나는 아이가 선택한 것에 존중하는 것.  이런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아이 스스로 고민해서 선택해 보는 것이다.  자신의 옷조차 선택할 수 없다면 인생길에서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옷은 엄마가 선택한 것을 입고, 네 인생은 네가 선택해라!!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아주 작은 것부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이  꼭 필요한 것 같다. 옷뿐만 아니라 신발. 그리고 점점 커서 학교, 학과, 그리고 만나는 사람과 회사, 그리고  인생의 중요한 모든 것들을 아이는 앞으로 선택해야 한다. 그때마다 엄마한테 물어주면 좋겠지만 그때 나는 그저 옆에서 조언 정도만 해야 하지 아이의 인생에 있어서 크게 관여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선택에 있어서 아이가 지혜롭게 할 수 있도록, 아이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싶다. 그러면 아이는 많은 실패를 통해서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고, 후회를 통해서 삶을 배워나갈 것이다.  


그것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다. 엄마로서 딸의 선택이 썩 좋지 않더라도 나는 그저 딸의 선택을 존중해 주고, 인정해 줘야 할 것 같다. 나는 딸의 인생에 조연일 뿐이니까.



우리의 여행이 전혀 여행답지 않은 여행이었어도 나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참으로 즐거웠다. 아이에게도 물어봤다. 1박 2일의 여행 중 어떤 것이 가장 즐거웠냐고... 아이의 대답은 "엄마랑 함께 해서 즐거웠어!"라는 대답을 해주었다. 



무언가 정말 새로운 것을 하지 않아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행복한 지금인 것 같다. 아이에게 이런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여행을 하면서 평소 보내는 시간도 훨씬 아름답고 가치 있다는 것을 아이가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런 작은 행복들과 가치들이 모여서 결국에는 우리 아이의 인생이 그랬으면 좋겠다.  


 나도 이번 여행을 통해서 배운 것이 있다. 아이와의 여행은 돈을 많이 쓰는 것보다, 새로운 곳에 가는 것보다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아직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비로소 아이와 여행이라는 부담감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 같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부담감도,  비싼 곳이나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하는 부담감도 내려놓았다. 그냥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이라는 말처럼... 우리의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렇게 결심하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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