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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묵묵 #1

희망과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는 옳은 말, 공허한 말의 콜라보

대학 시절 정말 좋아했던 연구 공간 수유너머, 그 중에서도 니체를 접하는 통로 역할을 톡톡히 해준 고병권의 에세이집이 나왔다.


오랜만에 접한 고병권의 신작이었다. 니체에 심취했던 대학 시절, 고병권의 책은 니체 입문서로서 해석서로서 큰 역할을 했다. 


연구 공간, 수유너머에선 『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 등을 쓴 고미숙과 고병권이 쌍두마차처럼 느껴졌다. 이 두 사람이 내는 책은 공부 모임의 자료로 채택되기 일쑤였고 언젠가부턴 스스로 찾아 읽었다.


당시 공부 모임들은 늘 수유너머를 부러워했다.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지향점으로 삼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고병권의 신간 『묵묵』에선 2009년 수유너머가 깨지던 때의 기억이 언급된다. '말의 한계'가 등장한다. 


수유너머에서조차 옳은 말이 넘쳐나고 말은 갈수록 법을 닮아가는, 그래서 올바름과 권리를 따지고 다투는 말이 횡행하며 공동체가 점점 국가를 닮아가는 순간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결국, 고병권이 자신의 저서 『철학자와 하녀』에서 쓴 것처럼, "옳은 말은 그저 옳은 말일 뿐"이었다. '앎이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 고병권이 그해 겨울에 썼다는 글의 제목인데, 이런 질문을 마주한 순간부터 나 역시 이게 늘 화두였다. 과연 앎과 삶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지행일치, 지행병진이란 무엇일까, 가능하긴 할까.


고병권은 『묵묵 』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앎을 통한 삶의 구원을 믿을 수 없었다. 누구보다 인문학자 자신에게 그랬다. 가난한 사람들은 고사하고 인문학 자신은 앎에서 구원을 얻었는가. 그때 나는 '옳은 말은 그저 옳은 말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정확하고 올바른 말이라고 해도 그것은 유통되는 정보 이상이 아니었다. 옳은 말들은 기어가 빠져 공회전하는 엔진처럼 헛돌았다.'


고병권이 2010년 노들야학에서 철학 수업을 하던 때, 첫 번째 수업에서(개인적으로 무척 재밌게 읽었던) 자신의 저서『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문과 제1부를 학생들과 읽던 내용도 흥미롭다. 첫 시간부터 너무 힘들었다고 회고하는 고병권은 니체의 생애만을 간략히 소개했는데,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몇 사람은 잠이 들었고 몇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고 적었다. 제1장 '희망 없는 인문학' 챕터의 두 번째 소제목, '말의 한계, 특히 옳은 말의 한계에 대하여(36쪽)에 너무나 어울리는 에피소드다.


나 또한 공부 모임을 하면서, 스스로 굉장히 유익하다고 느꼈던(그러나 옆에선 졸거나 딴 짓을 하고 있는)  강의들을 들으면서 수도 없이 위와 같은 경험들을 했다. 여러 번 좌절했고 여기엔 더 이상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옳은 말의 한계'를 실감하며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고병권은 여기서 반전을 준다.


"주권의 언어로서 옳은 말이 지배하면 신체가 얼어붙는다. 실없는 말들, 어이없는 말들, 틀린 말들의 중대한 기능이 여기에 있다. 그 말들은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옳은 말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 효과(경직성이나 지루함)를 제어한다. 누군가의 실없는 한마디가 다른 누군가로 하여금 말을 꺼낼 수 있도록 공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누군가의 어처구니없이 틀린 말들은 누군가에게 말을 꺼낼 용기를 준다. 자칫 동료에 대한 명령이 될 뻔한 '옳은 말'이 우정 어린 조언이 될 수 있는 것도 이런 말들 덕분이다. 더욱이 이런 말들은 토론을 통해 하나의 결론이 도출되었을 때도 그 결론이 지나치게 깔끔해지지 않도록 흉터를 남기거나 최소한 낙서라도 해둔다."(39쪽)


머리를 한 대 크게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실없는 말들, 어이없는 말들, 특히 틀린 말들을 누구보다 싫어했던 사람으로서 이것들의 중대한 기능이란 건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심지어 옳은 말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 효과(경직성이나 지루함)마저 제어한다니! 놀랄 노자였다.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지도 않다. 어떤 영화, 드라마를 봐도 시종일관 '옳은 말'만 나열하는 스토리론 흥행하기 어렵다. 주인공의 대사가, 주인공의 옳은 말이 명대사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실없는 말을 하는 조연의 등장이 필수적이다. 어처구니없이 틀린 말들을 하는 조연들은 실없는 말을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조연들에게 말을 꺼낼 용기를 주고, 이렇게 누그러진 분위기 속에 주인공은 '자칫 동료에 대한 명령이 될 뻔한' 옳은 말을 우정 어린 조언으로 탈바꿈 해낼 수 있다.


고병권의 묵묵 리뷰, 첫 번째는 이 챕터의 마지막 부분 인용으로 대체하고 싶다. 


"(중략) 물론 거꾸로의 길도 있다. 옳은 말이 '그저' 옳은 말인 상태를 넘어서는 길. 그러려면 옳은 말은 옳지 않은 말들, 실없는 말들, 우스꽝스러운 말들과 우정 어린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리고 말을 올바른 것으로 다듬기 전에 말의 매질인 공기, 말이 나오는 환경을 잘 가꾸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말이 삶에 밀착하고 삶을 유혹할 정도의 매력을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 자기 말이 자기 삶에 그런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때에야 옳은 말은 비로소 옳은 말이 된다."(39쪽)


우스꽝스러운 말들과 우정 어린 관계를 맺는 옳은 말, 더 나아가 말이 삶에 밀착하고 삶을 유혹할 정도의 매력을 갖게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본다. 자기 말이 자기 삶에 그런 관계를 맺게 한다는 건 어떻게 가능할까. 또 하나의 화두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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