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흡인력 넘치는 문장

feat. 소설가의 일, 김연수

3년쯤 전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오랜만에 들른 서점 책꽃이 한 켠에 꽃혀있던 이 책을 발견하고 선 채로 뽑아들고 읽기 시작했다. '재능은 원자력 발전에 쓰는 건가요?'라는 첫 장의 제목은, 솔직히 바로 와닿는 문장은 아니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이 인용된 도입부부터 확 끌려들어갔다. 하루키가 자신의 등단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열일곱 시간에 걸쳐 단번에 썼다는 일화는 예전부터 감명깊게 읽고 있었던 터. 이어지는 내용을 읽지 않을 수 없게 되버린 셈이었다.


처음부터 등장하는 김연수 작가 특유의 재기넘치는 문장들에 사로잡혔음은 물론이다. 가령 '전화번호부라도 완독할 수 있으리라'는 내용이라든가 '이제 내 시간을 찾아서 푹 쉬고 싶지 다른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까지 찾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라는 문장들. 피식 웃음이 나는 이런 문장들과 마주하면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곧 이어 터지는 피니쉬 블로.


"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19쪽)


읽는 순간 소름이 돋는 이 문장을 읽고 감전된 듯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잠시 책에서 시선을 떼고 서점을 둘러봤다. 아까와 다름없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사람들은 조용하게 각자의 영역에서 책을 고르거나 읽고 있었다. 다시 책을 읽어나갔다.


고속도로 휴게소 이야기로 장면을 전환하며 분위기를 환기한 재치 넘치는 작가는 호두과자기계와 인사기계를 비교하며 다시 묵직한 한 방을 터뜨린다.


"소설가가 재능에 대해서 말할 때는 소설을 쓰고 있지 않을 때다. 소설가에게 재능이란 인사기계나 기도기계 같은 것, 그러니까 마치 나 대신에 소설을 써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소설기계 같은 것이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이건 호두과자기계와 다른 종류의 기계다. 재능이라는 소설기계는 소설을 만들지 않는다. 소설기계 역시 소설가의 죄책감이나 꺼림칙함을 덜어주기 위해 고안된 기계다. 소설을 쓰지 않기 위한 방법 중에서 재능에 대해서 말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도 죄책감이 없는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23쪽)


해서, '조삼' 김연수 선생의 호통에 정신이 번쩍 들어 뭐라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흰 바탕에 검은 글씨를 꾹꾹 눌러담고 있자니 참을 수 없는 자괴감이 밀려든다. 예전엔 어떻게 글을 쓰고 스스로 만족하는 황당무계한 일이 가능했을까. 전엔 아무도 보지 않고 누구에게도 칭찬 받지 못해도 항상 쓰고 싶은 게 넘쳤고 밤새 글을 썼다. 요즘엔 나조차 만족시키지 못하는 글이 거의 전부라 쓰고 싶은 욕구와 쓸 때마다 맛보는 좌절감이 쳇바퀴 돌 듯 교차하는 순환만 반복된다.


바로 그때, 이것까지 예상한(?) '모사' 김연수 선생은 해결책을 내놓는다.


"이런 우주에서 소설가로 산다는 건 여러 번 고칠수록 문장이 더 좋아진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플롯과 캐릭터 같은 건 처음부터 직관적으로 멋진 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고 해도 문장만은 제일 먼저 쓴 문장이 제일 안 좋다. 그래서 소설가에게 필요한 동사는 세 가지다. '쓴다' '생각한다' '다시 쓴다'. 소설가는 제일 먼저 '쓴다'. 그다음에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쓴다'. 소설가란 어떤 사람들인가? 초고를 앞에 놓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자기가 쓴 것을 조금 더 좋게 고치기'가 바로 소설가의 주된 일이다. 소설쓰기라는 동사가 있다면, 그런 뜻이어야만 한다. 누군가 '소설쓰고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먼저 글을 썼고, 지금은 그 글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시 쓰고 있습니다'라는 뜻이어야만 한다."(75쪽)


다시 쓰는 게 중요한 이유는 언어의 세계가 어려 겹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어지는 김연수 작가의 설명. '5월을 보내는 마음이 슬프다'든가 '그녀는 질투심이 많다'는 문장들은 대개 제일 바깥에 있는 단어들을 사용한 문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등장하는 '빈도수 염력사전'과 '핍진성'!


허구의 세계를 문장으로 창조해서 실제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핍진한 문장들이 받쳐줘야 한다는 게 1부를 끝맺는 작가의 마지막 설명이다.


바로 여기까지. 책꽂이 앞에 선 채로 이 대목까지 단숨에 읽고 만 나는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의 이전글 Bar에서 쓰는 반성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