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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에서 쓰는 반성문

트레바리 씀-블랙 2018년 6월 모임 독후감

트레바리 압구정 아지트는 밤이 되면 ‘B1’이라는 이름의 Bar로 변신한다. 지금 시간은 밤 10시. 오늘까지 4일 동안 매일 철야로 이어졌던 마감 작업을 끝내고 B1에서 칵테일 한 잔과 함께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다.


올해부턴 1인칭으로 글을 쓰기 싫어졌다고 징징거리다 뜬금없이 소설 비스무리한 걸 몇 개 써서 독후감으로 제출했었는데, 『쇼코의 미소』 같은 책을 읽고 어설픈 소설을 쓰자니 부끄러움이 앞섰다. 글을 쓰기가 너무 어려웠다.


지난 달 트레바리 모임 바로 다음 날부터 이어진 출장은 국내와 국외를 넘나들다 6월 10일 중국 난징 공항에서 귀국 비행기를 타는 걸로 막을 내렸다. 돌아와보니 바로 원고 마감 기간. 이번에야말로 ‘호진’의 본심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하지만 ‘마감에 쫓기는 글쓰기’는 이제 일상이나 다름 없으니, 내 마음속 명작으로 자리잡은 『쇼코의 미소』를 담담히 리뷰해보려 한다.


얼마 전 첫 작품 <쇼코의 미소>를 보다 가슴이 먹먹해져 책을 덮었다. 차마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한동안 여운에 젖었다. 눈물이 나는 지점이 몇 군데 있었다. 특히 압권은 역시 할아버지가 소유의 자취방을 찾아왔을 때.

“너 말이다. 이런 말은 처음 해보는데.”로 말을 시작한 할아버지는 “나는 네가 이렇게 큰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을 이어간다. ‘힘든 대루 손 벌리지 않고, 까짓것 다 무시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 멋지다고 본다’고 말한 할아버지는 비를 뚫고 우산도 없이 돌아간다. 그리고 이어진 소유와 할아버지의 우산 실랑이 장면. 할아버지에게 우산을 뺏어 그걸 펴려고 낑낑대던 소유는 “우산이 펴지질 않잖아. 저번만 해도 잘 됐는데, 꼭 필요하면 이래.” 라고 말하고 눈물을 흘린다. 소유가 눈물을 흘렸다는 묘사는 생략되고 할아버지의 대사가 이어진다.

“눈물도 쌨다. 이리 줘.”

신기하게도 할아버지가 우산을 만지자 그건 활짝 펴진다. 막무가내로 소유에게 우산을 씌워준 할아버지는 ‘괜찮다고, 그냥 이대로 가겠다고’ 말하며 눈이 빨개진다. 소유에겐 할아버지의 눈빛이 ‘울고 싶으니까 그냥 풀어달라’는 뜻으로 읽혔다.


이 장면은 『소설가의 일』에서 김연수 작가가 ‘문장’에 대해 얘기할 때 썼던 글을 떠오르게 한다. ‘오직 문장’만으로 어떻게 읽는 사람의 감성을 건드릴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어떻게 가닿을 수 있는지 설명할 때 예시로 들었던 명작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중국 출장 길에 가져간 『쇼코의 미소』두 번째 작품은 인천에서 난징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읽기 시작했다. 주책맞게 눈물을 훔치면서 읽어나가다 또 막히고 말았다. <한지와 영주>를 만났을 때였다.


한지는 왜 갑자기 영주를 피했을까? 끝내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최은영 작가는 서로의 뜻과 상관없이 작은 오해로 혹은 사소한 이유로 한순간에 멀어지게 된 사람들의 사례에서 영감을 얻어 이 글을 쓴 것일까? 직접 만나 물어보고 싶을만큼 이 소설의 탄생 배경이 궁금해졌다.


하고 싶은 얘기는 정말 많은데 아직은 내 이야기를 글로 풀어낼만큼 담담해지진 못한 것 같다. 지난 모임에서 너무 아픔이 클 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고, 서서히 치유 단계에 돌입하면 그땐 얘기할 수 있게 되며 글을 쓸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비로소 회복 단계에 접어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크게 공감했다. 여러 번 시도에도 실패한 걸 보면 아직 글로 쓸 수 있을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모임에서 혹은 뒤풀이에서 말을 할 수 있을 정도까진 되지 않았을까.


쓰나마나한 글을 독후감으로 제출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쇼코의 미소』를 읽으며 흘렸던 눈물들,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 모임에서 이야기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숨김없이 속마음을 고백하겠다고 약속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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