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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트레바리 GD-셋토 (feat. 권김현영)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지난달 출간된 권김현영 선생님의 '첫 단독저서' 제목이다(권김현영 선생님을 잘 몰랐던 나로서는 '첫 단독저서'라는 멘트가 왜 북토크의 시작을 여는 첫 번째 농담의 주제가 되는지 잘 몰랐지만, 선생이 쓴 수많은 글과 공동저서를 알게 된 후 뒤늦게 미소짓게 됐다). 책 제목처럼, 우리는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면, 아마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을 것이다.


"남자는 운이 좋아 예민해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저자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저자는 어릴 적부터 가사 노동에서 자유로웠다고 고백하며 솔직히 말해 '82년생 김지영'의 동생 같은 존재였다고 얘기하는데, 잠시 딴 길로 새자면 영화가 책과 달라서 좋았던 게 바로 이 부분이었다. 책과 달리 영화에선 '동생'이 아니라 '지석'이라는 이름을 부여했고, 지석이를 끊임없이 불편하게 하며 가사노동 하게끔 만든다. 영화는 물론 기대했던 것만큼 좋았지만(책보다 희망적이라는 식의 평이 담긴 뉴스들이 올라오며 '예견된 흥행(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에 0점 테러를 할 때부터 알아봤다, 바보들)'에 대한 분석을 쏟아내는 모양인데, 솔직히 더 무겁고 적나라했어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부드러웠다.


어제 다녀온 권김현영 선생님의 출간 기념 북토크에서도 청중 중에 "영화(82년생 김지영)를 본 후 '남자친구의 실체'에 대해 알게 돼 헤어진 친구들이 많다"며 여전히 남자친구를 만나고 있는 친구들 또한 고민이 크다고 하는데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텍스트 혹은 영화를 소개해달라는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다. 권김 선생님은 "82년생 김지영 같은 '순한' 영화에 그랬다고 하면..." 하고 뜸들여 청중들을 웃게 만든 후, '침묵에 대한 의문'이라는 영화를 추천한다. 더 센 걸 보여줘서 '82년생 김지영'이 얼마나 순한 영화였는지 알게 하라는 이야기였다.


예민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저자가 약간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면 나는 그야말로 천운을 타고 났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제는 그게 엄청난 불운이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친가쪽으로도 외가쪽으로도 가사노동과 남성이 결부되는 공간은 없었다. 지금도 정정하신 할머니는 1922년생이신데(무려 고종황제 재위 시절로, '조선시대'다), 아버지와는 호적상으로도 40년의 나이 차이가 난다. 네 명의 고모가 먼저 태어난 후 다섯 째이자 막내면서 유일한 남자로 태어났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남자는 주방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는 할머니의 지도편달 하에 자랐다.

외가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외할머니(외가에만 '외(外)'가 붙는 것 또한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언어인데 현재로선 대체할 단어가 없다는 게 슬프다) 또한 장남이었던 큰삼촌을 끔찍이 아끼셨는데, 둘째였던 우리 엄마는 집에서 공부를 하다 혼난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고 한다. 아래로 동생들을 돌보고 위로 큰오빠 뒷바라지를 하며 집안일을 도맡다가 대학의 꿈도 접고 생업전선에 뛰어든 어머니는 지금도 가족들이 모였을 때 '가사노동'에 시달리지만, 큰삼촌과 막내삼촌은 예나 지금이나 부엌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불편함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게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어 답답한데(알 수 있다면 그걸 다른 남자들에게 전염시켜 페미니즘적 사고를 촉발할 수 있을 테니), 그전까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수많은 일들이 굉장히 이상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일단 명절날 큰집(외가)에 가면 (성인이 된 후에) 나는 항상 '메인 테이블(큰삼촌이 앉아 있는)'에 앉아 있었다. 4남매 중 어머니가 둘째였으므로 사촌 자매, 형제들 중에서 내 서열 또한 높은 편이기도 했고, 큰삼촌의 자제들이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큰삼촌, 작은삼촌이 모두 섭섭해 했기 때문도 있었다. 주방엔 전혀 들어갈 일이 없는 두 분은 나를 붙잡고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부터 온갖 덕담을 마구 쏟아내셨고, 그러는 동안 접시에 담긴 각종 안주거리들이 끊임없이 테이블로 날라져왔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촌 형은 테이블에서 살짝 비켜 소파에 앉아 이따금씩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데, 술도 좋아하는 사촌 여동생은 대체 어디 있는 건지 보이지 않았다(물론 부엌에서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받아먹고 있던 안주들을 숙모를 도와 만들거나 나르고 있었다).


아무도 불편을 강요하지 않았다. 아마 내년 구정 연휴에도, 추석 연휴에도 아무도 큰삼촌이나 사촌 형이나 나 같은 남자들에게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불편함을 느낀다는 점에서 예전과 달랐다.


지난 추석 때, 삼촌들이 준비해놓은 회심의 양주를 마시다 말고 슬쩍 주방으로 향했다. 숙모들, 사촌 여동생들과 이런 저런 얘기도 하면서 어슬렁거리고 있자 "뭐 필요한 거 있냐"는 질문이 날아들었다. '아니 필요한 게 아니라 뭐라도 하고 싶어서...' 라는 속마음은 마음속에서만 맴돌고, 술자리와 주방을 자꾸 오가자 삼촌들로부터 '오늘은 술이 안 땡기냐'는 식의 핀잔만 들었다.


재작년부터 독립해 혼자 살면서 생존에 필요한 정도의 가사노동은 하고 있지만, 가족들을 위해 작은 요리라도 할 정도의 능력조차 없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학원에 다니면서 한식자격증이라도 따볼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끔 집에 갈 때라도 어머니가 가사노동을 최대한 덜 할 수 있도록 이런저런 일들을 먼저 하는 것, 가족이 모두 함께 하는 식사는 되도록 나가서 먹자고 제안(하고 사는 것)하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생전에 아버지께서도, 마지막엔 아마 이런 기분을 살짝 느끼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운 좋게 예민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불운하게도 불편함을 너무 늦게 느꼈고,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뒤늦게 들었음에도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던 그런 순간들. 어머니께 아버지와 이혼하시라고 말씀드리던 장남으로서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를 합리화해드릴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이제는 이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타격감 있게 때리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둔감한 남자들을 좀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것, 어떻게 하면 가능할지 많은 고민을 한다. 집에서는 역시 가사노동만한 게 없는 것 같은데('여성의 희생과 고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던 남성들의 평온함을 깨뜨려야 한다), 사회에선 어떻게 가능할까?


권김현영 선생님 북토크에서 질문.

"성차별적인 대화나 행동이 오고가는 회사 속 상황에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지 않고' '현명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이에 대한 권김 선생님의 답변.

"현명하게 대응하는 방법 같은 건 없어요."


이어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라고 권장했다. 적어도 같이 웃어주지 말고(나중에 그때 웃은 스스로가 너무 미워지므로), 대답해야 한다면 1초쯤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든가(잠시 정적이 흐를 때, 상대방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하는 식으로.


또 다른 질문.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페미니스트들이 '타협' 해야 되는 지점들이 있을 텐데, 그러면서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선생님의 대답은,

"타협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타협하고, 얘기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얘기하세요. 다만, 타협했을 때는 반드시 그 자리에서 즉각 '생색'을 내세요.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이 자리가 ~하기 때문에 특별히 이번엔 이 건에 대해 타협을 해준 것이다' 하는 얘기를 바로 바로 하세요. 얘기하지 않으면 알지 못합니다. 흔히 범하는 잘못 중 하나가 참고 참다보면 언젠가 보상이 오겠지, 하는 심리인데 그런 경우는 없어요. 아무리 참아도 어떤 보상도 오지 않기 때문에 갑자기 그런 분위기가 아닌 장면에서 더 크게 분노하게 되거나 잠수를 타는 등의 일이 발생합니다."


얘기 도중 '타격감'이라는 단어가 종종 언급되는 게 재밌었다. 예컨대 한 청중이 "제 주위에는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아예 페미니즘 자체에 관심이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들이 '그런 주제엔 관심이 없어' 하는 식의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론 페미니즘을 반대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 사람들을 '비페미니스트'라고 명명하면 어떨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선생님의 답변.


"글쎄요. 페미니즘에 관심 없다고 스스로 얘기하는 사람에게 '너는 비페미니스트'야, 라고 한들 그게 '타격감'이 있을까요? 차라리 '너는 적극적 방관자야' 라든가, '너는 침묵하는 성차별주의자야' 같은 얘기를 하는 게 훨씬 더 타격감이 좋을 것 같은데요."


불편함을 느끼게 하면서 타격감 있게 때리기. 어떻게 하면 가능할지, 어떤 방법들이 있을지 함께 이야기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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