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슬픈 드라마

feat. 바둑

인생의 첫 시점에 대한 기억이 뚜렷하다는 건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세상에 나와 첫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부터 겪었던 무수히 많은 경험들이 내 무의식 속에 잠재돼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내 삶의 첫 출발점만큼은 언제나 명확하다.


내 첫 번째 기억에서, 나는 원장 선생님과 마주보고 있다. 나는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상태였으므로 눈높이가 얼추 맞았던 것 같다.


"구구단 할 줄 모르죠? 바둑을 배우려면 구구단을 다 외워야 합니다. 아이가 구구단 떼면 그때 데려오세요."


당시 마천동에 있던 그 바둑학원 이름은 내 이름과 똑같은 '영재바둑교실'이었는데, 이건 누가봐도 완곡한 거절의 표시임이 분명했다. 원장님의 구구단론은 '애기를 학원에 데려와서 어쩌자는 겁니까, 여기가 보육원도 아니고' 하는 심정에서 나온 말 아니었을까.


헌데, 그날부터 특훈이 시작했다. 물론 내 인생의 두 번째 기억이다. '두리두리'라는 (지금은 누구에게 말해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서운한) 학습지의 교사셨던 어머니는 퇴근하고 오시면 가장 먼저 숙제검사를 하셨다. 어렸을 때 육상부도 하셨다는 어머니는 요즘도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해서 국토부로부터 메달이 발송될 정도로 스포츠광이신데, 아무튼 그때부터 스파르타식 교육을 지향하셨다. 숙제가 미비되거나 틀린 게 많으면 언제나 손바닥(추후 손등으로 업그레이드 된다)을 맞았다.


혼나는 게 무서워서 여차저차 공부에 매진하다보니, 머지 않아 구구단을 욀 수 있었다. 술자리 구구단 게임은 유도 아닌, 어머니의 구구단 테스트를 합격한 후 다시 바둑교실에 갔다.


원장님의 눈이 다시 휘둥그레졌다. 바둑판에 흑돌로 집 모양을 만들고 몇 집인지 세어보라고 했는데, 의도를 간파(?)한 내가 '가로 다섯, 세로 여섯 30집' 하는 식으로 3초 만에 답을 맞혔기 때문이다.


인생 첫 번째 중독 대상의 등장이랄까. 다섯 살짜리가 초등학생 형들과 부대끼며 심지어 바둑을 자꾸 이겨가는 상황(덕분에 바둑 지고 화난 형들한텐 괴롭힘 깨나 당했던 기억이 난다)이란, 그건 마치 내 앞길도 이미 정해진 게 아니냐고 운명이 손짓하는 형국 아닌가.


부모님의 의견은 극명하게 갈렸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서울에 있는 직장에 취직하면서 상경해 평생 '봉급쟁이' 삶을 사셨던 아버지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거, 그거 굉장한 행복이란다' 하며 지지했지만, 시쳇말로 '학교 때려치고' 바둑에 올인하는 그런 삶을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했다.


"영재 같은 애가 프로 안 되면, 누가 프로기사 됩니까?"


당시 나를 지도하셨던 프로 사범님의 한마디, 그리고 "그냥 학교 공부 할게요" 하곤 방에 가서 교과서를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어린 나의 콜라보가 통했는지, 결국 어머니도 항복을 선언했다.


그렇게 시작한 바둑도장 생활은, 처음엔 물론 좋았다. 심지어 '자율 공부'지만 실상 아무도 오는 사람이 없어 난방조차 틀지 않았던 구정 연휴 기간에도 홀로 도장에 나가 공부를 했다. 그때 그 상태를, 그야말로 자발적 '중독'이라는 단어 외에 다르게 설명할 수 있을까.


중독된 세계 안에 있을 땐 그 바깥 세상이 얼마나 추운지 체감하지 못한다. 초등학생이었던 나 또한 당연히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