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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vs 화이트

트레바리 씀-화이트 feat. 블랙

시간이 정말 빠르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살지만, 특히 이렇게 연말이 다가오면 그런 생각이 더욱 진하게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직을 하기 전에 어떤 선배가 잡지를 만들면 일년이 12개로 나뉜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점점 실감하고 있는 요즘. 12월호까지 출간되고 나니 아직 12월은 커녕 11월이 며칠 남았음에도 벌써 2019년이 다 지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젠 '신년호'를 준비하며 신년 특집에 쓸 거리를 찾아야 하니 내 시계는 이미 2020년에 맞춰지고 있는 것 같다.


굉장히 오래된 일처럼 느껴져서 찾아보니, 정말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씀-화이트 2018년 5-8 시즌 중 두 번째였던 6월 모임의 책이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이란 걸 발견하자 마자 독후감을 썼던 기억이 난다. 불과 몇 개월 전, 씀-블랙 2018 1-4 시즌에서 이 책을 제안하고 발제까지 했던 터라 같은 씀 클럽에서 읽는 곳이 또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씀-블랙과 씀-화이트는 하루 차이가 난다. 같은 주 토요일이 블랙, 일요일은 화이트. 이전 시즌 씀에서 합동 번개(백일장)도 했었고 심지어 책도 같이 출판했던 멤버들이라서 놀러가기 전부터 기대됐고 꽤나 설렜다.


피할 수 없는 놀러온 사람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씀-블랙에서 왔다는 말에 약간 술렁이던 그 코믹한 분위기. "블랙에서 쳐들어왔다"며 격하게 반겨주던 그 첫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씀-블랙은 멤버들 간의 합이 정말 잘 맞았는데, 그 때문인지 씀토크가 치열하기 이를 데 없었다(제 글을 가루가 되도록 비판해주세요, 하는 사람들이 넘쳤고 진짜로 가루로 만드려는 사람도 넘쳤다). 반면 화이트는 훨씬 더 몽글몽글(?)한 분위기였달까.


즐거웠던 그 모임이 끝나고 헤어지며 '또 놀러오겠다'고 했는데 그게 1년 6개월이나 걸리는 약속일지 그때는 몰랐다(요즘 놀러가기 실패의 망령이 붙었는지 자꾸 패점이 늘어만 가는데... 이번에도 실패하면ㅠㅠ). '씀'을 하고 싶어서 트레바리에 왔고 '아마 나는 앞으로도 계속 씀 클럽만 할 것 같아' 라고 생각하며 트레바리에서의 첫 1년을 보냈지만 지금은 뜻밖에도 다른 클럽에 소속돼 있다. 하지만 역시 '씀'에 대한 그리움은 늘 남아 있었다. 트레바리에서 씀은 내겐 마치 고향 같은 곳이니까.


그러던 중 마침 책이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선정된 걸 보자 독후감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김초엽 작가의 글은 정세랑 작가의 몇몇 책과 함께 소위 '장르 문학' 'SF 소설'로 분류되지만 실상 본질을 들여다보면 인간에 대해 여느 정통 문학 못지않게 깊게 탐구하고 있는 작품들이란 걸 느낄 수 있다. SF적 요소로 포장돼 있지만 실은 누구보다 더 '지금, 여기'에 대해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한동안 400자 독후감만 쓰다가 오랜만에 1000자를 쓰고 있다. 딱 정확하게 1000자로 끝맺는 독후감을 써봐야겠다는 게 사실 당초 계획(이었으나 벌써 1115자...)인데 역시 이런 게 쉽게 될 리 만무. 사실 처음 씀 클럽을 할 때만 해도 글을 쓰는 쪽에 더 관심이 많았고 향상심 같은 것도 충만했는데, 이젠 글을 직접 쓰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 게 훨씬 더 좋다. 특히 씀 클럽을 하시는 분들은 어쩜 그렇게 모두가 다 글을 잘 쓰시는 건지... 나 같이 글쓰는 데 재능이 없는 사람으로선 그저 부러운 마음으로 감탄하며 읽을 수밖에.


P.S. 씀 클럽 통틀어서 최장수 파트너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예상되는 기웅님, 독후감만큼이나 놀랍도록 멋진 그림을 보여주신 게 아직까지도 인상깊게 남아 있는 형준님 이번 모임에서 뵐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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