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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피로 쓰시나요?

feat.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대학 신입생 시절, 처음으로 가입한 동아리 이름은 <200 books club>이었다. 1년은 심플하게(한 달을 4주로) 보면 48주, 대략 따져보면 52주쯤 된다고 하는데 그 중간을 취하면 딱 50주다. 매주 1권의 책을 읽으면 대학 4년 동안 도합 200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아니 꼭 그렇게 읽자는 클럽이 바로 '200북스'였다.




이름부터(정확히는 취지가) 살벌한 이 동아리에서 4년 내내 구르다보니 평생 읽지 않았을 법한 책들을 읽게 됐고 영원히 만날 수 없을지도 몰랐던 수많은 사상가와 만났다(물론 그렇다고 정말 200권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ㅋㅋ). 그중, 내 대학 시절을 쥐고 흔들었던 단 한 명을 꼽으라면 그건 단연 프리드리히 니체였다.




니체 때문에 고전문헌학이란 대체 뭔지 검색해봤을 정도로, 대학 때 끄적인 소설에서 주인공과 동거하는 고양이의 이름을 '체니'라고 지어줬을 정도로 니체의 팬이 됐다. 특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문학적 재능까지 회자되고 있는 작품이자 니체 저서 중 나의 최애 도서. 이쯤되면 독후감을 쓰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게 된다(진진 클럽에선 몇 번 기회가 있었을 듯 싶기도 한데 거긴 왠지 무섭고... 여긴 어떤 분위기인가요?ㅎㅎ).




차라투스트라의 전언을 통틀어서 가장 감명 깊었던, 한때는 신조였고 지금도 내용을 암송할 수 있는 그 대목은 바로 '읽기와 쓰기' 단락에서 등장한다.




"일체의 저서 중에서 나는 다만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써 써라! 그러면 그대는 깨달을 것이다. 피, 그것은 즉 정신이기 때문이다.


남의 피를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독서하는 데 있어 게으른 자를 증오한다."




분명 한글임에도 한 문장 한 문장씩 '독해'를 하며 읽어야 하는 책들을 붙잡고 밤낮 사투를 벌이고 있던 대학생 나에게 니체의 저 문장은 너무나 큰 울림이었고, 그대로 머릿속에 문신처럼 새겨졌다.




육체에 대한 긍정, 쾌락에 대한 긍정은 바야흐로 '신은 죽었다'는 선언으로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로 오해하는 것과 달리) 이것은 '정언명령'으로 대표되는 칸트 철학, 칸트 학파가 독점하던 독일 철학사를 뿌리째 흔든 혁명이자 현대 철학사의 물줄기마저 돌린 일대 사건이 됐다.




그럼에도 왜, 대체 왜 '생을 긍정한 철학자'라던 니체는 그런 식으로 생을 마감했을까. 그건 어느 순간부터 내겐 너무나 큰 모순으로 다가왔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지고 알면 알수록 더 수렁에 빠지는 것 같던 그 시간들. 거기서 날 구원한 건 뜻밖에도 앎이 아니라 일이었다.




대학을 채 졸업하기도 전에 운 좋게 취직을 하게 되면서 '팔리는 글'을 쓸 수밖에 없게 되자 기존의 고민들은 단 한 순간에 물거품처럼 허공으로 산화해버렸다.




'글도 하나의 상품이다' '팔리지 않는 글(독자에게 읽히지 않는 글)은 무가치하다'는 새로운 잠언들 앞에서 기존의 내 글들은 너무나 무기력했다.




사람들은 아무도 니체의 글 따윈 읽지 않았고 극단적인 영역에선 '인스턴트 서적'이라고까지 평가절하 하는 장르의 책들을 읽고 공론화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목소리는 니체의 피로 쓰인 글이 아니라 현실에 두 발을 단단히 고정한 채 경험으로 쓰인 쉽게 읽히는 글이었다.




괴리감 속에 혼란을 겪던 나의 전쟁은 의외로 싱겁게 끝나버렸다. 시쳇말로 영혼을 갈아넣어 일해야 했던 첫 직장 생활이 배부른 고민을 할 시간조차 몽땅 앗아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속에서 니체를 떠나보낸 게 근 10년에 다다르던 때, 다시 이 책을 읽는 분들을 발견했다.




니체와의 만남은 어떠셨는지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는 밤이다.




P.S. 니체 선생님, 그곳에서도 여전히 피로 쓰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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