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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 벗고 공감 입기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과연 한국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2019년 현재를 기준으로, 지구에서 가장 선입견이 강한 민족이 모여 사는 한국에서 그것은 아마 거의 불가능해보인다.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종전 후 '빨갱이'라는 단어만큼이나 이분법적으로 낙인찍혔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야. 하지만 여성을 혐오하지 않고 성별로 인한 차별에 반대해." "응. 그게 페미니스트야." "아니, 난 페미니스트는 아니야" "......" 이런 식의 대화를 한 번쯤 해보거나 들어본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먼저 단어를 정의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내한했던 나이지리아의 소설가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의 강연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아디치에의 과거 발언(이 내용은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중 이런 얘기가 있었다.


"그는 내게 사람들이 내 소설을 두고 페미니즘적이라고 수군거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충고하기를 나더러 절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란 남편을 얻지 못해서 불행한 여자를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행복한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이지리아 여성인 웬 학자가 나더러 페미니즘은 나이지리아 문화가 아닌 비아프리카적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략) 나는 이제 스스로를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친한 친구 하나가 나더러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것은 남자를 미워한다는 뜻이라고 말해주더군요. 그래서 나는 이제 스스로를 '남자를 미워하지 않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더 나중에는 '남자를 미워하지 않으며 남자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 립글로스를 바르고 하이힐을 즐겨 신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대체로 농담이었지만, 이것만 보아도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함의가 깔려 있는가, 그것도 부정적인 함의가 깔려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싫어하고 브래지어도 싫어하고 아프리카 문화를 싫어하고 늘 여자가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화장을 하지 않고 늘 화가 나 있고 유머감각도 없다는 거지요."(아디치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태도에 관하여'라는 에세이로 유명한 임경선 작가는 최근 뮤지선 요조와 함께 출간 한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라는 일종의 교환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페미니즘이란 공정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필연적인 저항이다.'


'82년생 김지영' 같은 순하디 순한 영화마저도 개봉하기 전부터 별점 테러를 받는 현상(물론 그 덕분에 기대 이상의 흥행을 했지만)을 보고 있으면, 영화와 책을 모두 본 적도 없는 남자 선후배들이 '그 영화 괜히 여친(혹은 아내)이랑 보지 마라. 싸우고 헤어진다'며 낄낄 대는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서글픈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우리 모두 선입견을 잠시 내려놓고 편견 없는 마음으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현대 사회에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힘은 여성보단 남성에게 훨씬 더 필요하다. 반면 여성은 페미니즘이라는 주제,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가는 일과 관련해선 과도한 공감과 몰입보단 스스로를 조금 더 돌보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 또한 간략하게 정의하면 사회적으로 규정된 페미니스트의 모습과 여성 개개인의 내면적 욕구 혹은 여러 가지 관점들이 상충될 때의 대응법이라고 볼 수 있다.


뮤지션 요조는 한 강연에서 '나쁜 페미니스트'를 들고 나와 이렇게 말했다. "노래 가사 중에 여성 혐오적인 내용이 포함된 노래가 있는데 예전부터 좋아하던 노래라 흥얼흥얼 따라부르기도 하고 지금도 가끔 들어요. 그런데 이제는 이런 노래를 들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일종의 모순이죠. 록산 게이의 이 책은 우리가 완벽한 페미니스트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나쁜' 페미니스트여도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보다는 더 나은 거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저 역시 나쁜 페미니스트가 될 거예요. 저자의 생각이 너무 제 마음과 비슷해서 이 책도 술술 읽었어요."


앞서 언급한 아디치에는 한국에서 했던 강연에서 탈코르셋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한국 여성의 탈코르셋 운동을 보면서 저는 그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저 역시 지지합니다. 음 그런데 SNS에서 올라온 어떤 인증샷 중엔 제가 정말 탐내는 색깔의 립글로스가 있더라고요. '저거 버릴 거면 나 주지' 하는 생각에 솔직히 조금 아까운 기분도 들었어요(청중 웃음).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여성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탈코르셋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둘 모두를 지지하지만, 탈코르셋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넌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니야'라고 말해선 안 됩니다. 페미니즘은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불안과 외로움이 모든 인간의 디폴트값으로 장착돼 있는 현대 사회에서, 스스로를 돌보기도 버거운 현실에서 잠시 눈을 떼 타인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일은 너무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우리들의 작은 시도들이 세상을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낫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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