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이테

feat. 호밀밭의 파수꾼


그건 마치 이제 막 42.195km 장도에 오른 러너가 '나는 이 레이스를 완주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것 같은 일이었다. 결승점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걸 미리 알고 있는 상태로 마라톤에 참가하는 러너는 어떤 기분일까.




굳이 변명을 하자면, 종목이 살짝 달랐다. 처음엔 100m 달리기인 줄 알고 뛰어들었는데 알고 봤더니 42km짜리 마라톤이었던 거다. 이건 비유적인 표현이면서 동시에 실질적인 사실이기도 했다. 각자 1시간 30분이나 주는 생각시간은 그땐 분명 너무 괴롭고 좀이 쑤실만큼 긴 시간이었으니까.




프로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게된 후(어쩌면 스스로 포기한 후), 인생에서 낙제점을 맞은 것 같은 기분으로 약 2년의 시간을 보냈다. 5개 과목 중 그래도 영어는 낙제하지 않은 콜필드가 오히려 부러울만큼 총체적 낙제였다. 딱 하나에서 낙제했지만 그 하나가 당시 인생의 전부였으므로.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말은 때때로 매우 적절한 말인데, 문제는 그 당시에 실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단 눈 앞에서 문이 쾅 하고 닫히고 나면 닫힌 문 앞에서 주저앉고 좌절하기 십상이다. 시야를 넓게 해서 다른 문이 어딘가에서 열렸는지 확인하기까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통상 꽤 긴 시간이 걸린다.




정도와 시간의 차이만 있을뿐 누구나 (이유 없는) 반항 혹은 방황하는 시기가 있지 않을까. 그 시기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좌충우돌 하는 사람도 있고 두문불출 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지나고 나면 이 방황의 시기를 어떻게 지나왔는지가 마치 나이테처럼 그 사람의 삶에 새겨지는 것 같다. 그건 상처이면서 동시에 추억이고 자양분이면서 트라우마이기도 하니까. 내 나이테는 어떻게 새겨졌을지, 다른 분들은 어떤 나이테를 갖고 계실지 궁금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선입견 벗고 공감 입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