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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 거스르기

인종차별공화국 대한민국

여경, 여배우, 여기자 등등 접두사 '여女'가 붙는 건 선입견의 표출이다. 선입견은 편견으로 이어진다. 둘은 인간의 본능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기 때문이다.


일부러 화제 삼지 않는 건지 아니면 모두가 다 알고 있어서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엄청난 인종차별국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식의 속담이 마치 대단한 진리라도 되는 양 여전히 소비된다. 다름을 참지 못하는 문화가 만연하다. 타인을 어떻게든 규정지어야 하는 강박도 심하다.


이건 혹시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것도 아주 오래 전 태초 인류의 본능, 인간적이기보다 오히려 동물적인 본능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선입견은 대체로 부정적으로 쓰이는데, 야생적인 관점에선 생존에 특화된 매우 우수한 기능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는 밀림이 아니라 문명화된 도시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는 이제부터 본능을 한 번 거슬러 볼 필요가 있다.


규정짓기는 대체로 나쁘다. 뭔가를 규정하면 필연적으로 비교적 좋은 쪽과 나쁜 쪽이 갈리기 때문이다.


책 제목과 같은 '여경'이 명백한 규정짓기에 해당한다. 남경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경찰이라는 일반명사엔 이미 남성성이라는 선입견이 입혀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취객 난동 같은 소요사태가 일어났을 때의 반응 또한 마찬가지다. '남경'이라 할지라도 빠른 제압이 어려운(경찰의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주취난동의 경우 상대가 다칠까봐 걱정돼 대응이 쉽지 않다는 게 일관된 반응이다) 상황임에도 여경이라는 선입견에 편견까지 더해지면서 본질과 다른 쪽으로 사고가 작동한다.


이제 우리는 변화 혹은 일종의 진화가 필요한 시기에 직면했다(니체라면 '초인'이라는 단어를 썼을 것 같다). 본능적으로 선입견을 갖도록 설계된 우리 자신과 먼저 싸워야 한다. 자기합리화는 쉽고 편하지만, 이젠 질문을 던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말 그런지. 내 생각이 선입견과 편견에 오염된 판단은 아닌지 늘 의심하고 돌아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어려운 건 이 과정이 스스로에게 별다른 유익을 가져다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본능을 거스르려는 치열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이 세상을 한 뼘이라도 더 살만하게 만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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