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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Apr 08. 2021

글쟁이는 영혼으로 일을 하잖아요

셋, 책일기

꿈속에서 몸이 두둥실 떠올랐어요. 하늘 높이 오르더니 어느새 새카만 우주에 닿았어요. 그러다가 자그마한 어느 행성에 살짝 걸터앉았는데, 그 순간 달처럼 노랗게 불이 들어오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니 행성이 의자만큼이나 작았네요?) 편안하게 앉아서 새카만 어둠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 이제야 눈이 좀 편하다.'      


잠들기 직전에 <<잃어버린 영혼>>의 표지를 봤어요. 그래서 그런 꿈을 꾼 것 같아요. 몸이 너무 바쁘면 영혼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몸을 놓치고 하늘로 두둥실 떠오른다고, 책에서 이야기하거든요.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을 아주 많이, 빨리하는 사람이었지요. 영혼은 어딘가 멀리 두고 온 지 오래였습니다. 오히려 잘 살 수 있었습니다. (...) 다만 가끔 주위가 이상할 정도로 평평한  듯한 기분이 들기는 했습니다. 마치 수학 공책의 가지런한 모눈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사실 저는 요즘 정말로 바빴어요. <<누런 벽지>>를 출간한 이후로 제가 쓰는 글이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한 장 분량을 쓰기 위해 수십 장을 끄적여야만 하는 날들이 쌓여만 갔어요.

뭐든 억지로 하면 몸이 더 피곤한 거, 여러분도 아시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진도는 나가지 않아서, 일정이나 일과를 까먹고 놓칠 때도 생기고요. 작업의 속도가 더디니 죄책감이 들어서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는 상태가 되어서야 겨우 잠들곤 했어요. ‘혼자 일하고자 하는 이를 위한 십계명’과 아주 반대되는 삶이죠?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큰 혼란이 벌어져요. 영혼은 머리를 잃고, 사람은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거죠. 영혼들은 그래도 자기가 주인을 잃었다는 걸 알지만, 사람들은 보통 영혼을 잃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는 몸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혼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요. 그래서 영혼의 속도가 따라오지 못하면 작업이 멈춰버리고 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원래는 약간은 숭고하고 이타적인 ‘작업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더 빨리, 더 많이, 최대한 효율적으로’가 저의 지향점이 되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어요. 그러니까 글이 잘 써지지 않는 이유는 어떤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 때문이 아닐 거예요. 그저 영혼이 몸을 따라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때가 왔을 뿐인 거죠.       


여러분께 고백하자면, 저는 영감의 신봉자랍니다. 책을 만들 때도, 글을 쓸 때도, 커다란 얼기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으면 시작하기가 두려워져요. 기계적으로 글을 쓰다 보니 영감에 대한 어느 부분이 마비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영혼을 잃은 것처럼요.     


느슨한 연결감


인맥이 아닌 우정, 그 느슨한 연결감 속에서 우리는 영감을 얻기도 하고 생각이 환기되기도 한다고, 팅팅 님이 이야기하셨죠. ‘느슨한 연결감’이라는 표현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발음해 보았었는데, 오늘 새삼 그 말이 마음속에서 어떠한 명확한 실체를 가지고 피어나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오늘도 이렇게 또, 여러분과의 활동을 통하여 마음을 병들게 하던 과도한 물욕과 명예욕을 잡아내고 회복하였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영혼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세상의 가치만을 바라보며 일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열심을 들일 때에도. 바쁜 일정 속에서도. 언제나 지혜를 구해야 하는 모양이에요. 홀로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발맞춰 가야 하니까요! 어쩐지 제 안의 작은 영혼과 진하게 포옹하고 싶어 지는, 그런 날이네요.      


오늘도 흐름은 중구난방인 것 같지만, 참 오랜만에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문단을 적어 내려갑니다. 팅팅 님의 응원 메시지를 인용하며 마칠게요.


혼자, 또 같이. 인생을 지혜롭게 잘 헤쳐나가 보아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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