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지 Apr 15. 2021

빈말과 비난, 아집과 신념 사이에서.

셋, 책일기

안녕하세요, 친구들.     


우리 결과에 목메지 말아요, 라는 리밍 님의 친절한 위로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요 며칠 조금 힘들었거든요. 혼자서 큰일을 벌려놓긴 했는데,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수습이 가능할지, 확신이 흐려지는 거예요. 결국, 최대한 빨리 큰 결과물을 얻고 싶다는 욕심이었겠지요?


현실이 이토록 막막하게 느껴질 때면 자꾸 도피처를 찾아요. 예전에는 나를 잊기 위해 여행을 떠나곤 했어요. 아무도 나를 모르는 도시에 가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어 ‘차영지’의 문제를 잊을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책임질 것들이 늘어나고 그게 쉽지 않게 되면서, 이제는 소설을 읽으며 도피를 꾀하는 것 같아요. ‘차영지’가 사라진 세상으로 들어가 안식하는 거죠. 어젯밤부터 잠도 안 자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웹소설을 몇 개나 읽었는지.... 


정신을 깨우고 현실로 돌이키기 위해서 페터 한트케의 <<관객모독>>을 다시 집어 들었어요. 


연극의 현실은 순수한 현실일 수 없습니다. 연극은 의미를 암시했습니다. 시간이 연극에서 제거되는 대신 비현실적인 가상의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가상의 시간과 함께 가상의 현실이 진행되었습니다. 실제 현실은 그곳에 없었고, 단지 여러분에게 암시되고 그저 연기될 뿐이었습니다. (...) 그러나 시간은 재생될 수 없습니다.  


현실이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비현실 속에 빠져들면 불안을 잊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가라는 신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세상이기 때문일까요. 그 작은 세계의 목적과 방향성이 분명하게 그려지기 때문일까요. 불안한 현실의 결핍이 충족되기 때문일까요.


빈말과 비난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어요. 좋은 말을 들으면 빈말이 아닐까 진의를 의심하고, 비난을 들으면 질투가 분명하다 노하며 비생산적인 감정 소모를 해요. 이건 아마,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조건 빈말을 늘어놓고, 자격지심을 누르기 위해 무조건 비난을 하던 과거의 습관이 남긴 부작용일 거예요. 변명을 하자면, 세상을 경험하기도 전이 자기 개발서를 읽었고, 사람과 부딪혀보기도 전에 처세술을 익혔거든요. 


우리가 여러분에게 욕설을 하게 되면, 여러분은 우리가 한 말을 그냥 흘려듣지는 못하고 주의 깊게 경청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우리 사이 거리는 더 이상 멀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 여러분은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사전에 주의를 받았으니까, 욕설을 들어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빈말과 비난을 자제하면서 세련되게 진심을 다하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제 생각에, 빈말은 사람을 거짓 속에 가두고 교만이라는 칼을 손에 쥐여 주는 것 같아요. 방심한다면 기껍게 웃으며 그 칼을 들어 자신을 구원할 유일한 동아줄을 제 손으로 베어버리게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비난은 사람의 사지를 옴짝달싹할 수 없게 묶어서는 끝없는 어둠 속에 던져버리는 것 같고요.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스스로 무덤에서 일어나지 못하도록 말이에요. 


우리가 여러분에게 말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신을 의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말을 걸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어려움에도 저는 가상의 세계로 숨어들고 말아요. 그래서 언제나 두려워요. 들어야 하는 말은 흘려버리고, 듣기 좋은 빈말만 주워 담는 것은 아닐까. 진실을 바라보기가 두려워서, 거짓들을 차곡차곡 쌓아 나만의 모래성을 다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걱정을 해요. 마치 다른 이들이 주인공을 맡은 연극을 전전하면서, 나 자신이 사라질 시간만을 고대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휴대폰을 겨우겨우 내려놓고 현실을 마주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네요. 오늘도 카카오 페이지에 돈을 얼마나 썼는지. 다행히도 친구들에게 일기를 쓰는 것은 즐거운 작업이라서,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하군요. 아마도 호르몬 때문일 게 분명해요. 이 또한 지나가겠죠?     


나약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오늘도 스스로 최면을 걸며,

영지 드림.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