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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Jun 10. 2020

우리에게는 친구도, '전우'도 필요하다

우리는 꿈에 대한 희로애락을 나누고, 함께 전진한다.

학창 시절을 곱씹어보면, 나에게 '친구'는 등하굣길을 함께하는 누군가 그 이상이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모두 나누고, 학교 숙제부터 시작하여 가정사에,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가십거리까지. 학창 시절 친구들은 나와 같은 교실을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 나와 학교 그 이상의 것들을 공유하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이양과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병을 앓고 계셨다는 것, 하지만 그녀는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는 것, 그리고 되려 아버지의 투병 때문에 고생하는 어머니에 대한 그녀의 연민.  햇수로 10년째 보고, 일주일에 최소 네 번은 연락을 주고받는 그녀의 얘기들은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그녀와 나름 친하다고 자부했던 나인데, 그런 자부심이 괜스레 부끄러워지는 듯했다.


그런데 문득, 나 역시 그녀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꽤나 오래 만난 나의 연인에 관해서 알고 있냐 조심스레 묻자, 그녀는 '짐작하긴 했었는데 자세히는 몰랐다.'라고 답했고, 내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냐 묻자, '나도 얘기 안 했는데 네가 얘기할 거라는 기대는 안 했다.'라고 했다.

이에 내가 멋쩍게 웃으며, '우리 별로 안 친한가 봐'라고 하니 그녀의 답변이 가관이었다.

음. 우리는 전우지, 전우.




전우라.  전우의 사전적 정의는 말 그대로 '전쟁터에서 같이 싸우는 동료'다.

사실 이양과는 같은 꿈을 꾸고, 같이 입시를 준비하고, 같이 대학생활을 힘겹게(?) 보냈으며, 험난한 사회 초년 생활과 이직에 퇴사를 반복하는 나날을 공유하고 있다. 그녀 역시 나처럼 프리랜서로, 요즘 그녀와 나의 생활 역시 비슷하다.  '전우'라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곱씹어보니, 거참 우리 - '꿈과 일'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는 많은 것들을 공유하며 같이 이겨내 가는 데 그 외에 것들은 서로 참 모르더라.  그녀 말이 맞았다. 우리는 전우 었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애환을 공유한다.

사실 내가 이양의 가족들에 대해 몰랐고, 그녀가 나의 일부에 대해 몰랐다고 해서 그녀와 관계가 어색하거나 어려운 것은 절대 아니었고, 지금도 절대 아니다.  


우리는 서로가 경험한 진상 클라이언트에 대해 혀를 끌끌 차며 대신 욕해주기도 하고, 서로의 작업에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일을 하다가 만난 어이없던 상황에는 서로 헛웃음 지으며 재미난 에피소드로 둔갑시킨다.  가끔 감수성이 넘치는 자리에서는 서로가 바라는 조금 더 나은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씁쓸한 마음으로 아직 그러지 못한 스스로를 비꼬기도 한다.  

이렇게 학창 시절부터 같은 꿈을 꾸고,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나와 그녀는 - 우리의 '꿈'에 대한 희로애락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 짧은 공감 과정을 통해 1cm 정도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충전한다.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말이다.


우리는 '꿈'에 대한 희로애락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 짧은 공감 과정을 통해 1cm 정도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충전한다.


하루는 내가 무례한 클라이언트 때문에 지하철에서 펑펑 운 적이 있었다.  클라이언트에게 화나 기보 다도,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하는 내게, 그리고 너무나 아득이 먼 것 같은 내 꿈에 대해 서러운 날이었다.  어디라도 분출하고 싶은 마음에 이양에게 자책하는 메시지를 보내자, 그녀는 담담히 내 탓이 아님을, 클라이언트가 무례하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아주 잘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그렇게 30여분의 대화가 끝날 즈음에는 나는 더 이상 울고 있지 않았고, 되려 조금은 당당해진 마음으로 지하철에서 내릴 수 있었다.  이렇게 스트레스로 방전된 나의 자존감은 내 소중한 전우들로 인해 재충전된다.



우리는 소중한 전우들 덕에 앞으로 1cm 전진할 힘을 충전한다.





오늘도 우리는, 서로를 응원한다.

전우는 비단 애환만 나누는 존재는 아니다.  내 주변에는 나와 매우 다른 꿈을 꾸지만,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고충들은, 사실 들어도 잘 이해가 안 되는 경우도 많고 그들 역시 나의 고충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한발 한발 내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을 때가 있다.  몇 달 동안 연락을 못 지내다가 오랜만에 받은 그들의 연락에, 그들이 어떤 크고 작은 한 걸음을 내딛는지 듣는 순간은 - 내가 마치 그것을 이룬 것 같은 깊은 쾌감을 준다.



서로의 열렬한 관람객이 되어준다.


이전 회사 동료이자 학교 선배인 나 양이 있다. 그녀는 그녀만의 작은 요가원을 꿈꾼다. 그녀의 꿈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먼, 나중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주말 휴일을 반납하고 수련을 하고, 퇴근 후에 클래스를 운영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하나씩 쌓는 과정을 보며, 괜스레 나도 힘을 얻곤 했다. 그리고 그녀가 그러한 작은 업적들을 이룰 때마다, 그녀 못지않게 나 역시 긍정적인 에너지로 두근거렸다.  


그리고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미약하지만 작은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그녀는 진심으로 나를 축하해주었다.  이렇게 우리는 비슷하지만 다른 길을 걸으면서, 서로의 관람객이 되어준다. 그것도 매우 긍정적이고 열혈 한 관람객.



이렇게 우리는 비슷하지만 다른 길을 걸으면서, 서로의 관람객이 되어준다.
그것도 매우 긍정적이고 열렬한 관람객.










우리의 하루가, 혹은 나날이 전쟁터처럼 팍팍하고 그 끝이 가늠 가지 않을 때 - 우리는 전우가 필요하다.  각자의 꿈을 응원해주고, 우리 눈에 눈물 맺히게끔 하는 누군가에게는 같이 쌍욕을 해줄 - 그런 전우가 필요하다.


그래야, 어느 날 그 길이 끝나 비로소 아주 활짝 웃음 지을 때 - 즐겁고 희망찬 이야기로 밤을 새우고 다시 그다음 길로 향할 원동력이 생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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