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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Jul 26. 2020

어느 편집자와의 대화

간직하고 싶은 그런 말들이 있다.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말들이 있다.

이 말들은 매체를 가리지 않는다. 책을 읽다가 만난 좋은 구절은 아무 공책에 일단 써 둔다. 문자로 주고받은 대화에 코 끝이 찡해올 때면, 어김없이 화면을 캡처 해 둔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이메일이 그랬다. 업무로 주고받은 메일이었는데 오래 간직하고 싶은 그런 것이 된 것이다. 아주 중요한 문서들 에만 붙는 ‘중요’ 별표가 이 메일에 붙는다.  계약서나 카드 청구서 등과 나란히 중요 문서함에 영구히 저장되는 것이다.




몇 주 전으로 돌아간다. 최근에 마무리한 원고를 여러 출판사에 투고하던 중이었다. 공들여 작성한 기획서와 원고에 러브레터 마냥 수줍고 간절한 편지를 덧붙었다. ‘내 책 좀 출판해주세요!’ 하고.  ‘전송 버튼’을 눌러 이메일을 보내고 나면, 더욱 떨리는 순간이 찾아왔다. 정말 고백이라도 한 것 마냥, 답변이 그렇게 기다려진다. 차라리 거절 메일이면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 떨리는 심정을 알아주는 것은 ‘원고가 접수되었다’는 자동 답변 메일뿐, 소식 없는 메일 함은 애석하기만 하더라.

그렇게 한 두 주가 지나니, 하나 둘 답장을 보내왔다. 대부분 거절 메일이었지만, 오히려 공손하고 솔직한 얘기들에 실망감은 없었다.  연이어 이어진 거절 메일에 떨림은 담담한..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다시 마음을 콩닥콩닥하게 하는 메일을 한 부 받았다.


[일전에 저희 출판사로 보내주신 투고 원고를 검토하였습니다.

작가님과 원고나 출간 방향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서 이렇게 연락을 드립니다.]


출간을 하고 싶다는 내용의 메일은 단연코 아니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글을 썼는지 보고 싶다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메일 알림이 오자마자 들뜬 마음으로 읽었지만, 답변만큼은 그 마음을 숨겼다. 연애편지 마냥 조금 시간을 두고 담담하게 답장했다. 미팅은 언제 하면 좋을지, 그리고 답변 줘서 감사하다고. 물론 그렇게 뜸 들인 시간은 채 삼십 분도 안되었지만.




그렇게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흘러 메일을  쓴 편집자를 만나게 되었다. 연남동의 카페에서 그를 기다리며, 그의 모습을 참 다양하게 상상해보았다.  이름을 보아하니 여성분 같은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안나 윈투어처럼 카리스마 있는 여성 편집자일까. 아니면 친근한 언니 같은 편집자 분이 아닐까.  글을 담는 일에 대한 나의 로망만큼이나 편집자 분에 대한 상상은 마음대로 나래를 펼친다.


그리고 곧 그녀가 도착했다. 하지만 상상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내 또래의 젊은 편집자 었다. 동그란 안경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쇼트커트를 한 젊은 편집자. 친구랑 너무 닮아 깜짝 놀란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어 가방에서 출력된 원고 대신 아이패드를 꺼내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


짧은 인사가 오가고, 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편집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마추어 글쟁이와 베테랑 편집자들의 대화는 언제나 같은 흐름으로 흘러갔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내 글의 장점을 얘기해주었고, 그들이 생각하는 글의 방향도 덧붙여 이야기해주었다. 모든 것이 생소한 초보 글쟁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바쁘다.  

그런데 이 젊은 편집자와의 대화는 조금 달랐다.



“음.. 아 제가 미팅 경험이 많이 없어서..”



아이패드에서 내 기획서를 분주히 찾는 손만큼이나, 그녀의 목소리도 떨렸던 것 같다. 되려 괜찮다고 내가 이야기하고, 정적 속에서 그녀의 말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는 수첩을 펼쳐, 나를 만나기 전에 써놓은 듯한 질문들을 하나하나 물어보았다.

나의 직업은 무엇인지. 이 생활은 얼마나 했는지. 원고는 어떤 계기로 썼는지.


간단한 질문들이었지만, 그녀가 긴장한 만큼 나도 진지하게 대답에 임했다. 마치 면접을 보는 것처럼 딱딱한 답변이 이어졌고, 질문과 질문 사이의 정적에는 그녀의 한마디가 꼭 하나씩 덧붙여졌다.


“아, 죄송해요. 제가 미팅 경험이 진짜 별로 없어서..”


그때부터 갑자기 차라리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더라. 그녀가 프리랜서 생활에 대해 묻자, 어떤 업체 욕을 시원하게 하기도 하고 국가에서 하는 여러 지원 프로그램을 응원한다는 얘기도 한 것 같다. 사는 곳이 근처인지 묻는 질문에는, 내가 얼마나 홍대 근처에서 살았는지. 이 동네를 왜 죽어도 못 떠나겠는지 까지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그렇게 원고보다는 아무렇게 사는 나의 이야기가 주가 될 즘에, 그녀가 내 원고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먼저 자신의 나이를 밝혔다. 어려 보이는 외모에 짐작은 했지만, 정말로 그녀는 나보다 딱 한 살 많은 또래 친구 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기에 더 내 글이 와 닿았다고 했다.  어떤 글에서는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고도 했다. 그래서 그녀는 독자의 마음으로 내 글을 편집하고 싶다고 했다.  담담히 이어지는 그녀의 평은 내 원고를 그럴싸한 말들로 포장하지 않았다. 다만 진심 어린 공감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그녀의 짧은 평에 이어, 내 글을 주제로 한 사소한 대화들이 이어졌다.  때로는 글에 쓰지 않았지만, 인상 깊었던 일화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녀는 ‘글로 써지면 재밌겠다’며 맞장구 쳐주었다. 발레에 대한 글이 좋았다는 그녀의 말에, 사실 내가 발레를 그렇게 자주 가지는 않는 다고 고백도 했다.  조금 더 일상의 글들을 담았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의견에는, 내가 보기보다 비장한(?) 사람이라 가벼운 글이 힘들다며 농담으로 받아쳤다.

그렇게 한 시간이 조금 넘게 흘렀을까. 출간 일정 같은 형식적인 대화가 흘러간 후에야 우리의 미팅은 끝났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아마추어 글쟁이와, 미팅이 처음인 편집자가 되어 어색한 인사를 마치고 헤어졌다.


하지만 결국 그녀에게는 출간 거절 메일을 하게 되었다. 그녀와의 미팅이 부족하다고 느꼈거나, 그녀가 내 원고를 바라본 시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말 주변이 없을지라도,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들은 여느 편집자의 시선보다 정확했다.  다만, 먼저 작업을 같이 해보고 싶은 편집자 분이 계셨다.  내가 먼저 두들인 요청의 끝은, 나의 과분한 거절이었다.  그녀와의 미팅이 인상 깊었던 탓일까. 아니면 비슷한 처지에서 서로의 마음을 조금은 엿본 탓일까. 그녀에게 보내는 거절 메일은 그토록 조심스러웠다.  그녀가 나에게 출간 의사를 묻는 메일을 받고 일주일 후에나 답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메일을 보낸 오후, 나는 아까 얘기한 ‘간직하고 싶은’ 메일을 받았다. 아니 선물 받았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메일의 시작은 축하의 말로 시작되었다. 출간 계약을 해서 축하하다는 말, 작업을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는 말. 그리고 첫 책을 응원한다는 말.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문단이 내 마음을 지겹게 울렸다.


‘글을 꼭 꾸준히 쓰시기 바라요.

글도 계속 써야 늘고, 그래야 작가로서 쭉 살아갈 수 있는데 많은 작가분들이 첫 책을 내고 나면 출간 과정의 피로함에 글을 쓰지 않게 되더라고요.

제가 너무 간섭하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언젠가는 함께 작업하고 싶은 작가님들을 보면 자꾸 이렇게 매달리게 되고, 계속 집필을 해주었으면 좋겠고 그러네요.

그래서 자꾸 이렇게 글 써달라고 조르게 됩니다.’


어쩌면 그녀는 정말 업무적으로, 내게 작은 조언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문장들을 내 멋대로 받아 들었다. 그녀는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고, 언젠가는 함께 작업할 날을 꿈꾼다고.  나는 나의 자리에서 계속 글을 쓰고, 그녀는 그녀의 자리에서 책을 만들 것이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있다 보면, 그녀와의 두 번째 미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는 조금 더 능숙한 말들로 원고를 들여다보게 될까, 아니면 오랜 벗이 오래간만에 조우하듯 서로의 안부부터 묻게 될까.





우리는 때때로,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말들을 만난다. 심지어 업무 메일도 소중하게 보관되는 그런 말이 된다.  죄송스럽게도, 그녀의 따뜻한 메일에는 답변을 하지 못했다. 나도 그만큼 소중한 말을 전하고 싶은데 글 재간이 없어 적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답변을 몇 주 동안 못하고 나니, 이제는 타이밍이 아닌 듯싶다.  


하지만, 대신 이 글을 써보았다.  언젠가 우연히 이 글을 그녀가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그냥 가볍게 한 얘기에, 쓸데없이 감동받는 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마음은 꼭 전해졌으면 좋겠다.



당신의 짧은 문장에 진심으로 응원받았고,
언젠 가고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오늘도 귀여운 하루를 보냈다

https://brunch.co.kr/magazine/lovelydaytoday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행복했나요? 아니면 고된 하루 었나요.

저의 하루는 '행복하다', '고되다', '멋지다' 등의 형용사로는 정의하기가 힘듭니다.  

딱히 슬프거나, 화난 하루는 아니지만 엄청 행복하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멋진 것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라, 그럴싸한 날들을 보내고 있지도 않고요.

대신에 저는 조금 '귀엽게' 보낸 것 같긴 합니다.   

별 것 아닌 사소한 순간에서 감동을 받기도 하고요,

스쳐 지나가는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오늘도 귀여운 하루를 보냈다>는 일상의 사소하지만 귀여운 깨달음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여러분의 매일도, 귀여운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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