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지 Jul 18. 2020

삽질의 추억

무엇이 피어 나올지 모르는 구멍 송송 난 내 밭

또 손이 절로 마우스로 간다.  밀린 외주 작업들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또다시 사부작사부작 인터넷 조사를 해본다.  

"권리금" "매매" "양도" "위생교육".. 따위의 키워드가 연달아 검색되고, 나는 또다시 나의 작은 가게를 오픈하는 달콤한 상상에 젖어든다.  지난번 교훈으로는 부족했을까? 나는 되려 '이번에는 다를 거야'라는 나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또다시 - 그렇게 작은 가게를 준비해본다.


그러니까 이 모든 시작은 약 2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작은 가게를 오픈하고 싶었다.  내가 애장 하는 빈티지와 예술 오브제들, 그리고 책들을 판매하고 싶었다.  나는 꽤나 현실적인 사람이라, 그냥 소품들을 판매하는 것으로는 월세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간단한 음료들을 팔아보자며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음료를 생각해봤다. 드립 커피, 글라스 와인, 내가 좋아하는 티 한 종류.. 까지.   음료를 팔려면 위생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20시간 가까이 위생교육을 받았다.   여기에 폭발적인 추진력까지 더해져, 가게 계약까지 덜컥했다.  가게 계약을 한 이후에는 디자이너 친구들을 불러 모아 공간을 꾸밀 방법에 대해서 연구하고, 카페를 하는 친구에게 조언을 얻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렇다면 내가 지금쯤 가게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나는 컴퓨터 앞에서 밀린 외주가 하기 싫어 사부작사부작 다시 가게를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 한 달여간의 노력 끝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이 곳에서 가게를 오픈하는 것이 시기상조가 아닐까 하는 갑작스러운 변덕이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그런 와중에 부동산 계약서를 자세히 살펴보니 내가 놓친 부분이 있었다. 가게를 오픈하겠다는 들뜬 마음에 아주 어처구니없는 작지만 큰 실수를 해버린 것이다.  한 달 가까이, 나 혼자서가 아니라 내 친구들까지 함께 노력하며 준비했던 가게 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오픈하기에는 시기와 계약서상의 불리함이 계속 마음 한편에 걱정으로 남았다.  그리고 결국 나는 친구들에게 사과와 함께 가게 오픈을 포기했다. 내가 한 작은 실수와 판단 때문에 모두가 정말 다 함께  삽질을 '제대로' 한 것이다.

한 달여간 몰입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2020년의 2월. 나는 내가 포기했던 성산동의 그 가게를 '삽질의 추억'이라 명하고, 고이고이 추억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삽질의 추억

어떤 활동이 "삽질의 추억"으로 기억되려면 몇 가지 충족돼야 하는 조건이 있다.


-공들인 시간이 내 이야기 속에서 흐지부지 사라지는 경험

-그 시간의 노력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게 된 지금.

-차라리 그 시간에 여행이라도 다녔으면 어땠을까 하는 작은 후회.  

-'그래도 직접 겪어보니 배운 것이 많지 않냐'는 질문에 '굳이'라는 단어가 먼저 튀어나오는 진심.


그러니까 삽질의 추억은, '실패의 경험'과는 또 다른 결의 시행착오이다.  "내가 그때 이랬다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말보다 "내가 그때 굳이 그걸 왜 했을까"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성과는 나지 않을지언정, 똑같은 감정과 경험을 느낄 거라면 '다른 방도로 행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작은 후회이기도 하다.


근데 그렇게 신나게 한 번 삽질하고 나서는, 그다음부터는 삽질을 피해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애석하게도 20살 이례의 내 행보는 삽질의 연대기에 가깝다.  경험에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면, 난 이미 유명한 디자이너나 작가가 되었을 터이다.  그런데 나는 대신에 이리 파보고 꽝이면, 다시 요리 파보는 "삽질의 삶"을 택한 지 오래다.  결국 나라는 사람의 정원에는, 경험에 경험을 더한 무성한 밭 대신,  두더지 게임처럼 구멍이 뻥뻥 뚫린 삽질의 흔적만 남았더이다.   






내 삽질 연대기

20살 때는 옷에 참 관심이 많았다.  잔뜩 차려 입고, 혼자서 뻘쭘하게 내 모습을 찍어 블로그에 하나하나 올렸다.  블로그는 생각보다 흥했고, 나는 여러 행사에 초대되기도 했다.  그때 알게 된 다른 블로거들과 sns의 활용과, 옷에 관해 토론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여기에 삘을 받아, 내 작은 브랜드를 론칭해보겠노라 동해 번쩍 서에 번쩍 원단시장을 뛰어다닌 적도 있다.  그런데 무엇이 나를 멈추게 만들었을까.  어쩌면 내가 특별하게 옷을 좋아하 하지는 않는다는 깨달음이었을까, 아니면 너무나도 멋지고 당차 보였던 다른 파워블로거들에 위축돼서 그랬던 것일까.  어느 날 돌연, 블로그의 모든 게시물을 내렸다. 그리고  혹시라도 구글에 내 예전 사진이 검색이 될까 모든 기록을 샅샅이 지우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옷"으로 시작된 나의 첫 삽질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내가 직접 옷을 입고 '데일리룩'이라는 태그를 붙이기에는 너무 낯뜨거웠지만, 그렇게 나의 옷으로 시작한 블로그 생활은 나에게 '글쓰기'라는 새로운 취미를 안겨줬다. 여기에 더해 그 당시 파리에 가게 되었던 나에게 글쓰기의 소재는 정말 무궁무진했다.  향수 가게, 골동품거리, 디자인 박물관들과 패션위크까지.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명목으로 그 당시에 300만 원의 거금을 들여 비싼 카메라도 구입했다. (그때 구입한 카메라는 아직도 쓰고 있다.)  

그렇게 글쓰기에 사진이라는 새로운 삽질이 추가되어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었는데, 아예 한 달 동안 세계 4대 패션쇼라고 하는, 뉴욕-밀라노-파리-런던의 패션위크를 취재하기 위해 여행이 바로 그것이다.  오로지 인터넷에 나온 패션쇼 정보 만으로, 무작정 쇼장 앞으로 찾아가 멋진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는데 - 그 막무가내 정신 덕택에 나처럼 일단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여러 포토그래퍼들을 알게 되었다.  그때 만났던 무명의 포토그래퍼들은 이제는 패션쇼에 '초대를 받는' 멋진 프로들이 되었다.  물론 당연히 - 나는 전문 사진사와는 아주 먼 삶을 살고 있다.  삽질의 완성은  아무것도 이루지 않았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그들의 소식을 sns로 접하면서 '내가 한 때 이런 사람들과 같이 활동했다'라고 "라테는 말이야~"만 연발할 뿐이다.

물론 그 활동들의 결과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알게 된 한 포토그래퍼 분의 소개로 국내 유명 잡지의 객원기자가 될 수 있었다.  블로그 활동의 연장 선에서, 파리 골목의 멋진 가게들과 문화를 소개하는 기사를 썼다. 근데 그 마저도, 내 담당 에디터 분이 퇴사를 하시며 몇 달 가지 않고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 시기에 딱 맞물려, 취업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래도 파리 유학의 끝은 '해외 취업을 한 번은 해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도 더해졌던 것 같다.  그렇게 사진과 글로 가득 찼던 20대 초반의 삽질은 돌연 회사 생활로 어이없게 막을 내린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삽질은 이어졌다.  아마 너무 이른 나이에 겪어본 '체질에 맞지 않는 기업 생활' 때문인 것 같은데, 갑자기 스타트업이 만들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흔한 기획이었는데,  엄청난 프로젝트인 것 마냥,  아주 열중해서 앱을 개발했다.  특별한 수익구조 없이도 '위대한' 시도의 선두에 있다는 사실에 자기 위로를 하며 매진했었다.  그렇게 열중을 한 끝에 1년 만에 결과물이 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지금 와서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만) 우리가, 혹은 내가 기대했던 것에는 많이 못 미쳤다.  사용자는 5000명이 채 안되었고, 그 당시에 우리가 준비했던 앱보다 훨씬 기발한 기획으로 무장한 앱들이 쏟아져 나와서 어떤 이슈도 되지 않고 소리 없이 사라졌다.  돈이 되기는커녕, 이 프로젝트가 참여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포트폴리오라도 되면 좋았을 텐데. 정작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나 조차, 완전히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어 그 흔한 이력서의 한 줄도 넣지 않는다.  그렇게 모두가 밤낮 열중해서 진행한 1년여간의 프로젝트도,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이득도 주지 못한 채 '삽질의 추억'으로 남아버렸다.


그러고 나서 입사한, 디자인 에이전시에서는 수많은 유명 클라이언트들을 상대했다. 미팅을 직접 가고, 공장도 뛰어다니며 내가 디자인한 제품들이 출시되는 기쁨도 맛보았다. "스타 디자이너"라는 단어만으로도 낯부끄러운 꿈도 살짝 꾼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몇 년여의 회사 생활 끝에 돌연 찾아오 생각은  '남의 비위를 맞추는 데는 젬병이다'라는 결론이었다. 지금은 '일은 일이요, 내 것을 준비하는 것이 남는 것이요'하며 카페 한 구석에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며 가족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먼저 말하기 전에, 내가 그래도 - 한 때- 유우 명한 클라이언트들을 여럿 상대한- 디자이너 꿈나무 었다는 것을 알아봐 주는 이가 있을까!  그렇게 내가 디자이너로서의 직업보다는 글쓰기와 내 가게를 준비하는 것이 더 즐겁다고 결론을 지었을 때 즈음, 왠지 모르게 나의 대학생활도, 그간 쌓아왔던 포트폴리오까지 삽질이 된 듯하다.


그렇게 결국, 기나긴 삽질의 연대기 끝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내가 남았다.  300만 원짜리 카메라는

 캐캐 묵어, 세 달째 켜본 적도 없고 - 몇천 명이 되던 블로그 이웃은 어디 가고 "블로그를 파세요"라는 광고성 쪽지만 매일 날아온다.  그래도 한 때는, IT 스타트업의 작업 프로세스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피그마"라는 협업 툴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화들짝 놀랬다.  결국 나에게 남은 것은 숱한 삽질로 구멍이 뻥뻥 뚫린 밭뿐인데, 나와 함께 그때의 삽질을 계속해서 했던 친구들은 어느덧 꽤나 유명한 프로들이 되었다.  



그렇게 결국 기나긴 삽질의 연대기 끝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내가 남았다




그런데 그렇다고, 나의 구멍 송송 뚫린 밭이 아무 쓸모가 없느냐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나의 삽질에 이면에는 설렘과 순수함으로 무장한 몰입이 있었다.   삽질의 시작은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된 '땅파기 놀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어둠 속도, 기쁜 마음으로 파다 파다 단단한 암석을 만나 '더 이상 팔 수가 없네'라고 느낀 그 순간에 - 비로소 나의 땅파기 놀이가 '삽질'이었다고 정의하곤 하는 것이다.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고, 하나의 삽질에서 그다음 삽질로 넘어갈 때는 다른 여러 현실적인 요소에 대한 고려 역시 하지 않았다. 다만 - 오로지 마음이 끌려 행한 나의 땅파기 놀이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 대신,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아무것도 피어나지 않은 밭이지만, 그 구멍을 들여다보면 제각기 그때의 추억과 경험으로 무장한 재미난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피어나지 않았지만, 구멍마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매 번 삽질을 할 때마다,  구덩이에 작은 흔적을 남겨두고 온다.  내가 씨앗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이 작은 흔적은, 그 깊은 구덩이를 다시 기어 올라와 언젠가고 싹을 틔운다.  그리고 이 씨앗은 상상도 못 한 시점에 갑자기 싹을 틔운다. 그리고 그 싹은 무럭무럭 자라, 다시 지금의 나를 만들어간다. 옷이 좋아 시작했던 블로그 삽질의 끝에, "글 쓰고, 사진 찍는 나"가 피어났다.  디자인을 좋아하고, 주말이면 벼룩시장에 나가던 나의 파리 생활 삽질에서 "소품샵을 해보고 싶은 나"가 피어난다.  그러니까 삽질을 통해 심어진 씨앗은, 꼭 그 일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지는 않더라도, 언젠가고 싹을 피운다.  다만, 싹 피우는 그 순간이 언제가 될지, 어떻게 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삽질 끝의 작은 흔적은, 언젠가고 그 구덩이를 기어 올라와 싹을 틔운다




그렇게 제각기 다른 싹을 틔운 나의 밭은, 구멍도 송송 뚫려 있지만 - 무수히 다양한 종류의 싹이 움을 트고 있다.  사진 찍는 나, 소품샵을 해보고 싶은 나, 공간을 디자인하는 나,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는 나.  형형 색색 다양한 싹을 지닌 나의 밭이,  방식은 달랐지만 한결같았던 나의 '삽질'끝에 탄생했음을 이전에는 알았을까.




또, 여기 땅파기

그리고 오늘 - 나는 또다시 땅파기를 시작했다.  인터넷 여기저기 찾아보며 마우스가 부지런히 움직이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땅파기에 몰입한다.  한 참 동안 인터넷을 뒤지다가, 그다음에 해야 할 일들을 쭉 적어 내려 간다.  대가 없는 순수한 몰입의 행위 끝에, 나는 또 작은 씨앗을 던져본다.    


언젠가 내가 가게를 준비하는 일을 다시 멈추고, 이 매일 같은 노력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을 때 나는 스스로 '삽질했다'라고 정의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리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 눈에는 내가 수년 전 삽질을 통해 심어두었던 싹이 틔어져, 다시 그 뿌리가 더 깊게 땅을 파는 모습이 그려질 뿐이다.  마음 한 구석에서 몽글몽글 그때의 설렘과 기억이 떠오르고,  그 기억을 수십 번 시뮬레이션해보는 것이다.   다음번 가게를 준비할 때는  '이렇게, 요렇게, 저렇게' 해보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일이 다시 여유로워진 요즘, 나는 다시 플래너를 열어 가게 준비 계획을 크게 세워봤다.  밀린 외주나, 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다만 내 삽질의 끝에, 씨앗은 언젠가고  싹을 틔운다는 확신만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 싹의 뿌리가 더 깊은 구멍을 파, 이전보다 더 큰 삽질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깊게 깊게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나의 싹은, 언젠가는 아주 커다란 나무가 되어있을 것이다.





https://docs.google.com/forms/d/19_tW8euLdEGyLWlmjKi1JYVagh1pECWmAZ3egjBqmnk/edit?usp=drive_web

작가의 이전글 뽑지 못하는 사랑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