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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Nov 17. 2019

꿈의 기록의 시작

꿈은 나아갈 바를 제시한다

왓 프라 탓 도이 캄, 치앙마이, 태국




꿈은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다


정신 작용이 활발한 편이다. 거의 매일 같이 꾸는 꿈도 그러한 현상 중 하나다. 왕성한 정신 활동 때문인지 현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을 꿈속에서 자주 경험한다.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한 장면이 잦은 까닭에 꿈을 계속 즐기기 위해 수면의 마지막 지점에 이르렀을 때도 깨지 않고 계속 잘 때가 적지 않다. 사건이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 잠을 깨기라도 하면 그다음 장면이나 최종 결말을 보기 위해 다시 잠을 청하곤 한다. 눈을 감으면 그다음 장면이 기다렸다는 듯 이어진다. 이따금 데자뷔 현상이나 예지 현상도 겪는다. 꿈에서 본 장면을 현실에서 마주칠 때마다 야릇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에서 꿈을 기록해 보라는 권유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날마다 꿈을 꾼다는 내 얘기에 심리학에 조예가 깊은 지인 몇 명이 꿈을 기록해 보라고 적극적으로 나에게 권해 왔다. 꿈을 기록해 두면 그것이 암시하는 바를 해석해 주겠다고 한 이도 있었다. 한 행사에서 꿈을 기록하는 도구를 상품으로 타기도 했다. 꿈의 기록과 분석을 권유하는 여러 가지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를 건드려 왔다. 


심리학에서 내면을 분석하기 위해 꿈을 중요한 도구로 사용한다는 사실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기록을 시도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더러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인식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시기는 따로 있는 법. 흥미로운 권유다 생각하면서도 꿈을 기록하는 쪽으로 행위가 연결되지 않았다. 관심의 방향이 눈에 보이는 것들, 손에 닿을 듯한 것들을 향해 여러 줄기로 뻗어 있던 시절이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매일같이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기록은 하지 않은 채로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행을 시작한 지 보름쯤이 지났을 무렵, 꿈과 관련해 묘한 경험을 했다. 아침에 잠에서 깼는데 이상한 기분이 침대 맡을 술렁거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꿈속에서 자스민 혹은 살구꽃의 이미지를 지닌 여자가 등장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했으나 꿈의 여운이 온종일 자극을 가해 왔다. 안 되겠다 싶어서 자동기술법 글쓰기를 하면서 꿈의 내용을 함께 기록해 두었다. 


이후에도 꿈을 꾸는 현상은 계속 이어졌다. 무수한 이미지들이 떠돌아다니는 꿈을 꿨는가 하면, 낮에 만났던 여행자와 함께 타국을 여행하며 숙소를 구하러 다니는 꿈을 꾸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지인이 꿈에 등장해 의미심장한 장면을 펼쳐 보였다. 그 밖에도 수많은 꿈을 꿨다. 여운이 느껴질 때마다 꿈의 내용을 기록해 나갔다. 


꿈의 기록이 쌓여가는 현상은 고무적이었지만 작업이 매양 순조롭지는 않았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꿈을 기억해 두는 일이었다. 잠을 깬 바로 직후에는 꿈속에서 펼쳐진 장면들이 기억났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그 내용이 공중분해되기 일쑤였다. 꿈을 꿨다는 사실만 분명하게 기억날 뿐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릴 수 없는 순간이 꽤 있었다. 바로 옮겨 적지 않으면 몇 분 사이에 기억이 증발하곤 했다. 이따금 꿈의 내용을 기록하지 못하거나 일부만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꿈의 내용을 기억하는 데 실패한 날에는 잠을 깬 이후 찾아든 여운의 양상을 기록했다. 꿈속 장면에 대한 기억은 사라졌지만 인상이나 감정은 남았다. 꿈이 건드리고 간 감각의 편린들이 정신세계를 자극하면서 일정한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그 내용을 받아 적고 해석했다. 곱씹어 보면 각성한 내용의 대부분은 내가 집중하고 있는 문제들에 밀착되어 있거나 현실 생활에서 해소가 필요한 지점들에 닿아 있었다. 일상에서 간과했던 부분도 포함되어 있었다. 각성의 방향은 현실에서의 내 판단과 반대일 때가 많았다. 겉으로 드러내기에 수치스럽거나 한 번에 떠안기에 너무 무거워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들을 꿈은 어김없이 지목했다. 당혹스러운 순간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현상이기에 거부감을 자제하고 꿈이 제시하는 바를 최대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안락한 잠자리 덕분에 치앙마이에서는 아침에 일어나면 정신이 맑았다. 글 작업에 난항을 겪어 혼란에 직면하든, 기분 좋은 일들이 계속되든 언제나 맑은 정신으로 아침을 맞았다. 그만큼 각성의 상태도 선명했다.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인상이나 감정들을 곱씹다 보면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이나 그 시기의 내적 움직임과 맞닿았다. 현실에서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나쳤거나 전혀 인지하지 못한 부분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각성 결과를 자동기술법 글쓰기에 기록한 후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내 글 쓰기를 다시 시도하게 한 동인 중 하나도 꿈이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체류 중이던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면서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뒤이어 각성 현상이 분주히 일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꿈의 마지막 장면이 내면을 건드렸다. 꿈속 장면들과 그것이 남긴 여운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동안 게을리했던 내 글 쓰기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암시를 읽었다. 그러나 그때는 사진 작업을 하기에도 바빴다. 글 작업까지 손을 대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래서 그냥 지나쳤다. 그러다가 내 글 쓰기를 촉구하는 각성 현상이 치앙마이에서까지 계속되면서 내 글 쓰기를 다시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후에 귀국 항공편을 이상 없이 예약할 수 있었던 것도 꿈이 등을 떠민 덕분이었다. 어느 날 아침잠을 깬 직후 꿈의 여운을 곱씹다가 항공권 판매 상황을 확인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날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넘겼다. 그로부터 며칠 후 비슷한 암시가 담긴 꿈을 꾸었다. 꿈의 내용은 이랬다. 중요한 출장을 위해 공항으로 향했는데 도착해서 보니 비행기를 놓치기 일보직전이었다. 공항 직원에게 급히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를 앞세워 도착한 곳은 항공기 탑승장이 아니라 열차 탑승장이었다. 결국 비행편을 놓쳤다. 잠을 깬 직후 아차 싶어서 인터넷으로 항공 현황을 확인해 보니 적정가의 항공권이 동나기 직전이었다. 망설일 것 없이 그 자리에서 귀국행 항공권을 예약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꿈의 기록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여행의 초기부터 스스로에게 집중해 온 노력 덕분이었다. 나 자신의 탐색이라는 여행의 방향성과 내면의 상태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도한 여러 가지 실험들이 무의식을 자극하면서 꿈의 기록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왔다. 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아늑한 잠자리 덕분에 작업이 더욱 용이했다. 돌아보면 꿈의 기록은 나 자신의 상태와 생활 속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역할을 했다. 내면세계를 꾸준히 가다듬으면서 창조성도 더불어 끌어올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꿈의 기록이라는 행위가 자리 잡고 있었다.




# 꿈의 기록과 분석에 대하여

꿈은 무의식의 움직임을 가장 분명하게 포착할 수 있는 현상이다. 무의식이 자율 기능을 발휘한 결과로써 현실에서의 문제점 해소나 향후 나아갈 바를 알려주는 현상이 꿈이라 할 수 있다. 현실을 보상하는 방향으로 꿈이 자주 펼쳐지는 이유도 현실과 꿈이 서로 연동되기 때문이다. 꿈 해석은 꿈속에서 벌어진 일들을 개인의 현실 상황과 연결하면서 원형 심리학의 상징체계를 적용해 꿈이 암시하는 바나 시사하는 점을 찾아내는 과정을 밟는다. 이후 그 결과를 현실에 적용함으로써 당면 과제의 해결을 도모할 수 있다. 융 심리학은 꿈을 직관적이라고 설명하지만 해석이 단번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정한 수련 없이는 꿈을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꿈 해석을 시도할 때 반드시 숙련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고 권유하는 이유다. 나 역시 여행 당시 꿈 자체를 해석하려는 시도는 거의 하지 않았다. 잠을 깬 직후의 각성 정도만 생활에 활용했을 뿐 대부분의 노력은 꿈을 기록하는 데 들였다. 심리학의 기법 중 개인적으로 이해가 가장 취약한 부분이기에 지금도 섣부른 해석은 자제하며 계속해서 해당 영역을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해석 없이 꿈을 기록만 하는 일이 개인 생활에 과연 도움이 될까?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도움이 된다. 기록하는 행위만으로도 내면세계에 변화가 일어난다. 감각을 섬세하게 세련해 주는 작업이기에 어느 시점부터는 부분적으로 각성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충분치 않을 수도 있지만 내면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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