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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Nov 17. 2019

자기검열은 자존감을 잠식한다

패배, 낙심, 그리고 자아의 몰락

구시가, 치앙마이, 태국




자기성찰과 자기검열은 다르다


한동안 중단했던 내 글 쓰기 작업에 다시 손을 댔다. 여행 속에서 벌인 여러 가지 시도들이 창조성을 고양시킨 것이다. 작업해야 할 사진의 분량을 생각하면 글 작업까지 하는 건 아무리 봐도 무리였지만 나로서는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순간이기에 여세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었다. 사진 작업을 한국에서 마저 이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 귀한 흐름을 어떻게든 부여잡아야 했다. 많은 작가들이 증언하는 바, 글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대목은 첫 문장의 작성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글쓰기도 첫걸음을 떼기가 가장 어렵다는 얘기다. 드디어 글 작업의 포문을 열었으니 어떻게든 이 흐름을 지속시켜야 했다. 


의욕적인 마음과 달리 작업은 난항을 거듭했다. 감성이 많이 굳어 있었고, 어휘도 상당량이 증발했다. 자기 검열의 시선도 자주 작동했다. 내 안에 있는 말들을 있는 그대로 끄집어내야 하는데, 이 상황에 도달하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창작은 행위 자체가 결실인데, 자기를 표현하는 일에는 우열의 논리를 적용할 필요가 없는데, 그러한 생각과는 달리 스스로에게 날 선 채찍을 휘갈기길 반복했다. 오랜만의 글 작업이니 결과가 엉성할 수밖에 없는 데도 자기 검열의 시선은 한참 후에나 도달할 수 있는 높은 완성도를 요구해왔다. 지금 당장은 충족시킬 수 없는 요구여서 더더욱 움츠러들었다. 


이렇게 써도 이상하고, 저렇게 써도 이상해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는 순간이 늘었다. 그럴 때마다 휘청거렸다. 의욕적으로 덤벼들어 어느 지점까지는 글을 잘 풀어내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완성하지 못하는 현상이 잦았다. 얼마 되지 않는 완성 글마저 다시 읽어보면 엉성해 보였다. 어렵사리 시작은 했지만 과연 엉킨 실타래를 제대로 풀 수 있을지 의아해졌다. 글 작업에 대한 욕망을 다시 느끼지 않았더라면 이럴 필요도 없을 텐데 나는 왜 사진 작업까지 망쳐 가면서 이러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곤 했다. 망연자실한 순간들에 맞서기가 보통 괴로운 게 아니었다. 스스로 선택한 고독 여행이라지만 이럴 때만큼은 옆에서 응원하고 지지해 줄 사람이 몇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글 작업의 흐름이 불안정하다 보니 자동기술법 글쓰기에 부정적인 내용을 기록하는 순간이 늘었다. 작업의 진전 없이 시간만 하염없이 흘러간다, 오늘도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무기력한 하루였다, 허무하게 하루를 보냈다, 이유 없는 느슨한 일상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등등. 작업과의 씨름에서 대패할 때가 잦았지만 그래도 협업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며 어떻게든 위기를 돌파해 보려고 기를 썼다. 중간중간 스쿠터에 몸을 싣고 마음이 닿는 곳까지 라이딩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고, 치앙마이 대학교의 호숫가에서 바람도 쐤다. 작업은 작업은 작업대로 매진하면서 심리의 상태를 안정시키기 위해 적잖이 노력했다. 그러나 자동기술법 글쓰기에는 실망 어린 내용들이 쌓여갔다.


어느 날 아침에는 잠에서 깬 직후 공포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글과 관련해 수년 동안 대외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면서 직업인으로서 스스로의 자질에 회의감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공포감에 일격을 당한 직후, 오만 가지 생각이 침대 위를 떠다녔다.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추세가 이어질 경우 귀국과 더불어 가파른 추락을 할 수도 있다, 이럭저럭 성과를 만들어 낸다고 해도 장밋빛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데 계속 이런 식이라면 삶이 몰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다음 수순은 무엇인가? 아득하고 또 아득했다.


그러던 중 작업이 잘 풀리지 않는 상황을 틈타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잠시 머리나 식힐 생각이었는데 적당한 시점에서 끊고 작업을 다시 하겠다는 각오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음 동영상을 계속 찾아보기 일쑤였다. 도피 행각의 시작이었다. 평소에도 도피성 행위를 경계해 왔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짧은 길이의 코믹 영상이나 한국 뉴스를 시청했다. 국내에서 적폐 청산 작업이 본격화된 상황이라 그와 관련한 소식을 주기적으로 확인할 필요도 있었다. 


그런데 얼결에 시작된 동영상 시청이 웹 드라마까지 이어졌다. 사실 드라마는 한국에서도 잘 보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눈에 불을 켜고 웹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토리텔링의 최신 경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그때는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영상들을 찾아다니기에 바빴다. 역대 최고의 잠자리에서 불면증을 겪기 시작했다.


그 무렵 애독자 한 명이 소식을 두절했다. 전에 출간한 여행 에세이에 크게 반응했던 독자였는데 영문도 없이 갑자기 모든 연락망을 끊었다. 글 작업과 관련해 나를 작가로서 깊이 존중하고 지지하던 몇 안 되는 이였다. 출간 후 몇 년이 지나 읽어 본 내 책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특히 여행자로서 생각도 짧았고 경솔한 행동도 많이 했다. 그걸 또 자랑이랍시고 버젓이 책에 적어 놓았다. 그때로서는 최선이었으니 후회하지 말고 앞으로 잘하자고 생각했지만 화끈거리는 얼굴은 어쩔 수 없었다. 


책 속의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은 답습하지 않았으면 해서 애독자와 이따금 소통하는 과정에서 책의 미흡한 부분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애독자는 오히려 나를 강력하게 옹호했다. 재능 있는 작가이며, 저작 역시 자신으로서는 만족스럽다는 것. 작가로서 부족한 점이 많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애독자의 반응이 크나큰 힘을 주었다. 이후에도 애독자는 나를 작가로서 정중하고 깍듯하게 예우했다. 


창작자에게 지지자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창조성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에서도 그런 사실을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그러니 천군만마의 역할을 해 준 애독자는 나에게 귀중해도 보통 귀중한 존재가 아니었다. 더욱이 책이 출간된 지 여러 해가 지나면서 신규 독자들의 피드백이 드물어진 상태였다. 애독자가 더더욱 고마웠고, 그만큼 각별하게 대했다. 그런데 애독자가 아무런 얘기도 없이 연락을 끊었다. 어리둥절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무의식에 미치는 영향은 그보다 훨씬 클 듯했다. 


글 작업을 원하는 대로 진척할 수 없어 골골하던 중에 이번에는 오른쪽 허벅지에 통증이 찾아왔다. 이렇다 할 사건도 없는 상황에서 찾아온 통증이었다. 쿠알라룸푸르에서와 마찬가지로 심리적인 불안이 야기한 신체적 이상인 듯했다. 통증은 잠자리에서 더 심하게 올라왔다. 어떤 자세를 취하든 통증이 올라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을 설치는 바람에 피로감 속에서 보내는 나날들이 늘어갔다. 심신에 활기를 불어넣던 수영도 결국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다리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다리가 회복된 후, 수영을 재개하려 했으나 어쩐 일인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약해졌다는 신호였다.


작품이 자신의 정체성이기도 한 창작자의 입장에서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기란 무척 절망스러운 일이었다.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도전이었을 글 작업에서 참패를 당하니 불안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압박감을 없애려고, 또한 스스로를 문책하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스스로를 자책하는 날이 점점 더 늘어갔다. 머리로는 내 글 쓰기를 드디어 시작했으니 이 정도만 해도 어딘가, 열심히 노력했으면 그걸로 됐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스스로를 미래가 보이지 않는 존재,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며 힐난했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행동했지만 마음으로는 스스로에게 자주 따귀를 때렸다. 그만큼 답답했다. 좌절과 낙심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시 내가 그런 상황을 겪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창조적 활동의 방해 요소를 검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하는 관문이었던 셈이다. 눈으로 확인할 수만 없었을 뿐 제 순서를 밟으며 결과를 하나씩 쌓아가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때는 그런 줄 몰랐다. 무의식 속에서 복합적인 작용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긴 했다. 그 배후에 뭔가가 있는 것 같다고 자동기술법 글쓰기에도 적어 놓았다. 그렇지만 당시로서는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몰락한 느낌에 자주 시달렸지만 실상은 그 반대의 상황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을 겪고 있고 있었다. 창조성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당연스레 벌어지는 현상임을 깨닫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 창조적 활동의 적, 자기검열

창조적 활동은 예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 방향이 생산적인 작용을 불러들인다면 무슨 일이든 창조적이다. 더 나아가 예술은 예술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구라도 예술을 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예술가인 것이다. 창조적 활동 자체가 이미 예술이다. 각자의 업도 얼마든지 예술이 될 수 있다. 구획 짓는 사고는 예술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한다. 예술을 특정 장르, 특정 행위로만 국한 지어 바라볼 때 예술은 남의 일이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내 안의 창조성이 발아할 수 없다. 구획 짓는 사고는 자기검열의 시선도 작동시킨다. 스스로를 차분히 돌아봄으로써 성장을 도모하는 자기성찰과 달리 자기검열은 폭압적인 움직임으로 창조적 열망을 주저앉힌다. 스스로를 난도질하는 가운데 의욕을 격감시키며 심지어는 무기력까지 불러들인다. 자기검열의 시선에는 타인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자기검열의 시선을 작동시킨다는 얘기다. 자기성찰과 자기검열을 분명하게 구별할 필요가 있다. 창조적 활동으로 상징되는 예술의 의의는 표현 그 자체에 있다.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예술의 실현이다. 검열은 기술은 키울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은 키우지 못한다. 그러나 표현은 사람을 키운다. 표현을 하는 만큼 사람이 큰다. 올바른 성장의 발판인 셈이다.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다음 국면을 향해 걸음을 옮기면 된다. 치앙마이에서의 나처럼 괜한 고생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당시의 나로서는 그게 최선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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