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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Nov 17. 2019

내 생애 최고의 잠자리

심신을 재생해 주는 수면의 힘

님만해민, 치앙마이, 태국




충분한 수면은 활력 있는 일과를 유도한다


숙소의 상태는 연일 쾌적했다. 일급 숙소는 아니었지만 나란히 누우면 세 명은 족히 드러누울 수 있는 퀸 사이즈 침대에, 요모조모 쓰임새 좋은 샤워실에, 적당한 수준의 붙박이 가구들에, 4인용 탁자 설치가 가능한 발코니에, 저녁마다 발코니를 타 넘어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썬베드가 곳곳에 놓인 제법 커다란 규모의 수영장까지 만족스러운 부분이 꽤 많았다. 덕분에 심리적인 안락감이 컸다. 단독 거주자의 입장에서는 나무랄 점이 거의 없었다. 


방음 상태도 비교적 괜찮은 편이었다. 발코니의 유리문을 잠그면 외부의 소음을 상당 부분 차단할 수 있었다. 거기에 커튼까지 치면 실내 분위기가 한결 고요해졌다. 커튼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의 두 세계가 분명한 태세로 양립했다. 변화무쌍한 일들로 쉴 새 없이 자극을 유발하는 바깥 세계와 그 어떤 간섭도 없는 안전한 내부 세계가 발코니라는 절취선을 사이에 두고 기분 좋게 서로에게 맞섰다. 유리문과 커튼이 외부의 시끄러운 현상들을 차단해 주는 방은 나만의 완벽한 세계였다. 그 안에서 아침저녁으로 내 왕국이 열렸다. 


다른 이들과 부대껴야 하는 여행자 숙소에서 3개월 동안 생활하다가 개인 공간을 마련한 터라 피부로 느껴지는 안락감은 더욱 컸다. 여행자 숙소에서는 타인의 영향력을 피할 길이 없었다. 모든 공간을 공유해야 했기에 참고 지내야 하는 일도 꽤 많았다. 작심하고 선택했으니 기꺼이 받아들여야 했지만 그만큼 욕구불만도 쌓였다. 개인 공간을 사용하게 된 치앙마이에서 그동안 쌓인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을 자주 받은 이유였다. 거의 모든 상황들에서 대비 효과가 크게 느껴졌다. 누구든 자신만의 세계를 보호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개인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자각한 순간이 많았다.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부분은 잠자리였다. 침대는 아주 안락했고, 이불과 베개는 더없이 푹신했다. 침대에 누우면 금세 눈꺼풀이 내려왔다. 불면에 시달리던 때와 비교하자면 여기야 말로 무릉도원이었다. 행복하고 포근한 잠자리라는 생각을 하고 또 했다. 아침에 잠을 깬 직후, 내 몸과 마음이 내 머리보다 앞서 만족감을 표할 때가 아주 많았다.  


시설 면에서 보자면 이보다 훨씬 훌륭한 잠자리도 그동안 적잖게 경험했다. 취재나 출장을 위해 묵은 5성급 호텔방, 쾌적하고 안락한 펜션 침실, 서양에서 묵었던 전원주택의 독방에 이르기까지 치앙마이보다 더 아늑한 잠자리가 많았다. 그런데도 전에 없는 안락한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일생을 통틀어 최고의 잠자리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였다. 머리로 판단을 내릴 필요 없이 내 몸이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숙면의 배경은 오로지 물리적 환경만이 아니었다. 안락한 수면 시설에 더해 치앙마이의 종합적인 생활환경과 평온하고 소박한 지역 정서가 동시에 숙면을 유도했다. 이 잠자리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듯했다. 


모처럼 만난 인생 잠자리에서 하루에 8시간은 수면을 취하려고 노력했다. 과거에는 학업에 치이고, 업무에 시달리느라 그 절반의 수면량만으로 생활하기도 했지만 그리 좋은 방식이라 할 수 없었다. 체내에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제대로 가라앉힐 새도 없이 급히 눈 뜨는 생활을 하다 보니 신체의 균형이 흔들렸다. 만성피로에 시달리면서 신진대사가 불안정해졌고, 온몸에 독이 차오르면서 신경도 날카로워졌다. 무거운 몸을 억지로 가동하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욕구불만도 쌓였다. 감정마저 시들시들해져 버리면서 인생이 덧없게 느껴지는 현상도 생겼다. 


수면 부족이 심신에 끼치는 영향이야 인터넷만 뒤져 보아도 수없이 찾을 수 있었지만, 치앙마이에서는 컴퓨터를 켜기 전에 몸이 먼저 증언을 했다. 8시간 정도 잠을 잔 후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상당히 가벼웠다. 내 앞으로 당도한 새로운 하루가 꽤 희망적으로 느껴졌다. 충분한 수면 시간과 안락한 잠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대급 잠자리 위에서 마르고 닳도록 깨달았다.  


아무도 침투할 수 없는 나만의 요새를 구축한 김에 몸을 더욱 자유롭게 만들어 주기로 했다. 완전 탈의 상태로 취침하기로 결정한 것. 이전에도 여행을 하면서 독방을 사용할 때는 완전 탈의 상태로 잤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자연 상태에 놓일 일이 희박한 대도시에서의 삶을 오래 살아온 때문인지 여행지에서의 완전 탈의 취침은 매번 예외 없이 자유를 되찾은 느낌을 선사하곤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늘 같은 기분을 느꼈다. 완벽한 단독 공간을 확보했으니 환경을 아낌없이 이용해야 할 터였다. 


내 몸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관심을 기울여 온 여행이었다. 몸의 상태를 상승시키기 위해 내 신체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 결과에 맞춰 필요한 조치를 취해 오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몸은 정신이 사는 요람이었다. 정신의 거처인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정신 또한 시름시름 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복이라는 이름의 천 쪼가리를 벗어던지니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 관습을 탈의하고 순수 자연인으로 돌아간 밤마다 문명의 틀이 하나씩 부서져 내렸다.


지속적으로 실행해보니 완전 탈의 취침은 내면의 정화를 위한 의식에 가까웠다. 비움의 행위이면서 심신의 세척이기도 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샤워를 하고 완전 탈의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으면 피부에 닿는 광목 재질의 침대 시트와 이불의 질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체내에 쌓인 피로와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던 상념들이 내 몸을 조용히 빠져나와 허공으로 사라졌다. 금세 나른해졌고, 언제인지도 모르게 저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 세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온갖 진귀한 장면들이 꿈이라는 스크린 위에서 펼쳐졌다. 달콤하고, 흥미진진하고, 나른하고, 기상천외한 그 시간의 끝에서는 언제나 새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 심신을 재생해 주는 수면

수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건강과 직결되는 데다가 생활의 질도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피로 해소와 재충전 외에도 수면의 기능은 다양하다. 손상된 신체 기능의 복구, 하루 동안 입력된 정보의 재정리, 꿈을 통한 욕구 해소 등도 수면이 창출하는 대표적인 효과다. 심신을 총제적으로 재생시켜 주는 활동인 셈이다. 수면은 행복감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잠을 잘 자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감이 높다고 한다. 만성 불면증 환자가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성인에게 요구되는 적정 수면 시간은 8시간 안팎이다. 아무리 바빠도 최소 6시간은 자야 심신의 기능을 이상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지식노동자나 정신노동자에게 수면은 노동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충분한 수면으로 심신의 상태를 끌어올림으로써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다른 직업군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경우, 수면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느낀 치앙마이 생활 이후 8시간 취침을 일상화하고 있다. 아주 바쁜 상황이 아닌 한은 수면 시간부터 먼저 확보한 후 나머지 일과를 배치한다. 분주히 살아가는 이들이 시야에 들어올 때면 수면 시간을 줄여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상황을 되짚으며 조바심을 다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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