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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Jan 17. 2019

18. 마의 구간에서_카미야네츠 포딜스키, 우크라이나

도장깨기의 맛이 바로 이런 것인가

성벽의 구멍을 통해 바라본 마을 풍경, 카미야네츠 포딜스키 성, 카미야네츠 포딜스키, 우크라이나




낡은 야간열차가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달리고 있었다. 몇 시간 후 내 앞으로 펼쳐질 키예프의 모습을 상상했지만 아득한 연기만 사방으로 피어날 뿐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렇다 할 그림은 없었다. 서유럽이라면 몇 개의 도시를 한 번 섞어 보기라도 할 텐데 상대적으로 알려진 바가 적은 동유럽에서도 저 안쪽에 위치한 키예프는 아예 예측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키예프는 그만큼 멀었다. 새벽 공기를 한참을 가른 열차가 숨갈이의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곧이어 한숨을 길게 뿜어내며 제 몸을 축 늘어뜨렸다. 키예프였다. 


베일을 벗은 키예프에는 활기찬 풍경들이 가득했다. 생동감 넘치는 장면들에 마음이 자주 들썩였다. 존경받았던 사제들의 시신을 지하 동굴에 안치하고 있는 페체르스크 수도원,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종교 건축물인 성 소피아 대성당, 청년 문화의 본산이자 현지 최고의 중심가인 마이단 광장, 자유의 여신상의 대척점에서 공산주의의 웅대한 이상을 표현하고 있는 승리의 여신상, 음각과 양각의 요철로 투쟁의 역사를 묘사한 공원 벽화, 그 일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시원한 강변 풍경, 끝이 보이지 않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지하 100미터 깊이의 지하철역까지 도시의 특색이 다채롭게 교차하는 풍경들이 흥미를 돋웠다.  


페체르스크 수도원, 키예프, 우크라이나


마이단 광장, 키예프, 우크라이나


그런데 키예프에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는 내내 마음이 우크라이나의 시골을 더듬었다. 숲이 우거진 산악 지역을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날마다 했다. 우크라이나의 수많은 장소들 중에서도 카미야네츠 포딜스키라는 작은 마을이 눈에 계속 들어왔다. 중세풍의 아름다운 성이 거기에 있다고 했다. 차편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땅덩어리가 워낙 넓은 나라이다 보니 수도인 키예프에서도 직통으로 닿을 수 있는 구간은 한정돼 있었다. 공 들여 정보를 수집했으나 결국 직행 노선 파악에 실패했다. 대신 현지 친구의 도움을 받아 카미야네츠 포딜스키 근처를 지나는 유료 카풀 차량 한 대를 어렵게 수배했다. 약속 장소에서 만난 운전자와 동승자는 모두 선량하고 친절했다. 하지만 영어는 전혀 하지 못했다. 운전자의 직업이 의사라고 해 어느 정도는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았는데 악수만 아주 잘했다. 비좁은 승용차 안으로 흐르는 육중한 침묵을 5시간 이상 버텨야 했다. 


예상했던 대로 카미야네츠 포딜스키는 아름다웠다. 그중 으뜸은 지역의 내력이 물씬 묻어나는 구시가와 소문만 무성하던 카미야네츠 포딜스키 성이었다. 구시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구조가 오밀조밀해 돌아다니는 맛이 있었다. 그 일대로는 스모트리츠강이 휘돌아 흘렀다. 해자처럼 주변을 둥글게 돌아 나가며 구시가를 천혜의 피난처로 탈바꿈시키는 지형적 특색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구시가의 서쪽 끝에서 쭉 뻗어나간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카미야네츠 포딜스키 성이었다. 스모트리츠강이 굽이치며 만들어 낸 거대한 동그라미의 병목 지점에 자리한 카미야네츠 포딜스키 성은 중세의 자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묵묵히 서 있었다. 견고한 위세로 직립한 성벽에 올라서자 외곽 풍경이 사방으로 시원스럽게 펼쳐졌다. 세계적으로 소문난 성채들에 비하자면 규모는 작았지만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는 전체적인 풍모는 아주 훌륭했다. 성벽을 걸으며 마을의 전경을 각도별로 훑는 동안 평화롭고 아름다웠을 지난 시절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


 

카미야네츠 포딜스키 성, 카미야네츠 포딜스키, 우크라이나


성곽 구경을 마치고 나올 무렵 다리 부근이 부산해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손짓 발짓으로 물어보니 자동차 랠리 차량들이 카미야네츠 포딜스키를 지날 시간이란다. 뜻밖의 이벤트를 구경하게 됐다. 들썩이는 인파를 거슬러 되돌아간 구시가는 중앙 도로가 통제된 상태였다. 도로의 양쪽으로 수많은 인파가 도열한 것으로 보아 차량들의 도착이 임박한 듯했다. 그런데 구경거리는 자동차 랠리만이 아니었다. 읍내에서 유일한 동양인인 나도 사람들에게는 진귀한 볼거리였다. 인도의 한쪽에 서서 랠리 차량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주변의 관심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선 닿는 곳마다 손 인사가 줄을 이었다. 희귀 인종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현지인들의 요청으로 인증샷도 여러 번 찍었다. 곧이어 스포츠카 한 대가 저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선두 차량이었다. 거친 숨을 뿜어대며 울퉁불퉁한 중앙 도로를 가로지르는 그 위용이 대단했다. 그 뒤를 이어 후속 차량들이 콧구멍을 그르렁거리며 거대한 함성의 한복판을 속속 질주했다. 도로 위로 타이어 자국이 늘어가는 사이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붉어진 하늘을 배경으로 한 스포츠카의 쇄도가 굉장한 박진감을 선사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했다. 


마을 구경은 즐거웠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나머지 국면은 숨 막힘의 연속이었다. 이전의 여행지들처럼 현지에 도착하면 모든 걸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최고의 걸림돌은 언어 장벽이었다. 숙소는 지내기에 나쁘지 않았지만 영어를 전혀 못하는 청소부 아줌마만 상주할 뿐 주인이나 관리 스탭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행 정보는 말할 것도 없고, 숙소 이용 규정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내가 손짓 발짓으로 궁금한 사항을 물을 때마다 그녀는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연결해 주었지만 양쪽 모두 영어 능통자가 아닌지라 소통이 더뎠다. 더욱이 매번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직접 발품을 팔아 지역의 사정을 파악해야 했다. 


이 상태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숙소를 바꾸기로 했다. 달팽이보다 느려 터진 인터넷을 힘겹게 뒤져 영어가 가능한 직원이 24시간 상주한다는 숙소 한 곳을 찾아냈다. 읍내의 정 반대편에 위치한 곳이었지만 불통의 시간 속에서 끙끙거리느니 그리로 이동해 여유를 되찾는 편이 현명한 처사일 터였다. 드디어 답답한 환경을 벗어나게 되었다고 생각할 찰나 두 번째 난관이 의미심장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새로운 숙소 근처로 가는 교통편의 존재가 오리무중이었던 것이다. 거리를 배회하며 읍내에 버스가 운행되고 있는지 확인했으나 도로를 달리는 수많은 차들 중 버스 형태의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헤맨 끝에 흰색 봉고차가 버스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버스는 전면 유리에 노선을 써 붙여 놓았는데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도 키릴 문자를 사용하고 있어서 내용을 읽을 수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역시나 간절한 눈빛만 서로 오고 갈 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근근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현지인 한 명을 찾아냈다. 그의 도움으로 새로운 숙소 부근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고, 하차 지점에서부터 30분을 더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영어가 가능한 직원이 24시간 상주한다니 이제는 숨통을 틀 수 있겠구나 생각했으나 새로운 숙소의 관리인도 영어는 전혀 하지 못했다. 10인실 도미토리를 혼자서 독차지한 것도 좋았고, 발코니에서 내려다 보이는 들판의 풍경도 멋졌지만 보이지 않는 창살에 갇힌 듯 답답한 심정은 끝끝내 해소할 수가 없었다. 언어의 장벽은 태산처럼 높았다.


자동차 랠리를 구경하러 구시가에 갔다가 마주친 현지인들, 카미야네츠 포딜스키, 우크라이나 


훌륭한 풍광을 한껏 즐기긴 했으나 말도 통하지 않고, 환경마저 낙후된 그곳에서는 고전을 면할 길이 없었다. 하루의 일정을 무사히 소화하려면 날마다 신경을 곤두세워가며 갖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낡고 허름한 현지의 풍경이 눈물겹게 아름다워 보인 것과는 반대로 무력감이 명치끝을 날마다 짓눌러 왔다. 지역의 실정도 전혀 모르는데 말까지 안 통하니 무언가를 하려면 누군가에게 반드시 의지해야 했다. 그 누군가마저도 한참을 헤매야만 찾을 수 있었다. 낯설고도 낯선 우크라이나의 시골 소읍에서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오롯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잠자는 것 빼고는 없었다. 시간 단위로 난관이 속출하다 보니 만사가 숨 막혔다.  


우크라이나라는 이름에는 ‘변방의 땅’이라는 뜻이 숨어 있었다. 변방을 찾아 나선 길에서 스스로를 변방으로 칭하는 나라에 들어선 것이다. 거기서도 더 안쪽으로 진입했으니 이번에야 말로 변방 중의 변방에 찾아온 셈이었다. 낡은 관성에 잠식당한 내 자아를 깨끗하게 박살 내 줄 진짜 변방. 쇄도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사이 내 안에서 거센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전의가 솟구친 것이었다. 난관이 속출하는 그 흐름이 인생을 꼭 닮았기에 고비마다 열의를 다해 맞섰다. 장애물 하나를 격파하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 카타르시스가 엄습했다. 도장깨기의 맛이 이런 것인가 보다 생각할 찰나 새로운 난관이 달려들었지만 도복을 고쳐 입고 다시 정면 대결을 벌였다. 답답하고도 짜릿하고, 짜릿하고도 답답한 순간 속에서 생의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석양을 가르는 랠리 차량, 카미야네츠 포딜스키, 우크라이나


고생에 고생을 거쳐 카미야네츠 포딜스키를 빠져나오는 길. 다음 행선지로 가는 버스가 출발하는 터미널에서 올레흐라는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데다가 영어 솜씨도 좋기에 그가 사는 곳이자 내 다음 행선지인 이바노 프랑키브스크로 이동하는 버스에 나란히 앉아 장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올레흐는 오랫동안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는 모두가 척박한 환경을 당연스레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로 현지의 생활상을 압축해 설명했다. 다들 그 힘으로 삶을 버텨오고 있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흙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현지 도착 직후 또 다른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어 시간이 빠듯했던 올레흐는 버스가 이바노 프랑키브스크에 도착하자마자 귀가를 미루고 내 숙소를 향해 진군했다. 아무리 바빠도 손님부터 먼저 챙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를 숙소에 무사히 인계한 올레흐는 작별 포옹 후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서민 사회의 인간미를 등에 지고 달리는 올레흐의 뒷모습이 꽤 우람해 보였다.




# 글로벌 사진 프로젝트 <I am a forest> 

숲 보호와 우리 안의 자연성 회복을 주제로 한 사진 프로젝트. 레고랜드의 춘천 무인도 벌목 사태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3일짜리 스키점프 경기를 위해 강원도 가리왕산의 500년 된 원시림 5만 그루를 벌목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 초점을 올림픽으로까지 넓혔다. 세계적인 축제의 이면에 숨은 진실을 세계인들에게 알림과 동시에 우리 안의 자연성 회복을 호소하며 나아갔다. 세계인들이 전하는 숲 보호의 염원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그들의 연대를 인간 숲의 이미지로 형상화해 나간 작업이다.


55th 퍼포머

: Oleg Kemin


- 국적: 우크라이나

- 촬영지: 카미야네츠 포딜스키와 이바노 프랑키브스크 구간 사이의 휴게소


스카우트 멤버인 올레흐는 전공 역시 스카우트다. 스카우트를 학과화한 사례를 처음 접하는지라 우크라이나의 교육 시스템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와 만났을 당시 그는 카미야네츠 포딜스키에서 벌어진 잼버리를 마치고 자신이 사는 도시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귀가 직후 다시 짐을 챙겨 다음 잼버리로 향해야 하는 올레흐였지만 나부터 먼저 돕겠다며 무거운 캠핑 짐을 그대로 멘 채 내 숙소를 향해 씩씩하게 행군했다. 자연과 밀착된 직업이다 보니 올레흐는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내 카메라 앞에 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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