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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Feb 05. 2019

31. 나의 자립은_시비우, 루마니아

마음이 반뼘쯤은 자라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찍은 시비우의 교외 풍경, 루마니아




낯선 여행길 위에서는 아무도 내 삶을 대신 꾸려주지 않았다. 끼니를 해결하고, 잠자리를 마련하고, 계절 변화에 맞춰 새 옷을 장만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나날의 삶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원하지 않아도 자립을 연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명소 방문에 초점을 맞춘 여행을 해 오다 보니 자립을 연습한다고 해 봐야 기초적인 수준을 넘지 못했다. 의식주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정도. 하루치의 삶을 근근이 꾸린 후 남은 힘을 몽땅 여행지 탐방으로 돌리던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여행에서 돌아오면 삶을 향한 의욕이 차 올랐다. 한동안은 적극적으로 일상과 대면했고, 내 앞으로 닥쳐오는 문제들을 정공법으로 돌파해 나갔다. 애석하게도 열정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면 일상은 다시 제자리걸음을 시작했다. 여행의 약발이 다한 것이다. 비슷한 경험을 반복하는 사이, 자립을 좀 더 진지하게 탐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정도의 단조로운 접근을 넘어 자립의 근본적인 이유와 원리가 궁금해졌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삶을 바라보면서 그 토대 위에서 자립을 탐구해야 할 듯했다. 그 무렵, 내 발을 제법 긴 시간 동안 국내에 묶은 프로젝트 작업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참 동안 스스로를 쥐어짠 터라 휴식이 필요했다. 일상도 슬슬 공회전하는 조짐을 보이기에 사진 프로젝트를 비롯해 몇몇 개인적인 과제를 안고 여행길에 올랐다.

 

거리 풍경, 시비우, 루마니아


여정의 시작과 함께 배낭 위에서 '자립’이라는 이름의 깃발이 휘날렸지만 그 율동의 양상도,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도 막연했다. 그런데 뜻밖으로 깃발의 존재가 여행의 향방을 가르기 시작했다. 앞선 여행들에서도 똑같이 겪었던 상황들에서 대응 방식이 달라졌다. 전에는 무심히 지나쳤을 일들 앞에서 그 의미와 원리를 헤아리는 경우가 늘었다. 중요한 단서가 그 속에 숨어 있지 않을까 싶어 이따금 아주 세부적인 지점까지 아등바등 파고들어갔다. 같은 경험을 두고도 소화해 내는 내용이 깊어지고 있었다. '자립'이라는 주제어가 내 안에서 소리 없는 파문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카우치서핑에서도 자립 탐구는 이어졌다. 낯선 이들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다져나가는 과정에서 의존성을 비롯해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자립 훼방꾼들을 하나둘씩 검거했고, 진술서에 실토된 자백의 내용들을 복기하며 각각의 감정과 태도를 다스리는 연습을 했다. 예컨대, 현지어가 난무하는 지역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소외감에 휘말리지 않고 편안하게 순간을 즐기는 연습을 하는 식이었다. 어떻게 하면 시선을 내 쪽으로 끌어올지 고민하는 대신 상대가 즐거워야 나도 즐겁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흐름을 그냥 즐겼다. 그러다가 예기치 않게 하품이 찾아들면 탁자 위로 오가는 대화와 손발짓 속에서 현지 언어의 음성적 특색을 살펴본다거나 현지인들의 문화적 습성을 관찰했다. 자립 훼방꾼들을 효과적으로 다스릴수록 나는 나대로 단단해졌고, 관계는 관계대로 부드러워졌다. 내 안에서 좌충우돌하고 있는 고립감에 온 신경을 쏟아붓기보다는 내 바깥 세계로 시선을 넓히는 편이 스스로에게 훨씬 더 유익하다는 사실을 자주 깨달았다.


그러한 노력 덕분인지 류블랴나의 내 카우치서핑 호스트였던 얀은 시내에서 함께 밤 문화를 즐겼던 순간을 거론하며 내 카우치서핑 계정의 방명록에 “영진은 호스트의 입장에서 게스트가 지루해할까 봐 염려할 필요가 없는 독립적인 여행자”라는 평을 남겨 주기도 했다. 당시 커플 댄스에 한창 심취해 있던 얀을 따라 무도회가 한창이던 댄스 클럽 몇 곳을 방문했더랬다. 너덧 시간 동안 얀은 쉴 새 없이 춤을 추었고, 나는 나대로 이국 문화의 단면들을 훑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는 생소한 공간인 데다가 얀은 저 홀로 춤바람이 한창이어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기 십상이었지만 지루해하지 않고 알아서 시간을 잘 보냈다.  


기하학적인 문양과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병치된 교회 지붕, 에반겔리커 교회, 시비우, 루마니아


‘I am a forest’ 프로젝트에서도 자립의 영감을 속속 발췌해 나갔다. 상대와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간 행위의 작동 원리를 고찰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서 혹은 상대에게서 내적으로 자립되지 않는 부분이나 주체적 태도 형성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종종 발견했다. 작업 속에서의 내 행위들로 설명하자면 상대의 열정에 기대 수동적으로 셔터를 누른다거나, 치열한 예술가로 위장해 작업의 내용을 그럴싸하게 미화한 후 거기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찬사를 동력으로 사용하려는 태도가 그러한 사례에 속했다. 그럴 때마다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었다. 수동적인 자세를 떨쳐내기 위해 다시금 팔을 걷어붙이고 순간에 더욱 진지하게 몰입했다. 그와는 반대로 상당한 자립성을 갖춘 상대에게서 배움을 얻기도 했다. 각각의 상황들이 깊은 영감을 안겼다.


인간성의 회복을 중요한 주제로 품고 있는 프로젝트인 만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자신 있게 참여를 청해야 했다. 그러자면 나부터 바로 세울 필요가 있었다. 흐트러진 마음가짐으로 제대로 소통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참여를 이끌어 내기는 더욱 어려웠다.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프로젝트가 전파하는 메시지도 볼품없을 가능성이 컸다. 프로젝트의 주도자로서 관제탑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의지와 열정을 북돋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인격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립성의 향상은 필수였다.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나 자신을 엄정하게 담금질해 주고 있는 프로젝트가 ‘I am a forest’였다.


바닥 분수가 잦아든 틈을 타 그 위를 뛰어다니는 소년들, 마레 광장, 시비우, 루마니아


개인적인 차원에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자립을 방해하는 요소의 침투를 사전에 봉쇄하는 것이었다. 상대에게 필요 이상으로 큰 신세를 져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에 처한다거나 지나치게 현지 물정에 어두워 스스로 위축되는 상태를 방지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일과의 세부적인 국면들에서도 주도적인 태도로 임하고자 했다. 소소한 국면들의 총합이 삶이라 생각한 때문이었다. 삶을 관통하지 못하는 자립은 반쪽 짜리일 가능성이 컸다. 스스로 주도하지 못하는 삶은 그 태도가 아무리 성실해도 자립적일 수 없을 것이었다.


이국의 문물들을 여행의 색다른 경험 정도로 치부하지 않고 역사와 문화의 관점을 대입해 세심하게 들여다보려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생소하기만 했던 공산주의의 실제 흔적들을 헤아리며 그것이 욕망했던 바는 무엇인지, 그리하여 동구 사회는 어떻게 흘러갔는지, 서구 사회와 다른 점은 무엇인지를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많았다. 그들의 발자취가 종국에 나에게 미치게 될 영향을 더듬었고, 나와 세계 간의 상호 작용을 헤아리며 시대에 어떻게 호응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개인의 입장에서 감당하기에 너무 방대한 화두다 싶을 때는 나를 둘러싼 현실적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고 참여할 것인지를 숙고했다. 각각의 성과는 미미했지만 그것들이 조금씩 쌓이니 사고관과 태도에도 점차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목소리도 전보다 두꺼워졌다. 전 같으면 껄끄러워서 함구했을 얘기를 당당하게 내뱉는 순간들이 늘었다. 대단한 수준은 아니지만 여행을 시작할 때와는 분명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숙소의 공용 공간에서 전날 촬영한 프로젝트 사진의 배경 사연을 글로 정리하고 있는 내 바로 곁에서는 낯선 여행자 하나가 태블릿 PC의 스피커 음량을 최대치로 올려놓고 시끄럽게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니 음량을 낮추거나 이어폰을 이용하는 게 예의건만 주변 사람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감정에만 심취해 있는 모습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집중력이 계속 분산되기에 안 되겠다 싶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립의 문제를 고민하는 여행자로서 무례한 방식으로 내 세계의 균형을 깨뜨리는 이에게 일격을 가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그의 외양이 꽤나 위협적이었다. 이십 대 초반의 다부진 체형, 손등 위로 솟은 굵은 힘줄, 부리부리한 눈매, 여차하면 목청부터 높일 것 같은 인상까지 전체적인 풍모가 심상치 않았다. 상호 간의 요구를 쿨하게 주고받는다는 서양권의 여행자이니 정중하게 얘기하면 간단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듯했으나 마음과 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할까 말까를 한참 고민하는 사이 그가 음악 감상을 끝냈는지 태블릿 PC의 전원을 껐다. 따끔하게 혼을 내야겠다고 이제 막 결심했는데 한발 늦었다. 운이 좋은 녀석이로군 하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자립의 길은 생각보다 먼 듯했다.


굴뚝을 머리 위에 얹은 낡은 지붕들, 구시가, 시비우, 루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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