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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Feb 24. 2019

46. 예고를 읽지 못한 대가_이스탄불, 터키

사고 없는 여행은 과연 성공한 여행인가

술탄 아흐메드 모스트(블루 모스크), 이스탄불, 터키




이런 제기랄! 카메라 망원 렌즈를 도난당했다. 인터넷 판매가로  300만 원을 호가하는 장비였다. 그동안 여행길 위에서 벌어진 도난 사고의 손실 중 최고액이기도 했다. 배낭 지퍼에 걸어 둔 자물쇠도 뜯겨 나갔다. 어지러운 시선으로 추가 도난품이 있는지 살폈다. 꽤 조목조목 살핀 결과, 더 이상의 도난품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나 나중에 깨닫게 된 바, 루마니아에서 구입한 휴대용 향수도 없어진 상태였다. 나름 꼼꼼히 살폈음에도 추가 도난품을 파악하지 못했으니 그만큼 정신이 없었던 게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이스탄불 탁심 광장 근처의 어느 호스텔 도미토리. 여행자 숙소에서도 도난 사고가 벌어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누구라도 해외여행 몇 차례만 하면 그 정도 정보는 금세 귀에 들어오는 법이다. 그런 줄 알기에 소지품 관리에 꽤 꼼꼼히 신경 쓰며 여행해 왔다. 고가의 카메라 장비를 들고 여행하는 처지라 수시로 장비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직업인으로서 수족과 같은 물품이니 촬영 장비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사수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 


사태를 인지한 직후, 숙소에 소식을 알렸다. 위로의 말부터 돌아올 줄 알았으나 오히려 여사장과 한참 동안 입씨름을 벌여야 했다. 공황 상태에 빠진 나를 안정시키는 게 호스텔 측이 취해야 할 첫 번째 조치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지 그녀는 괜찮으냐는 말 한마디 없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만을 입증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아부었다. 오히려 나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추론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모습이었다. 가만히 보니 그녀도 나만큼이나 혼란에 휩싸인 듯했다. 책임 소재며, 경찰의 방문 조사며, 인터넷 평점의 추락에 이르기까지 숙소에 닥쳐 올 여파가 그녀의 감정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은 듯 보였다. 사건의 피해 당사자인 내가 그녀를 안정시켜야 했다. 어수선한 와중에 타인의 감정까지 아울러야 하는 상황이 어처구니없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여행에 가져갔던 두 개의 렌즈 중 도난을 면한 렌즈로 찍은 사진, 갈라타 다리, 이스탄불, 터키


다행히도 혼란했던 마음은 빠른 시간에 안정을 되찾았다. 동요도 꽤 많이 가라앉았다. 과거의 여행들에서 겪었던 사건사고들이 맷집을 키워 준 듯했다. 정체성의 일부가 담긴 휴대폰이나 개인적인 기록이 축적된 물품을 도난당했다면 여파가 좀 더 컸을지도 모르겠지만 도난 물품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카메라 렌즈였다. 물론 수십 개 국을 함께 여행한 녀석이니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질 감정이었다. 귀국해서 새로운 녀석으로 장만하면 어렵지 않게 국면을 전환할 수 있을 것이었다. 빠듯한 잔고가 더 빠듯해지겠지만 카메라 렌즈를 새로 구입했다가 인생이 고꾸라진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통장 잔고의 숫자가 조금 달라질 뿐 내 삶은 그전과 다름없이 흘러갈 터였다.  


다만 빠른 시간 내에 안정을 되찾은 것과는 별개로 원치 않는 시점에 인간 세계의 시궁창을 들여다봐야 하는 상황만큼은 여전히 괴로웠다. 숙소 출입이 가능한 인원을 기준으로 할 때 용의자의 수는 많아야 다섯. 절도범 역시 분명히 내가 아는 얼굴일 것이었다. 여행자의 이름으로 맞닿은 이들 사이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괴로움이 엄습했다. 우리 인간이 이것밖에 안 되나 싶었다. 가방에 혹은 숙소 락커에 자물쇠를 채우면서 씁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고 방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실상은 인간은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전제한 행동이었다. 미덕을 경험해도 눈 앞에 펼쳐지는 세상 풍경이 어지러워 비감한 기분이 수시로 밀려오는 판국이었다. 그러다가 사람이 빚어낸 부조리를 맞닥뜨릴라 치면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곤 했다. 나 역시 같은 이름표를 단 존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국 설국열차를 탈 수밖에 없나 생각하면서 좌절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사고 당일의 동요는 이튿날이 되어 상당 수준으로 가라앉았다. 무의식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겠지만 의식은 꽤 잠잠해졌다. 불과 하룻밤 사이인데 거의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에 도달했다. 사고의 정도에 비하자면 대단히 빠르게 안정을 되찾은 셈이었는데 스스로 생각해도 굉장한 회복 속도였다. 다만 장비가 반쪽이 되다 보니 카메라를 집어 들 때마다 허전함이 스쳤다. 필요한 국면에서 도난당한 렌즈의 활약은 상당했다. 중요한 장비가 사라져 사진 촬영에 불편함이 많아진 대신 카메라 가방이 한결 가벼워져서 걸음이 가뿐해졌다. 묵직한 카메라 가방을 날마다 메고 다니느라 어깨와 등이 종종 결렸는데 그럴 일이 없어졌다.

 

심란한  마음을 다독이며 찾아간 아야 소피아, 이스탄불, 터키


여행길 위에서 사고를 겪을 때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되짚어 왔다. 사고의 원천 봉쇄보다는 사고 후의 성숙한 대처가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반복적으로 얻었다. 그간의 여행 경험에 의하면 불운은 반드시 찾아오게 돼 있었다.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여행의 확장판인 삶도 마찬가지였다. 언덕을 넘으면 또 다른 언덕이 나타났고, 늪을 건너면 또 다른 늪이 펼쳐졌다. 그게 그동안 내가 겪은 이 세계의 생태이자 삶의 생리였다. 여행과 삶이 서로 다르지 않았기에 사고를 겪을 때마다 생의 음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 이롭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모든 일이 계획 안에서만 이루어지면 자기 세계의 확장은 불가능할 터였다. 자신만의 완고한 세계가 깨지려면 그 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파고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과거의 여행을 더듬어봐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사고는 초기에만 혼란을 유발했을 뿐 결과적으로는 성장의 촉진제로 작용했다. 나를 무너뜨리지 못한 시련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 사고 없는 여행을 마냥 흐뭇해 할 수만은 없는 이유였다.  


돌이켜보니 이번 사고 역시 성장을 견인해 주는 경험인 듯했다. 이전의 여행에서 도난을 비롯한 사건사고를 여러 차례 경험한 터라 가벼운 사고에는 잘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현금 몇십만 원 정도는 담배 한대로 가볍게 털어내곤 했다. 이외에도 여러 차례의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대체로 빠르게 수습했다. 세계 각국을 떠도는 동안 여행의 초점이 견문의 확장에서 전인격적인 성장으로 옮겨간 터여서 나를 새로이 단련시켜 주는 경험이 오히려 반갑게 느껴지던 시점이었다. 이전의 사건들로 내면이 좀 더 단단해졌으니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종전보다 강력한 사건이 필요할 터였다. 허세가 아니라 내 상황을 냉정하게 따져보니 그랬다. 물론 일부러 사고를 유발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초과하는 경험도 원치 않았다. 트라우마는 생각보다 강력하고 오래간다는 사실을 이전의 경험들로 충분히 알고 있었다. 고가의 렌즈를 또다시 도둑맞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렇지만 같은 일이 벌어진다손 치더라도 똑같은 생각일 것이었다.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풍경, 이스탄불, 터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신기했던 부분은 예고가 있었다는 점이다. 아테네 도착 당일 겪었던 혼돈이 그 예고였다. 한참 동안 잊고 있었던 바르셀로나에서의 도난 사고가 뜻하지 않게, 또한 선명하게 머릿속에 오버랩되면서 그 바탕에 깔려 있던 감정의 찌꺼기들, 그것과 관련된 내 정체성의 문제, 그것이 상기시키는 내 업보의 문제 등이 나를 흔들었다. 인간이 지닌 고도의 감각적 능력을 다루는 융 심리학의 관점을 적용하자면 사고 발생에 대한 명백한 예고였는데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당시의 각성이 시사하는 바를 정확하게 독해했다면 대비가 가능했을 텐데 무심히 흘려버렸다. 큰 실수를 범할 듯한 예감에 스스로도 소스라치게 놀랐으면서 감각의 안테나를 펼치지 못했다. 정신의 감도를 더 높여야 할 듯했다. 


여행이 마지막 지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지방 도시라도 몇 곳 구경할까 했는데 최초에 여행을 계획하면서 터키에서는 타 지역 방문을 생략하고 이스탄불에서 휴식을 취하는 방식도 고려했던 터라 더 이상의 이동 없이 이스탄불에서 조용히 쉬기로 했다. 촬영 장비도 부실해졌고, 폭탄 테러를 비롯해 현지의 사회 환경도 불안한 상황이었다. 사실 스스로 생각해도 반년을 여행하는 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 장기 여행은 고급 리조트에서 편리한 서비스를 즐기는 여름 바캉스와는 많이 달라서 수행하는 심정으로 순간순간을 견뎌야 할 때가 많았다. 핑계가 생겼으니 긴장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기로 했다.


술탄 아흐메드 모스트(블루 모스크), 이스탄불,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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