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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Feb 26. 2019

48. 회복의 여정_세인트 줄리안스, 몰타

아름답고 따뜻한 지중해에서 한량없는 바다 산책을

중앙로, 발레타, 몰타




공항에서 발이 묶였다. 나흘째 이어지는 폭설로 인해 아타튀르크 공항이 마비 상태에 이른 것이다. 이스탄불도 전역이 두터운 눈에 파묻혔다. 대부분의 항공편이 제 시각에 운항을 했던 레아의 출국일과 달리 모든 항공편이 올 스탑된 상태. 언제 운항이 재개될지 몰라 계속 공항에서 대기해야 했다. 전광판이 보여 주는 대기 시간은 최소 6시간 30분. 운항이 아예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는 소식이었다.  


에라이는 레아에 이어 내가 이스탄불을 떠나는 날에도 공항까지 배웅을 나왔다. 눈이 펄펄 날리는 숲 지대에서 몸을 혹사시킨 대가로 감기몸살을 앓고 있음에도 시름시름하는 몸을 일으켜 칼바람과 눈발이 뒤섞인 거리로 나섰다. 레아가 그랬듯 항공편이 이상 없이 운행되고 있음을 에라이에게 확인시켜 주고 씩씩하게 출국장으로 걸어 들어가려고 했는데 현실은 내 마음과 달랐다. 감기몸살에 시달리고 있는 에라이를 공항에 그냥 둘 수 없어서 작별 포옹을 나눈 후 집으로 돌려보냈다. 공항까지 배웅을 나와 준 것만 해도 충분히 고마운 일이었다.  


현지에서 폭탄 테러가 벌어지던 시점이라 공항의 보안은 이례적으로 삼엄했다. 검색대 통과가 특히 까다로웠다. 당연한 일이겠거니 생각하며 검색에 응했는데 보안 요원이 노트북 검사를 재차 요구한 대목에서 수상한 인상을 받았다. 여행자라면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노트북인데 왜 검색을 반복하지 싶어서 그의 행동을 주시하며 재검사에 응했다. 내 주위를 흐트러뜨리려는 듯 어지럽게 행동하던 그는 노트북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자 이번에는 검색 게이트를 다시 한번 통과하라고 요구했다. 지갑이 담긴 검색 바구니를 나와 떼어놓으려는 수작이었다. 검색을 모두 마친 후 지갑을 살펴보니 50리라가 사라졌다. 우리 돈으로는 16,000원 정도. 마지막까지 시비를 걸어오고 있는 이스탄불이었다. 열 찜질을 마치고 불가마를 빠져나가려는데 몇십 분째 문이 안 열리는 듯한 기분. 터키의 도발은 끝까지 거셌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거리 풍경, 이스탄불, 터키


항공편은 결국 취소되었다. 장시간을 기다렸으나 반전은 없었다. 이후 항공권 변경에 나섰는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예민해진 승객들 간의 아귀다툼과 항공사 카운터 직원의 업무 떠넘기기에 휘말려 체크인 카운터를 네 번이나 옮겨야 했다. 한 시간 반을 기다려 카운터 앞에 다다르면 저쪽 카운터로 가라는 식이었는데 네 번 다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일곱 시간을 전전한 끝에 간신히 항공권을 변경했다. 


거듭되는 테러 사태로 터키 자체가 이미 어수선한데 천재지변으로 항공까지 마비되니 공항은 아주 그냥 아수라장이었다. 한껏 빼입고 여행길에 오른 이들 다수가 난민으로 변했다. 젊은 여성 하나가 울면서 내 앞으로 지나가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꽤 혼란스러워 보였다. 대충 보면 다 같이 하루 고생하는 정도의 상황이지만 조금만 깊이 응시하면 몹쓸 것들이 그 안에서 요동치는 모습이 보였다. 안 그래도 현지의 사회 환경이 흉흉한데 거기에 더해 위기 상황까지 닥치니 많은 이들이 민낯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공항 직원들부터 승객들에 이르기까지 못 볼 꼴을 많이 보였다. 그동안 숨겨왔던 위선들이 도처에서 가면을 벗었다.  


공항 측에서 무료로 숙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오기에 신청 카운터로 향했다. 그런데 줄지어선 대열의 길이가 장난이 아니었다. 400미터 육상 트랙을 한 바퀴는 족히 감고도 남을 정도. 초대형 순대 같은 대기 라인의 꼬리를 거슬러 향하다가 공항에서 노숙을 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대기 공간의 한쪽 귀퉁이에서 밤을 지새우기 시작한 내 옆에서는 이름 모를 외국인이 길 잃은 야생동물처럼 딱한 모습으로 바닥에 누워 잠을 잤다. 열대 해변에 걸린 해먹에 푹신하게 안겨 시원한 얼음 맥주와 물담배를 번갈아 흡입하다가 세상모른 채 낮잠에 빠져들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이 순간만 견디면 더 이상의 불운은 없겠지 생각하며 남은 힘을 짜내 버텼는데 이튿날에도 비행기는 연착되었다. 9시 45분에 출발 예정이었던 비행기는 정오가 넘어서야 이륙을 했다. 이스탄불을 빠져나오는 길은 멀고 험했다. 


블루 그로투, 몰타


험한 시간을 이제 막 빠져나와서인지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나라에 발을 들여놓는 기쁨은 아주 컸다. 몰타는 계획에 없다가 아테네 사진전 개최일까지 시간이 남아서 선택한 여행지였다. 어지러운 현지 분위기에, 도난 사고까지 범벅이 된 이스탄불에서 계속 체류하는 것보다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심신을 회복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몰타행을 결정했다. 이스탄불에서 확인한 몰타의 날씨는 도착 당일을 포함해 하루 빼고 계속 비였는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날씨가 상당히 화창했다. 남은 체류 기간에도 무난한 날씨가 계속되는 쪽으로 예보가 바뀌어 있었다. 전날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밤을 꼬박 지새우느라 피로감이 잔뜩 누적되었다는 점과 항공기 출발 지연으로 인해 몰타에서의 체류일이 하루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빼고는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공항 게이트 대기석과 항공기 기내에서 짬짬이 눈을 붙였지만 피로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지라 숙소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바로 침대로 뛰어들었다. 숙소로 오는 동안 비가 잠시 내렸는데 낮잠에 들기 직전 발코니로 나가 보니 무지개가 하늘에 드리워져 있었다. 고생을 감내한 대가로 신이 내려 준 선물일 리는 없겠지만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하기로 했다. 한참을 시체처럼 자다가 눈을 떠보니 어느새 저녁.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후 쾌적한 기분으로 외출해 저녁 식사를 들었다. 배가 부르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넉살 좋은 식당 주인아줌마의 시끄러운 수다가 흥을 더욱 돋웠다.


해안 산책로, 세인트 줄리안스, 몰타


몰타에서는 휴식에 주력했다. 역사 유적이나 바닷가 기암괴석 같은 현지 볼거리들도 왕왕 찾아다녔지만 느린 걸음이었다. 강추위가 휩쓸고 있는 저 위쪽 동네와 달리 섬 곳곳에는 따스한 햇살이 자주 감돌았다. 한겨울이라는 점을 고려하자면 대단히 포근한 날씨. 폭설에 뒤덮인 이스탄불과 비교하면 낙원에 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닷바람은 그리 차갑지 않았고, 현지인들의 표정은 밝았다. 물가도 비교적 저렴한 편이라 먹고 마시기에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영국령이어서 어학연수를 위해 몰타를 찾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고 들었는데 충분히 그럴 만해 보였다.  


몰타에서 머무는 동안 바다를 자주 산책했다. 현지 탐방 명목으로 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까지 가서도 내가 주로 한 일은 바다 산책이었다. 도난 사고를 겪은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어느 정도 그렇게 하기도 했지만 궂은 날씨와 공항에서의 악재로 인해 이스탄불에서는 양껏 여유를 누리지 못했다. 해서 몰타에서는 여유를 누리고 또 누렸다. 엉덩이가 가려웠던 저녁, 숙소 가까운 곳에서 카우치서핑 정기 모임이 열린다기에 현장에 잠시 얼굴을 들이밀기도 했지만 내가 몰타에서 한 일의 대부분은 산책이거나 휴식이었다. 한량 같은 나날들 속에서 심신에 스며 있던 피로의 찌꺼기를 씻어냈다. 대륙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지중해의 한가운데에서 저 혼자 유유자적 떠 있는 아름다운 섬 몰타는 마냥 여유를 부리기에 꽤 괜찮은 곳이었다.


몰타의 명물 중 하나인 아주르 윈도우, 고조섬, 몰타




# 글로벌 사진 프로젝트 <I am a forest> 

숲 보호와 우리 안의 자연성 회복을 주제로 한 사진 프로젝트. 레고랜드의 춘천 무인도 벌목 사태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3일짜리 스키점프 경기를 위해 강원도 가리왕산의 500년 된 원시림 5만 그루를 벌목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 초점을 올림픽으로까지 넓혔다. 세계적인 축제의 이면에 숨은 진실을 세계인들에게 알림과 동시에 우리 안의 자연성 회복을 호소하며 나아갔다. 세계인들이 전하는 숲 보호의 염원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그들의 연대를 인간 숲의 이미지로 형상화해 나간 작업이다.


113th 퍼포머

: Richard


- 국적: 몰타

- 촬영지: 세인트 줄리안스, 몰타


길에서 마주쳐 커피까지 나눈 리차드는 영국계 몰타인이다. 두 나라의 피가 반반씩 섞여 있다. 많은 국가가 모인 유럽에서는 흔한 일. 국가와 정부를 혼동하는 이들이 꽤 많은데 정부는 국가가 아니라 국가의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기관이다. 정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 떠는 이들이 많은데 벨기에는 정부 없이 수백 일을 큰 탈 없이 보낸 적이 있다. 형식이 아닌 내용으로서의 뿌리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자신의 몸에 흐르는 피의 절반이 영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힘주어 강조하던 리처드의 모습이 여운을 남긴 이유다. 육십 대인 그의 참여로 프로젝트의 최고령 기록이 경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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