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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직원 Nov 29. 2020

썩은 동태눈알의 모습을 한 나의 우울

1. 나의 우울의 시작점(3)


나의 우울의 시작은 어디일까? #.5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 과외를 한 경험이 있다. 아파트 윗층에 사는 형이 수학과를 다닌 터라 보습 학원비 수준으로 과외를 받았다. 한 3개월 정도 과러외를 했던가? 형이 먼저 우리 어머니에게 말했다.


"아줌마, 쟤는 가르쳐봐야 소용이 없으니까 저한테 돈쓰지 마세요"


이런 어마어마한 말을 남기고 나를 가르치는 것을 포기했다. 썩은 생선 눈깔을 하고 앉아서 숙제도 제대로 안 하고 형 혼자서 떠들어 대게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을 터 - 아이러니한 건 내가 문과이긴 하지만 형과 대학 동문이 되었다는 점.


고등학교 가서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무엇도. 아마 그때의 나를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면 짤로 돌아다니는 그 강아지가 아니라 내가 밈이 되어 넷상에 회자 되고 있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매일 잠을 잤고 숙제는 한번도 해간 적이 없다. 체벌이 흔하디 흔한 시기였다. 마대자루건 당구 큣대건 숙제를 안 하면 매번 두들겨 맞았다. 나는 맷집이 괜찮은 편이어서 차라리 맞는 편이 더 편했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했을 때 키가 170정도 됐는데 당시는 그리 작은 키는 아니었다. 지금 키가 컨디션 좋으면 175, 나쁘면 173정도 되는데 키가 안 큰 편이지.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를 생각하면 바보 같은 가정일지 모르겠지만 키가 조금 더 클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 나는 책가방 국영수는 물론, 기술, 심지어 체육 교과서에 공책이며, 필기구를 전부 넣고 다녔다. 교과서를 안 챙기면 숙제를 하지 않은 것에 플러스로 맞아야 하니까 더 체벌을 당하긴 싫었던 것 같다. 그냥 그 무거운 것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아침 저녁으로 버스를 타고 걸었다.  


내겐 시간표를 보고 책가방을 챙기는 일이 너무 고되고 벅찬 일이었다.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버스를 타고 가서 학교에서 푹 자고 집에 와서 책이나 몇장 들여다 보다 다음 날 아침에 그대로 들고 나갔다. 그 짓거리를 3년을 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공부를 하나도 안 했는데 대학을 간 게 기적 같은 일이 었다. 아니 기적 같은 일이 아니고 그야 말로 기적.


학교에서는 그냥 잠만 자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사실 그렇게 매일 숙제를 안 하고 잠을 자면 선생님들 중 하나 정도는 뭔가 조치를 취할 법도 한데 그런 선생은 한 명도 없었다. 학교라는 시스템 자체가 사고뭉치나 수재가 아니라면, 촌지라도 쥐어 주지 않는 한 그닥 선생들에게 눈에 띌 일이 없다. 


나는 전혀 이 부류가 아니었으므로 당연히 아무 문제 없이 고등학교 생활을 했다. 당시는 한반에 50명이 넘고 중고등학교에서는 학과 선생들이 분담하여 수업을 하니 당연히 선생들도 어떤 새끼가 숙제를 안 해서 팼는지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 게 당연할 수도.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었다는 게 나의 상태였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딱 정확한 나의 상태가 이랬다. 이유? 그런 건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병이 아닌가? 일본 같은 장수 국가에서 최고령과 나눈 인터뷰를 보면 술 담배를 즐겼다는 사람이 꽤 많다. 술과 담배가 암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인데 누구에게나 그런 것은 아니다. 마찬 가지로 술과 담배가 어떤 이에게는 스트레스 감소를 도와주어서 장수를 도와주는 기호가 될 수도 있는 거다. 병이란 것이 꼭 동전을 넣은 자동판매기와 같은 것이 아니란 이야기.


어쨌거나 나는 고등학교 3년간을 거의 의식 없는 좀비처럼 보냈다. 좀비가 맘이 있을리가 만무하니 맘이 맞았던 고등학교 친구는 하나도 없다. 대개 평생을 함께 하는 친구들이 10대 후반에 결정되지 않나? 어떤 취미나 관심을 함께 하던 친구일 수도 있고, 그룹 과외를 같이 받던 친구일 수도 있고, 몰래 VHS로 복사해놓은 포르노를 함께 본 친구일 수도 있다. 나의 우울증적인 상태랄까, 청소년 우울증이랄까, 이런 경향성은 가장 소중한 시기의 친구라는 인적 자산을 앗아 갔다. 


내가 4년 전 병원에 가서  20년만에 풀어본 심리검사의 결과지에는 나의 가장 큰 증상이 무망감이었다. 생각해보면 10대 후반 나를 지배한 정서 역시 무망의 정서였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바랄 것도 없고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인간에게 바람이 사라진 상태란 본능적인 운동체의 삶이다. 먹고 마시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친구를 만나고 이런 모든 일들은 바라는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맛있고 신나고 보람차고 즐거운 일이 된다. 바람이 없는 상태에서는 이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


무망의 감각은 죽음의 감각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썼지만 체벌을 당해도 아프지 않았고 친구를 만들지 않아도 외롭지 않았다. 누군가는 우울을 지독한 외로움으로 묘사하기도 하는데 어쩌면 우울이란 아픔도 외로움도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망가진 상태일 수도  있다. .


몸이나 정신이 철학없는 관료주의처럼 돌아가면 특별한 육체적인 증상이 없다고 해도 병이 든 것이다. 나는 지독한 청소년 우울증 상태였던 것 같다. 우울증이 아니라고 해도 - 진단을 받은 것이 아니니 -  감정의 부전은 내 청소년 시기의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고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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