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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Oct 01. 2019

내가 읽은 책 #7 <현남 오빠에게>

혹시 내가 이런 남자친구는 아니었을까?

저자 : 조남주(현남오빠에게), 최은영(당신의 평화), 김이설(경년), 최정화(모든 것을 제자리에), 손보미(이방인), 구병모(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 김성중(화성의 아이)

출판사 : 다산책방

출간일 : 2017년 11월 15일

읽은 날 : 2018년 3월 18일




예전에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일할 때, 가정폭력 피해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딸이 중학생인 분이었는데, 결혼 초기부터 딸이 중학생이 될 때까지 폭력을 견디고 있었다. 왜 이렇게 오랫동안 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그 이후에는 이 의문을 가졌던 내 자신에 대한 의문이 생겼고 오랫동안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신의 피해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 알더라도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했다. 오로지 책임을 개인에게만 전가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현남 오빠에게」를 썼다.

조남주 작가 -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책은 7명의 작가들의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현남 오빠에게]라는 책 제목은 책을 구성하는 7가지 단편 소설중 조남주 작가 소설의 제목이기도하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 을 읽게된 계기가 좀 우스운데, "현남"이라는 단어가 궁금해서였다.
이 책을 읽을 무렵 이전부터 페미니즘은 전 세계에 새로운 바람이었다. 재작년부터였을까 국내에서도 서점에서 잘 보이지 않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이제는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건강한 바람이 불편한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이 단어가 그 불편한 안티페미니스트들을 대상으로한 과격한 표현일까 생각했지만, 책을 다 읽은 시점에서 그 단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 역시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자 중 한 사람이라 그런지 이 책이 술술 읽혀지진 않았다. 이전에 읽은 페미니즘 책과는 달리 문학이다 보니 더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진것도 있었다. 특히 <모든 것을 제자리에>, <이방인>은 정말 난해했다. 한 번 읽고 이해가 안되서 다시 읽은 작품들이기도 하다.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도 내겐 난해한 작품이었지만,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발문을 읽고 다시 읽으니 비로소 작품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상 인상깊었던 작품은 <당신의 평화>였다. 결혼을 앞둔 남동생의 누나의 시점인 소설이다. 소설은 주인공의 관점에서 곧 시어머니가 될 자신의 엄마와 남동생 그리고 남동생의 여자친구를 묘사한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묘사가 인상깊었다. 며느리로써 아버지와 친가 식구들로부터 제대로 된 대접을 못받았던 젊은날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아들의 장가를 앞두고 시어머니가 되어가고 있는 현재의 어머니의 모습. 주인공은 이를 수용하기보다 어머니에게 단호히 이야기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인공이 어머니에게 하는 이야기는 비단 이 소설속 어머니에게만 속하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현실 속의 어머니들과 가부장적인 아버지들. 그리고 결혼을 앞둔, 또는 기혼의 모든 남성들도 그 대상이 될수 있으리라.


가부장제에 복종하면 복종할수록 사람은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힘을 잃게 된다. 가부장제의 권위의식,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보지 않는 사고, 여성의 생각과 자유를 앗아가고자 하는 시도들은 결국 누구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가부장제는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심장을 딱딱한 돌덩어리로 만드는 독 같다. 사랑을 잃은 인간은 어떻게 되나. 살아 있으되 죽은 인간, 아름답지 못한 존재가 되겠지.
나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 최은영(당신의 평화 작가) 작가의노트 중 -


결혼을 앞두지도 않았고, 여성으로서의 삶은 살아본적도, 앞으로도 살지 않을 나는 머리에 뭔가를 맞은듯한 건강한 충격을 주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 <82년생 김지영>도 읽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이벤트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 것 같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 단편소설모음집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생각한 결혼은 남성중심적인 사고에 불과했음을 고백한다. 아이를 언제, 몇 명 나아서 어떻게 키울 것인지를 고민했지만, 그 아이를 누구와 어떻게 상의해서, 같이 어떻게 키울 것인지 제대로 고민한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를 잉태할 능력이 없는 내가 몇 명을 낳을지를 고민했다는 건 지금생각해보니 부끄럽다 못해 우스울 지경이다.


 페미니즘 책들이 여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2년 전부터 베스트셀러에 자주 오르고 있다. 김봉진 대표가

<책 잘 읽는 방법>에서 언급했는데 페미니즘은 단순히 트렌드가 아닌 사회적 현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데에 공감한다. 또한 이런것을 나랑 상관없는 사회적 현상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적극적으로 관심갖고 생각해보아야 할 이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추가하자면, 약 3년 전부터 불고있는 페미니즘이라는 큰 바람에 앞서 이를 그냥 관망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마치 제 3자처럼. 나는 여기도 저기도 아니라고. 그러나 이는 최악의 선택 옵션이다. <미스 함무라비>와 <개인주의자 선언>을 집필한 문유석 판사는 2018년 1월 중앙일보의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 젠더, 환경, 교육…
거의 모든 이슈마다 양쪽 극단에서 가장 큰 소리들이 쏟아져나온다. 중간에 있는 이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
중간에 있는 이들이 제자리에서 튼튼하게 버텨주지 않고 시늉만 하고 있으면 줄은 한쪽으로 확 끌려가고 만다.
..
지금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중립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면, 그건 나의 현명함 때문이 아니라 나의 안온한 기득권 때문임을.


혹자는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하면서 그들의 강한 어조를 문제 삼기도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어떠한 큰 바람의 시작은 늘 목소리를 내는 소수의 용감한 사람들에 의해 시작된다. 이들은 자신이 내는 목소리의 내용이 아닌 단지 목소리가 높다는 이유로 비난받기까지 함에도 꿋꿋하게 목소리를 내주었고, 더 많은 이들이 이 목소리에 동참하여 더 큰 목소리가 되고 있다.


심야 시간 아파트에 불이 났지만, 시끄럽게 목소리 내지 말라고 한다면 당신은 무얼 할텐가.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 사회를 더 진보하게 이끄는 힘은 과거에, 현재에 그리고 앞으로 목소리를 낼 사람들에게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팔짱을 끼고 관망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문유석 판사가 이야기했듯 중립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그 착각은 안온한 기득권에서 올 뿐이다.


우리가 남자더라도 우리의 여동생도, 우리의 누나도 여자이다.
우리 여자친구만 여자가 아니다. 회사, 학교, 동아리, 사교 모임 등에서 만나는 동료들 중에도 여자가 있다. 그리고 나를 낳아준 어머니도 여자다.

페미니즘은 결코 여성에게만 국한되서는 안된다. 경험하지 않은 남성들이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때, 그것만으로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듣는 것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데에 일조할 수 있다면 안할 이유가 있을까?

 

이 책은 내가 보다 진지하고 깊게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동력을 심어준 고마운 책이다. 이 건강한 동력이 더 많은 남성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책을 남성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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